여름 폭염·극심한 기후 변화 등 원인
서귀포 해안지역 피해율 80% 넘어
전량 피해 농가도…"대책 마련 시급"
지난 8일 서귀포시 토평동의 한 레드향 재배 농가.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열매가 썩어가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비닐하우스 바닥에는 낙과해 부패한 열매들이 쌓여있었고 나무에도 껍질이 갈라진 상태로 썩어가는 열매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농장주 현선미씨(60)는 "지난 8월부터 열과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열매의 절반 가량이 열과 피해를 입었다. 열과한 열매를 폐기하고 돌아서면 다른 열매가 터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레드향이 열과 피해에 취약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심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가족들 모두가 레드향 재배를 포기하자고 말하는 상황"이라며 "이대로 포기하기는 아쉬움이 커 매달리고 있지만 의욕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여름 극심했던 폭염에 이어 최근에는 국지성 호우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변덕스러운 날씨로 인해 감귤과 만감류의 껍질이 갈라지는 '열과'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껍질이 얇아 열과 피해에 취약한 레드향의 경우 열매 3개 중 1개꼴로 껍질이 갈라지는 등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제주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을 통해 확인한 결과 9월 25일 기준 레드향 열과율은 34.4%를 기록했다. 제주시가 22.9%, 서귀포시는 38.6%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열과율이 24.1%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10.3%포인트가 늘어났다.
노지감귤 역시 10월 2일 기준 열과율이 22.8%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 8.2%보다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고지대보다 기온 변화가 큰 해안지역의 레드향 농가는 피해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귀포시 레드향 연구회가 회원 농가 25개소·2만7400평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열과율이 무려 83.2%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피해 농가 중에는 열매 전량이 피해를 입은 곳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오병국 서귀포시 레드향 연구회장은 "2019년까지는 열과 현상을 손해보험에서 보상해 줬지만 2020년부터 다른 과수는 열과 피해 보상이 이뤄지지만 레드향만 보상 대상에서 제외됐다"며 "자연재해임에도 모든 피해를 농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에 큰 피해를 입은 농가 중에는 레드향 재배를 포기하고 천혜향 등 다른 작물로의 전환을 고려하는 곳도 있다"며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과거 한라봉 사태와 같이 특정 작물만 과잉 생산되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 회장은 "제주도가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것 같다"며 "하루라도 빨리 현지 조사를 통해 정확한 피해 현황을 확인한 후 농민들을 지원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