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식 시인·전 탐라대학교 총장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시인은 그렇게 물었다. 그것은 존재의 필연적 흔들림에 대한 통찰이다.

인간이란 본디 흔들리며 성장하고, 그 흔들림 속에서 자신을 다듬는 존재다. 사랑의 시련과 삶의 풍파를 견디며 인간은 고통의 진자 운동 속에서 성숙해진다. 

사람이 꽃이라면 사회는 꽃밭이다. 그러나 지금의 꽃밭은 고르게 흔들리지 않는다. 어떤 꽃은 폭풍을 피해 온실 속에서 자라고, 어떤 꽃은 햇살조차 받지 못한 채 메말라간다. 중심은 화려하지만 주변은 시들어간다. 사회의 균형은 함께 흔들리는 법을 배웠을 때에만 가능하다. 지금 우리는 그 단순한 진리를 잊었다.

정치의 나침반은 방향을 잃었고, 법의 저울은 갈대처럼 기울었다. 교육의 뿌리는 깊이보다 경쟁의 속도를 배우고, 공동체는 이익의 경계선 안에서 서로를 밀어낸다. 경제의 수치는 올라가지만 마음의 온도는 식어가고, 기술의 발전은 인간 사이의 거리를 더 멀게 한다. 문명은 눈부시지만 마음은 그만큼 어두워진 시대로 역행하고 있다.

이 시대의 풍경은 마치 거센 바람 속에 방향을 잃은 숲 같다. 거대한 자본의 바람이 진실보다 이익 쪽에 더 큰 울림을 낸다. 언어는 공허해지고, 약속은 가벼워졌다. 교육은 사람다움을 가르치기보다 경쟁의 기술을 주입하고, 청년들은 희망보다 불안을 먼저 배운다. 법은 정의의 무게추를 잃고, 정치의 언어는 국민의 언어와 멀어졌다.

흔들림이 나쁜 것은 아니다. 바람은 나무를 흔들어 쓰러뜨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뿌리를 깊게 만든다. 문제는 흔들림을 통해 배우지 못할 때 그 흔들림이 혼란으로 바뀐다는 데 있다. 지금 우리의 사회는 그 경계에 서 있다. 불안은 신뢰를 삼키고, 불신은 또 다른 불안을 낳는다. 서로를 붙잡아야 할 때 우리는 서로의 흔들림을 탓한다.

흔들림을 부정하지 말자. 그 속에는 깨달음의 싹이 자란다. 진짜 위험한 것은 흔들림이 아니라 무감각이다. 바람이 불어도 느끼지 못하는 마음, 타인의 아픔에 반응하지 않는 사회, 그것이야말로 뿌리가 말라가는 징후다. 흔들리더라도, 우리는 살아 있는 가지여야 한다. 서로의 바람을 견디며, 서로를 지탱하는 숲이어야 한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견딜 줄 아는 흔들림이다. 중심을 잃지 않는 흔들림, 방향을 잃지 않는 흔들림이다. 그것은 제도나 권력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신뢰와 존중, 양심과 품격이 흔들림의 중심을 세운다. 법이 무너지는 것은 조항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지탱하는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교육이 흔들리는 이유도 교과서 때문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존중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회가 다시 바로 서려면 제도보다 먼저 신뢰가 회복돼야 한다.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동체를 지탱하는 가장 강한 뿌리다. 정치가 흔들릴수록 시민의식이 중심을 잡아야 하고, 법이 흔들릴수록 양심이 저울이 돼야 한다. 교육이 흔들릴수록 인간다움이 교과가 돼야 한다.

세상은 언제나 흔들릴 것이다. 그러나 흔들림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 고요한 숲은 이미 죽은 숲이다. 진정한 평안은 흔들림이 없는 데 있지 않다. 흔들리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데 있다. 바람은 멈추지 않지만, 뿌리는 그 바람 속에서 자라난다. 흔들리며 사는 시대, 우리는 이제 묻는다. 그 바람 속에서, 우리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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