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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팀장으로부터 듣다]잠녀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만들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세계 문화유산은 구체적으로 ‘유네스코 구비전승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불린다. 잠녀를 이런 유산에 포함시키려면 어떤 노력이 뒷받침돼야 할까.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팀장으로 활동하는 허권씨로부터 얘기를 들어봤다.우선은 잠녀 자체가 제주도의 문화재로 지정돼야
해녀
김형훈
2005.11.2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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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학으로 접근한 잠수] 제주 잠녀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돼왔다. 제주 민요 중 대표적인 노동요를 이어오고 있는 데다 무속굿 등을 통한 춤과 의식, 타 지역과는 확연히 다른 제주 사회에 대한 접근을 위해서 ‘잠녀’는 꼭 거쳐야하는 하나의 관문이었다.제주의 삶의 터전이었던 바다밭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서도, 독립을 위한 외침 속에서도,
해녀
고 미 기자
2005.11.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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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공동어장②제주 바다의 공동어장의 경계선은 예로부터 마을과 마을 사이의 경계를 기준으로 삼았지만, 상당히 많은 예외사항이 있었다.그 중 하나가 연안 바다에 떠밀려온 시체를 처리하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어쩌다 마을 경계 수면에 시체가 떠오르게 되면 세력이 큰 마을이 이웃 마을에 시체 처리를 맡겨 그 수면은 시체를 처리한 이웃마을의 어장이 됐다
해녀
제민일보
2005.11.0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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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녀기획 박스] 잠녀 사회의 공동체 의식물질은 철저히 잠녀 개개인의 뜻에 따라 행해지는 것으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개별적’인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어느날 물질을 나가든 말든, 오랜시간 물질하단 말든, 바다밭에서 무엇을 캐든 잠녀 개개인의 자유인 것이다.그러나 마을 어장은 잠녀들이 공동으로 가꿔야 하는 데다, 바다밭은 늘 위험이 도사리
해녀
홍석준 기자
2005.11.0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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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가 제주 섬에서 진상을 받은 품목은 제주에 사는 모든 주민들이 매달려야 조달이 가능할 정도로 가지수나 물량이 만만치 않았다.해산물만 하더라도 전복을 따는 남자를 칭하는 ‘포작(鮑作)’과 해조류를 주로 채취하는 잠녀가 감당해야 할 몫이 이루 헤아리지 못할 정도였다.“…제주 포작인 등 남녀 74명이 전라도 흥덕 지방에 이거하고 본토로 솰환되는 것을 싫
해녀
제민일보
2005.10.2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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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에 긴 파람으로 숨을 토해내니, 그 소리 비장하게 움직여서 수궁 깊이 스민다”조선 정종 때 신광수는 「석북집」(石北集)에서 잠수의 광경을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했다.매서운 엄동설한에도 우는 애기를 애기구덕에 실어두고 한숨 들이마신 뒤 뛰어드는 바다물질. 숨쉬러 올라오면서 고요했던 바다는 갑자기 숨비소리로 충만해진다. 세종조 기건(奇虔) 목사가 눈보라가
해녀
고 미 기자
2005.10.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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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제주도를 대표하는 국제적 브랜드인 ‘잠녀’를 주제로 한 ‘세계 해녀 문화 축제’가 제안돼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해녀연구팀의 ‘세계 해녀 문화 축제’ 아이디어는 세계섬문화 축제 폐지 후 대표 축제 발굴에 고민하고 있는 제주도의 귀를 솔깃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화’에 그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에도시대에서 지
해녀
고 미 기자
2005.09.25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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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0일. ‘지진 경계의 공백지역’이라 불리던 후쿠오카에서의 지진이 발생, 모든 내외신을 바쁘게 했다.그리고 5개월이 흐른 뒤다. 지난달 28일 잠녀 취재를 위해 일본 이시가와현 와지마시로 향했고, 마침 모 일본 방송이 특집으로 방송한 다큐멘터리에서 ‘잠녀’의 흔적을 찾았다.다큐는 당시 지진의 진앙지와 가까운 위치에 있던 켄가이지마(玄界島)의 변화
해녀
고 미 기자
2005.09.0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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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비가 내린 20일 저녁. 북제주군 구좌읍 하도리에서 잠녀 할머니들을 만났다.84세의 나이로 아직도 물질을 하고 있는 고해생 할머니, 시집 와서야 물질을 시작했다는 이추봉씨(45)…. 제주 바다 뿐만 아니라 대마도, 청진까지 바다를 건너다니던 그들이지만 마을처럼 소박하기만 한 제주의 어머니들이었다.체계적으로 배운 것도 없이 어릴 때부터 바다에 나가 해
