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춘 제주지방해양경찰청장

바다는 어업인들에게 풍요를 주는 삶의 터전이자, 동시에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만선의 꿈을 안고 바다로 나간 선원들은 해양사고의 위험과 맞닥뜨리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중에서도 강한 바람, 높은 파고 등으로 인한 선박 전복사고는 선원들의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사고다. 복원성을 상실한 선박은 선원들이 탈출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뒤집어져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 5년간 우리나라 해역에서 총 533건의 선박 전복사고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102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전복사고 현장에 도착하면 수중구조 전문 해양경찰관들이 바닥(선저)을 드러낸 채로 뒤집어진 선박 위에 올라탄다. 그리고 선내에 갇혀있을 수도 있는 선원들의 생존신호를 확인하기 위해 쉴새없이 망치로 선체를 두드린다.

하지만 전복된 선박의 내부 구조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려 정확한 위치 확인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잠수요원들이 수중에서 선박 내부로 진입하는 통로는 선내에 적재돼 있던 그물과 부유물 등에 가로막혀 골든타임 확보에 귀중한 시간이 흘러가고는 했다.

또 선체를 잘못 절단했을 경우 부력 상실로 선체가 침몰하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제주지방해양경찰청은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 제주지사와 함께 '선저 절단 표식 사업'을 시작했다.

이 표식은 선박의 바닥 외부에 선원 침실의 위치를 미리 표시해두는 것으로, 선체가 전복되면 외부에서 표식을 보고 침실 부위를 절단한 후에 곧바로 선내로 진입해서 갇혀있던 선원들을 구조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표시가 아니라, 골든타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는 생명선이 된다.

이번 사업은 단순히 구조의 효율성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해양안전문화에 전환점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앞으로 이 사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어선 설계와 운영 전반에 걸쳐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문화가 정착되길 기대한다.

바다에서 일하는 모든 국민들이 더 안전하도록 해양경찰은 미래를 준비하며 임무 완수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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