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영 신성여자고등학교 3학년

올해 77주년인 제주4·3을 기억하기 위한 전시들이 도내 곳곳 열리고 있다. 회화, 조각,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작품 속에는 고통과 상처, 남겨진 이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작품들이 시간을 거슬러 당시 현실을 눈앞에 펼쳐 보이는 듯했다. 미술을 공부하는 나로서는 이번 전시가 유난히 깊게 마음에 와 닿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역사책을 읽으며 떠오른 장면들을 그림으로 그리곤 했다. 그런 습관은 나를 예술로 이끌었고 동시에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4·3은 유독 더 진하게 다가온다. 이곳에 사는 학생으로서 제주의 아픔을 제대로 알고 기억하는 일은 나에게 주어진 몫이자 책임처럼 느껴진다. 역사는 과거로만 머물지 않는다.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 내가 그려나가야 할 장면이기도 하다.

전시관의 작품들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색과 형태로 져 있었다. 산자락 위에 내려앉은 검은 새 떼, 이름 없이 흩어진 그림자, 숨이 막히듯 이어진 잿빛 능선, 그리고 눈발 속에 이어지는 발자국들. 이미지들이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4·3을 문학으로 되살려냈다면 전시장 속 작품들은 예술이라는 또 다른 언어로 그날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과거의 비극을 예술로 마주하는 일은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길 위에 표지판을 세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역사를 되짚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언젠가 나도 그런 이야기를 그릴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리고 바란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되살리고 전하는 예술이 계속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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