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에른스트 블로흐 「희망의 원리」

다시 새해가 밝아온다. 새해를 맞아도 우리의 삶이 크게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한두 가지씩의 소망을 품는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해지기를, 부자가 되기를, 집안이 행복하고 가족이 안녕하기를…

그렇지만 지금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누구도 쉽게 낙관적인 답변을 내놓기란 쉽지 않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절망하고 있고, 서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에 아우성이고,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지도층은 여전히 제 몫 찾기에만 혈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회구성원은 진보와 보수,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양극화로 나누어져 대립하고 있다.

청년실업과 천정부지로 오르는 물가, 자녀교육과 직장 불안에 대한 중년층의 불안, 대책 없는 노후의 삶에 대한 절망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여기에 더욱 심각한 고민은 우리 사회의 이 같은 문제점들에 대해 각 세대는 깊은 '불안'에 휩싸여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는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분야가 균등하게 발전하는 사회일 것이다. 기업인은 경제를 위해, 정치가들은 국민을 위해, 교육자는 교육과 연구를 위해, 예술가는 예술을 위해 저마다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때야 사회가 균형 있고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다. 그래야 서민들도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면서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젊은이들도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념의 대립, 빈부의 격차, 세대 간의 갈등들은 단순히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들이라고 간과하기에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대립과 갈등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항상 편치가 않다. 지금과 같은 우리나라의 경제력을 이룬 정신인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신화가 깨지고 있는 듯하다, 열심히 살아도 가난에 허덕대야 하는 현실에 국민은 허탈해하고 있다. 근로자들과 서민들은 피와 땀을 흘릴 뿐 거기서 얻어내는 결실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으며, 눈만 뜨면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싸우는 정치가들의 모습에 국민들은 진저리를 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과 물신화의 확대재생산은 사회 구조의 왜곡을 낳고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영혼은 갈수록 황폐해지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정신은 점점 사라져 간다.

영혼 없는 이 시대의 부도덕의 무게와 기다림의 시간을 감당해 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삶의 상황에서도 우리를 버틸 수 있게 하는 것은 앞날에 대한 희망이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 마지막 희망이 남아 있듯이, 마지막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독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그의 책 「희망의 원리」에서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향해 가는가?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문제는 희망을 배우는 일이다. 희망은 체념이나 단념을 모르며, 실패보다는 성공을 더욱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블로흐의 말대로 희망이란 한마디로 '미래를 향한 의식'이다. 인간은 희망에서 삶을 위한 힘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뭔가 찾으려 헤매는 강한 충동을 가진 존재다. 비록 아직 오지는 않았으나 앞으로 다가올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희망으로 인간은 힘든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 현재에 만족할 수 없는 우리의 의식에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으나 흥분과 갈망이 솟아나는 유토피아를 향해 가는 동기를 작동한다. 희망은 그렇게 태어나 인간을 미지의 시간과 공간으로 이끌고 간다.

그래서 블로흐는 희망 속에서 "우리는 기다리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어린 소년은 상자에 들어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열어도 된다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그 상자를 어떻게든 뜯어 열고야 만다." 이는 기다림의 시간이 채 오기도 전에 이미 주어진 희망을 파괴하는 거와 같다.

새해를 맞아 우리는 어디선가 고달픈 삶을 구원해 줄 메시아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메시아는 사회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신과 갈등이 사라지고, 하루하루 힘들고 고단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이 따뜻하고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소박한 소망이다. 

우리는 모두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삶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배워야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희망이 없는 곳에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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