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환 제주도 농업인단체협의회 회장
지난해 제주1차산업 조수입이 사상 처음으로 5조원을 넘어섰다. 농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또 농업인단체를 대표하는 회장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 특히 농축산업 분야가 3조9000억원에 달해 4조원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의미가 크다.
그러나 지난 한 해는 농업에 있어 매우 힘든 시기였다. 기록적인 폭염과 잦은 폭우, 저온 서리피해와 동해 등으로 농작물 피해가 속출했다. 수확량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농가도 많았다. 그럼에도 제주산 농산물 가격이 호조를 보이며 밭작물 조수입이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일각에서는 재해로 수확량이 줄어 가격이 오른 결과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하지만 필자는 이 성과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농업인과 행정, 농협이 함께 땀흘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과거처럼 '농사만 지으면 팔아준다'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제 농업인은 단순한 생산자가 아니라 시장의 주체다.
실제로 도정은 '제주농산물수급관리연합회'와 '수급관리센터'를 설립해 농업인 주도의 수급조절을 뒷받침했다. 육지부에 거점물류센터 3곳을 세워 물류비 부담을 줄였고 '제주농업디지털센터'를 세워 데이터 기반 과학영농 시대를 열었다. 생산·유통·소비를 연결하는 혁신적인 변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이제 제주농업은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5조원 시대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선이다. 무엇보다 기후위기 시대에 대응하는 친환경·지속가능 농업이 중요히다. 탄소중립과 ESG경영, 6차산업화, 청년농업인 육성 등 안전한 먹거리 생산·유통체계 확립과 건강한 생태계를 지키는 것이 미래세대에 대한 우리의 책무다.
또 농업인·행정·농협의 협력구조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 어느 한쪽만의 힘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농업인단체는 현장의 목소리를 모으고 행정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며 농협은 금융과 유통을 책임지는 삼각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
농업은 한 세대의 생계가 아니다. 후대와 함께 지켜야 할 삶의 터전이자, 제주도민의 문화와 정신이 깃든 뿌리다. 5조원의 성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우리 모두가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함께 나아간다면 제주농업은 미래세대에게 당당히 물려줄 수 있는 자랑스러운 산업으로 우뚝 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