해녀
제민일보
2005.08.2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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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년 아기 나
해녀
제민일보
2005.08.2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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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잠녀를 얘기하면서 ‘해녀 노???빼놓을 수 없다.해녀 노래는 제주도 잠녀들이 바다로 물질을 나갈 때, 배를 저어가면서 부르는 민요로, 오돌또기·맷돌노?ㅋ願돤訶踪ㅊ읒側×?함께 제주도의 대표적인 민요 5수에 든다. 해녀노래는 제주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될 정도로 보존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
해녀
고 미 기자
2005.08.0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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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싸나~ 이여싸나~’하고 소리를 내뱉고 나면 노 젓느라 힘들었던 일도, 사느라 고달팠던 일도 다 잊을 수 있었지”해녀노래 예능보유자인 김영자씨(67)는 아직도 ‘물질’을 한다. 한창때 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태왁을 매고 바다로 나서는 일이 자연스럽다.해녀노래는 지난 1971년 8월 제주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됐다. 당시 정순덕씨에 이어 지난해 5월 별
해녀
고 미 기자
2005.08.07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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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녀항일운동 기념사업위원회가 구성된지 10년이 됐다. 잠녀항쟁이 조명을 받게 된 데는 위원회의 역할이 매우 컸다. 특히 현재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김전근씨(73)의 노력은 그야말로 ‘투쟁’ 그 자체였다.김 위원장은 잠녀항쟁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 솔직히 1999년 위원장직을 맡을 때까지 잠녀항쟁을 전혀 몰랐던 그였다. 그러나 위원장을 맡으면서 그는 잠녀
해녀
제민일보
2005.07.2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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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녀항쟁은 끝났는가, 그렇지 않다. 역사적 평가가 이제야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도 잠녀항쟁은 진행형이다. 올해초까지 잠녀항쟁과 관련, 애국지사로 포상을 받은 이는 9명에 불과하다. 그것도 2003년이후 포상을 받았으니 잠녀항쟁이 그동안 어떻게 다뤄져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잠녀항쟁이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5년 해방 50주년 기념사업
해녀
제민일보
2005.07.24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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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녀항쟁은 여성 주도의 독보적 일제항거였다. 그리고 그건 단순한 생존권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1931·1932년 사이에 잠녀들은 238차례의 시위를 감행했으며, 연인원 1만7000여명이 참가한 일제 사상 최대 규모의 투쟁을 벌였다.잠녀항쟁 주역 중 유일한 생존자인 김옥련 할머니(96)는 잠녀항쟁을 여성중심의 첫 생존권 투쟁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감정적인
해녀
제민일보
2005.07.1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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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녀들은 자신들의 복장과 장비를 갖추고 항쟁에 나섰다. 항쟁에 나섰던 잠녀들은 흰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었다고 한다. 머리에는 흰수건을 쓰고, 그 위에 물안경을 썼다. 손에는 비창과 종개호미를 들고 일제에 대항했다고 했다. 여기서 잠깐 잠녀들의 옷과 호미와 비창 등 물질도구를 알아보자.잠녀들의 작업복은 ‘물소중이’로 불린다. 물소중이는 각 가정에서 스스로
해녀
김형훈
2005.07.1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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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가 현재 문화재 등록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는 사항 중 3항의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것으로 해녀의 직업, 자산 그리고 불턱문화로 상징화되는 해녀노래 등의 자산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또 2항의 경우 일정한 시간에 걸쳐 혹은 세계의 한 문화권내에서 건축, 기념물조각, 정원 및 조경디자인, 관련예술 또는 인간정주 등의 결과로
해녀
제민일보
2005.06.27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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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집을 떠나 황혼되면 돌아와/어린 아기 젖먹이며 저녁밥 진다/하루종일 해왔으나 번 것은 없어/살자하니 한숨으로 잠못 이룬다(강관순 작사 ‘해녀의 노
해녀
제민일보
2005.06.27 1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