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원 비상임 논설위원·이학박사·제주곶자왈공유화재단 연구소장

지구상에는 형성 과정, 지질 구조, 물순환 체계가 서로 다른 화산섬들이 무수히 많다.

화산섬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섬마다 수리지질 특성의 차이로 인해 부존 수자원의 종류와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담수의 양이 다르다.

이런 차이 때문에 세계 각지의 화산섬들은 물을 개발·이용하는 방식, 물에 대한 문화적 인식, 그리고 이를 관리하는 법과 제도에서 저마다 고유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바로 이런 다양성과 고유성이 곧 지혜이자, 기술이며, 문화다. 

기후변화는 화산섬들의 물 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제주도는 전체 강수량이 늘고 있지만 비가 짧은 시간에 집중되면서 하천을 통해 바다로 유출되는 양이 늘어나고 있다.

반면 하와이는 강수량이 전반적으로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어 담수 지하수량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고 카나리제도는 연평균 강수량이 약 20% 줄어들면서 이미 담수 고갈이라는 위기와 맞서고 있다.

이처럼 화산섬들은 공통적으로 세 가지 한계에 직면해 있다.

첫째, 태생적인 수리지질학적 제약. 둘째, 인구 증가와 지하수 과다 개발로 인한 수량·수질·해수침투 위험. 셋째, 기후변화로 인한 담수자원 확보의 불확실성이다.

이 삼중의 어려움은 화산섬의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협하는 물안보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 세계의 화산섬들은 '어떻게 안정적으로 물을 확보할 것인가'라는 공통된 위기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지난 4일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하고 제민일보가 주관한 '2025 제주 국제 물포럼'이다. '동서양의 화산섬, 물관리 기법을 공유한다'는 주제 아래 열린 이번 포럼은 제주가 세계 화산섬들과 물관리 경험과 지혜를 나누며 기후위기 시대 세계 화산섬 물관리 논의의 장으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계기가 됐다.

포럼에 참가했던 하비에르 페냐 가르시아 라팔마섬 수자원관리위원장은 "특별법에 의해 지하수를 공공의 자원으로 관리하는 정책과 법제도, 지하수 감시 시스템 등 제주도의 지하수 관리체계는 세계적 수준"이라 평가했다.

세계 물의 날(매년 3월 22일)을 전후해 세계 여러 나라와 기관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물포럼을 열고 있다. 그 가운데 스톡홀름 '세계 물주간', 세계물위원회의 '세계 물포럼', 싱가포르의 '국제물주간'은 세계 3대 물포럼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들 포럼은 대부분 대륙 중심의 시각에서 의제와 논의가 이뤄지고 있어 기후위기 속 안정적 물 확보에 비상이 걸린 화산섬의 물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제 플랫폼은 사실상 부재한 상황이다.

제주가 그동안 축적해 온 지하수 관리 경험, 선진적 모니터링 시스템, 그리고 화산섬 특유의 수문·지질 환경을 바탕으로 제주 세계 화산섬 물포럼을 창설하자.

우선 하와이와 라팔마 등 세계 주요 화산섬들과의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참여 지역을 점차 확대해 나가자. 추진 전략과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할 전담 기구도 만들자.

제주를 세계 화산섬의 물관리 정책결정자, 연구자와 전문가, 그리고 청소년들이 모여 물의 미래를 논의하고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중심지로 만들어 나가는 원대한 꿈을 설계하자. 꿈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실천을 위한 지혜를 모으고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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