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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한라산…」 제1회 혈망봉을 쓴지 벌써 만 1년이 지났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실감난다. 연재하게 된 동기는 한라산을 수백 번 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곳곳에 얽힌 이야기들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 시중에 돌아다니는 글들은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았다. 그 때 우연하게 제민일보 기자와 이야기하다가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 충분히 연재할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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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5.06.3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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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비동산은 한라산 어리목 등산코스로 한 시간쯤 올라가서 숲지대를 벗어난 곳에 있는 조그만 오름을 말하며, 새잽이동산이라고도 한다. 고지도나 옛 기록에는 조접(鳥接)이라 되어 있고,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제작하여 등산로 입구에 세워 논 안내지도에는 조접동산(鳥接童山)이라 되어 있다.지명은 무수천을 무쇠천이라 해석하여 철천(鐵川)으로 표기하듯 원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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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5.06.2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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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고상돈이 있다면, 일본에는 우에무라 나오미(植村直己)가 있다. 그는 1970년 5월 일본인 처음으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1984년 2월12일 43세 때 동계 매킨리를 최초로 단독 등정했지만 3일 뒤 실종되고 말았다. 산에 대한 원대한 꿈을 매킨리에서 접고 흙으로 돌아간 정상의 사나이들이다.우에무라는 모교인 메이지(明治)대 산악부 선후배들이 중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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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5.06.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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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9월15일은 산악인의 날로 지정되어 있다. 제주출신 고상돈 산악인이 지구의 끝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가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1977년. 그 해 에베레스트는 각본을 써놓고 한국의 고상돈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77 한국에베레스트 원정등반대”는 ’77년 6월11일 서울에서 발대식을 갖고, 7월6일 네팔 카트만두를 경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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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5.06.1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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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고상돈은 세계속의 제주인이요, 산악영웅이시다. 1977년 9월15일 한국인 처음으로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8,848m)를 등정한 제주출신이다. 그는 1948년 12월 제주시 일도1동(속칭 칠성통)에서 태어나 제주 북교 4학년을 마치고, 청주에서 자라면서 등산을 배웠다. 그와 제주산악인과의 인연은 ‘77 한국에베레스트 원정등반대’가 에베레스트를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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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5.06.02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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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정상에서 해마다 정기적으로 봉하는 산신제는 1470년 이약동 목사가 산천단으로 옮기고 나서 498년만에 한라산 철쭉제란 이름으로 부활하여 올해로 39회째를 맞는다. 물론 기우제 등과 같은 파상적인 산신제는 있었다. 제1회 한라산철쭉제는 1967년 5월21일 제주산악회(회장 안흥찬) 주최로 열렸다. 오전 6시 제주시를 출발하여 성판악코스로 정상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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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5.05.2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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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철쭉꽃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만큼 화사하지만 철쭉의 가슴속에는 애절하고 슬픈 사연이 있다.전설에 의하면, 옛날 장성한 아들 500명을 거느리고 사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들은 죄다 나가고 어머니는 커다란 가마솥에 죽을 가득히 쑤고 있었는데, 나막신을 신고 가마솥 가장자리를 들며 죽을 젓다가 그만 가마솥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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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5.05.1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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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관음사에 가면 탐승정(探勝亭)이란 팔각정이 있다. 이 팔각정은 1957년 9월12일 4·3으로 소실된 관음사 터에 당시 류충렬 경찰국장이 주도하여 지은 산장으로 한라산국립공원에 현존하는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1957년 10월 동부지역에 지어진 이승만 대통령별장과는 한 달 빠른 동갑내기다. 탐승정 건물은 철근 8각 지주, 13척 높이의 시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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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5.05.12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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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고지도의 한라산 정상 부근에 ‘마근다리(馬斤多里)’란 지명이 나타난다. 1770년대에 제작한 제주삼읍도총지도(濟州三邑都總地圖)에 보면 왼쪽에 ‘대마근다리(大馬斤多里)’ 오른쪽에 ‘소마근다리(小馬斤多里)’가 보인다. 또 ‘상마근다리(上馬斤多里)’나 ‘하마근다리(下馬斤多里)’로 적혀있는 것도 있다. 이은상의 기록에는 “왕관릉 능선을 안막은다리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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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5.04.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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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 등산코스를 따라 올라가다가 삼각봉을 지나 탐라계곡(한내)으로 내려간 지점에 봉래천(蓬萊泉)이란 샘이 있다. 해발 1500m지점으로, 이 샘의 이름은 1937년 9월에 한라산을 등반한 『노산등척기』에 나온다. 기록에는 등산로 해발 1,100m에 의항입구(蟻項入口)란 푯말도 있었다고 한다.