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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그냥 지나칠 손가. 예순 해가 다 되도록 따뜻한 눈길 보내지 않았던‘속냉이골’의 무리주검들. 제단이 없으면 어떤가. 시멘트 길바닥이어도 상관없다. 향을 살라 천도(遷度)의 불공을 올린다.덤불을 헤치고 속은 찔레꽃이‘찾아와줘 고맙수다’고 하늘거린다.그것만으로 입막음 해버릴 탁발 순례단이 아니다.위축의 슬픔을 강요해 온 이념의 뿌리를 아예 뽑아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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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4.05.17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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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고도 고맙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제주도의 뭇 생명과 여러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탁발순례의 길이 편하기만을 바라겠습니까만 그동안 제주에서는 너무나 벅차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이 벅찬 행복도 사실은 고통과 슬픔의 꽃이라는 것을 잘 알겠습니다. 제주도의 돌담과 밭담을 볼 때마다 소름이 돋았습니다. 저 시커먼 현무암의 돌담 속에 어쩐지 낯이 익은 얼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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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4.05.16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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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질 때 수천의 소중한 기억들이 사라졌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그 사라진 기억들을 위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 가공할 양의 폭탄을 퍼붓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 폭탄 아래 사라져버릴 수천 수만의 또다른 소중한 기억들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시 바그다드요 팔루자였다. 아라비안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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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4.05.13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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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나이를 먹어 늙는 것이 바람이었습니다. 세상의 풍파와 세월의 거센 휘몰아침, 그리고 폭풍이 지난 후 고요한 아침바다처럼 넉넉함과 편안함이 부러웠습니다. 그저 한라산으로만 보이던 낯선 오름들과 돌, 그리고 바다는 육지에서 바라보던 제주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차를 타고 지나쳐버렸던 마을과 바다, 그 사이에서 사람들과 뭇 생명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힘든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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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4.05.12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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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모든 길 위의 시간들께 경배합니다. 이곳 천등산 박달재 아래에도 제주에서 바다를 건너고 남녘을 거슬러온 바람이 붉은 철쭉의 꽃숭어리를 보듬고 잎가지를 흔들고 있습니다.지금쯤, 제주바다는 해맑게 빚은 아름다운 청잣빛이겠지요.탁발순례의 행렬이 제주 해안을 한걸음씩 휘감을 때마다, 오래 만나지 못하고, 오래 문 닫고, 오래 기다렸던 말씀들이 생명평화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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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4.05.1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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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보리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보리가 익으면 자리돔의 맛도 익어간다고 합니다.보리가 익어가는 뜨거운 산길을, 자리돔의 맛이 드는 맛있는 바닷길을‘생명 평화 탁발 순례단’이 걷고 또 걷고 있었습니다. 지난 4일 저녁 서귀포에서 그들을 만났습니다.시장에서 탁발을 마치고 돌아오는 그들에게서 나는 맑고 향기로운 물내음을 맡았습니다.도법 스님, 수경 스님,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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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4.05.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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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에 유혹되어 뒷산에 올랐습니다. 비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숲은 군데군데 미끄러웠습니다. 조심했건만 미끄러졌습니다. 신발속은 진흙투성이였습니다. 할 수 없이 신을 벗고 걸었습니다. 그런데 발바닥에 전해지는 진흙의 감촉, 그건 예상치 못했던 수확이었습니다. 사람의 발은 본래 신발보다 흙이 잘 어울린다더니! 그 뜻이 실감났습니다.매개 없이 직접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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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4.05.07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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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의 성지’가 되기 손색없는 곳인 제주가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생명이 파괴되고 있다. ‘좀 더 크게, 좀 더 많이, 좀 더 빨리’로 비유될 ‘개발중독증’현상이 사회문화환경까지 파괴시키고 있으며 지역주민을 소외시키는 개발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이제, 우리는 다시 꿈을 꾼다. 제주가 ‘생명평화의 섬’이 되는 꿈을….생명평화탁발순례가 고난과 비극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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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4.05.04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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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오랏수다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며지리산 천오백 리를 맨발로 다니신도법 스님, 수경 스님, 남준이 형, 원규그리고 고운 눈매 선한 사람들이물로야 뱅뱅 돌아진 이 섬 이 산중에오로지 평화 오로지 생명을 위해 오셨다니정말 잘 오랏수다영주 한라산을 에돌아 걷고 또 걸으면서나는 물 만나면 물이 되어 흐르고검붉은 오름 만나면 바람으로 흐르고베롱베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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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4.05.0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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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향해 걸어가기 위해 제주에 왔네 관덕정에서부터 걸었네 명월지나 애월바다 마라도며 도너리오름 그대를 만나 서로의 눈동자에 눈부처를 새기고함께 길을 가려 햇볕과 비바람의 날 걷고 걸었네바람과 돌, 오름의 전설이 숨쉬는 땅 내 눈 모자라 다 보고 또 못 보네유년의 기억을 부르는 바람개비의 풍차가 가던 발길을 설레게 하며 멈추게도 했네 개발로 파헤쳐진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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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4.05.03 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