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오귀스트 로댕 「로댕의 생각」
눈을 뜨는 순간부터 하루는 생각으로 시작한다. 오늘의 할 일, 누군가와의 약속, 어딘가로 보내야 할 원고, 하루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생각으로 끝난다.
밥을 먹을 때면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고, 만나는 사람과 무슨 말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길을 걸을 때면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생각한다. 모든 행동은 생각을 통하여 비로소 이루어진다.
반면에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생각 없이 무심코 살아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배가 고프니 밥을 먹고, 생각 없이 사람들을 대면하고, 그저 잠이 오니 잠을 자는 때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가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리거나 생각 없이 말을 내뱉아 난처한 경우를 당하기도 한다.
현대적 삶의 흐름이 마치 자동기계의 부속처럼 당연히 돌아가듯이, 모든 일이 너무나 익숙하게 돌아갈 때 우리는 일상의 삶을 의미 없이 살아갈 때도 없지 않다. 아무리 그렇지만 우리가 생각 없이, 의식 없이 무엇을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삶에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우리는 왜 생각을 해야 하고 생각이 우리의 삶과 어떤 상관이 있는가. 또한 어떻게 하는 생각이 바른 것이며, 생각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서 우리는 당장에 또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바른길로 나아갈 수 없다.
데카르트의 말대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우리는 생각하면서 무언가를 이루고 어딘가로 나아간다. 따라서 생각한다는 것은 언제나 '지향적(intentional)'이다. 다시 말해 생각은 다른 무엇을 의도하면서 지향한다. 무엇을 생각한다는 것은 이 세상과 존재에 대한 의문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방식으로 무엇을 이해하면서 대상을 향해서 판단을 내린다. 나의 생각이 아무리 머리와 의식 속에 갇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실질적인 내용은 생각하는 사람과 구별된 바깥으로 연관되지 않고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마음과 세계가 서로 이어지며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다.
삶은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 자체이며, 그로 인해 삶은 변화한다. 이런 '생각의 힘'에 따라서 인간은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변화해 간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은 작고 사소한 생각들이 모여 크고 중요한 일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평온하고 안정된 마음은 어려운 상황에서 힘든 일을 극복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반대로 불안정하고 동요하는 마음은 길을 잃어버린 마음이다. 생각이 없다면 눈이 어두워져 가야 할 곳을 보지 못하고 불행한 길로 나아가게 된다.
생각을 예술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은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로댕의 이 조각상은 턱을 오른팔에 괴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 높이가 186㎝나 된다. 1880년에 완성된 이 석고상은 최초에는 '시인'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지옥의 문' 입구 아래에서 인간 군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단테의 「신곡」(神曲)을 주제로 한 '지옥의 문' 가운데 시인을 등장시켜 인간의 고뇌를 바라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 남자의 상을 만들게 하였다고 한다. 전신 근육의 긴장에 의하여 격렬한 마음의 움직임을 응결시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강력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단테가 경험한 사건들에 대한 고통과 슬픔을 투영하며 지옥은 현실의 삶과 닮아 있고, 그 끝에는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로댕은 그려내고자 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역동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동양의 '반가사유상'은 반가부좌를 틀고 현세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한 생각에 잠긴 미륵보살을 표현하고 있다. 반가(半跏)는 본디 땅바닥에 앉아서 하는 반가부좌(半跏趺坐)의 줄임말이지만, 여기서는 의자에 앉아 오른발을 왼 무릎에 얹은 자세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미래에 부처로 태어나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미륵보살은, 도솔천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생각과 사색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에게 생각이 중요한 것은 생각이 곧 자신을 다스리며 나아갈 길을 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별것 아닌 일은 없다. 모든 것은 미래의 나를 위한 씨앗이 될 것이고, 그 씨앗을 어떻게 심느냐 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고 사색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