일제강점기 때인 1935년 여름 철도국 방침으로 한국의 산야를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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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5.04.2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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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악회는 1945년 9월15일 창립하여, 1946년 2월, 1948년 1월, 1956년 1월, 1957년 1월과 8월과 11월에 한라산을 등반하는 등 제주도에 산악회가 없을 때부터 한라산을 많이 찾은 산악단체다. 그중에서 1948년 1월에 등반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1948년 적설기 한라산 등반을 위해 1월9일 저녁 제주 산지항에 도착했다. 그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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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5.04.14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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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과 한라산 등반을 같이 말하는 것 자체가 어긋나는 비유라서 조심스럽다. 4·3이 일어난 1948년 10월 제주도 경비사령관이 “해안선으로부터 5㎞ 이상 떨어진 중산간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인정하여 총살하겠다”는 포고문 발표와 함께 한라산 등반사는 단절시기를 맞았다. 그러나 사태가 많이 가라앉을 쯤인 1953년 8월부터 한라산개방 전까지 산을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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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5.03.3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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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순효씨(98·제주시 이호동)“큰물 먹었던 시절이 그립지, 맛난 물 눈앞에 두고도 맘대로 먹지 못하니”이호동 ‘큰어른’ 김순효씨는 ‘큰물’에 대한 과거를 그리워했다. 이호정수장을 만드는 일이 제주시민들에 물을 공급하는 ‘공익적’인 일이라 건설당시엔 별다른 반대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김씨는 “큰물에서 넉넉한 물을 쓰다가 수도관을 통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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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윤
2005.03.27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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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고지도중에는 『탐라지도병서(耽羅地圖幷序)』와 『탐라지도병지(耽羅地圖幷識)』란 지도가 있다. 제주도유형문화재 13호인 『탐라지도병서』는 1709년 이규성(李奎成) 목사가 만든 지도로,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탐라지도병지』는 1841년 이원조(李源祚)목사가 부임하여 『탐라지도병서』 그대로 모사(模寫)하여 다시 제작한 지도이다. 『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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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5.03.24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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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 저액(壬戌 猪額) 한라산에 ‘임술 저액(壬戌 猪額)’이란 지명은 1709년 제작한 『탐라지도병서』를 비롯하여 1700년대 만들어진 여러 지도에 나타난다.‘임(壬)’과 ‘술(戌)’은 24방위의 하나이며, 임(壬)방향은 정북(正北)에서 서쪽으로 15도 정도 기운 방향이고, 술(戌)방향은 정서(正西)에서 북쪽으로 30도 정도 치우친 즉, 서북서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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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5.03.1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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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 등산코스로 올라가다보면 용진각 직전에 예리한 창끝이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서 있는 ‘삼각봉’이라 부르는 봉우리를 만난다. 옛날에는 이 봉우리를 ‘소연두봉(小鳶頭峰)’이라 불렀다. 1937년 한라산을 등산한 이은상의 기록을 보면 “개미목 머리에 올라서서 앞으로 바라보는 곳에 삼각형으로 우뚝 뾰족한 봉이 솟아 있으니 이것은 소연두봉(小鳶頭峰). 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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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5.03.1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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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용진각대피소 동쪽 50m 지점에 세워져 있는 故 마에가와의 추모비에는 『소화 11년(1936년) 1월3일/경성제국대학산악부원 마에가와 도시하루(前川智春)는 등정을 마치고 하산하던 도중 이곳에서 서북쪽 75m 지점에서 조난되었다./소화 11년 8월/제주도학동/성대산악부』라고 새겨져 있다.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조난사망일이 하루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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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5.03.03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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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경성제국대학 산악부의 한라산 조난은 이즈미세이치의 인생을 크게 바꿔 놓았다. 이 조난이 계기가 되어 제주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이해하게 되었고, 신방의 계시도 들었다. 눈 속의 마에가와가 살아있다는 신의 계시는 맞지 않았지만,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알 수 없는 그로서는 ‘무엇’을 찾을 수 있는 막연한 학문을 하고 싶었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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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5.02.24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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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가와 대원이 조난당하자 제주 사람들은 몰래 신방을 찾아가 점을 쳤다. 신방들 모두 마에가와는 죽지 않았다. 신들이 그를 숨기고 있다는 점괴가 나왔다. 모두가 그러길 바랐다. 등반대장 이즈미세이치가 무속을 안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서울에 돌아가서 조난경위를 산악부 지도교수와 부원들에게 보고를 했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보고를 듣고는 ‘동화 같은 보고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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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5.02.1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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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월2일. 침낭에 들어가서 눈 붙일 새도 없이 새벽이 찾아 왔다. 눈은 내리고 있었지만 어젯밤 같지는 않았다. 산장에 있던 세 사람은 스키를 신고 빈 몸으로 정상으로 향했다. 산장에서 백록담 천막까지는 1시간여 밖에 걸리지 않았다. 어젯밤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조용한 아침이다. 천막의 여섯 대원은 짐정리를 마쳐있었다. 약간의 짐과 식량을 남겨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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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5.02.10 1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