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동 매립’의 후유증이 십여 년이 지난 요새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매립의 대가로 업자가 장학금을 내놓기로 약속해놓고 이제까지도 지켜지지 않아 사회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 속에 오늘도 나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옛날의 탑아래, 탑동 방조제 위를 걸어가고 있다. 여러 날 내린 장맛비로 바다 물은 흐릿해져 있고, 자칫하면 파도가 넘어들 형편이
제주시에서 차를 타고 성산포 쪽으로 달리기 30여 분, 만장굴 이정표가 보이는 지점에서 우회전하여 한라산 쪽으로 달린다. 길 양옆의 협죽도들은 바람 탓인지, 벌레 탓인지 이파리가 비실비실 하고 꽃도 피우지 못했다. 그런 길가에 집 두어 채가 들어앉았고, 집 동편과 사방은 온통 푸른색 천지다. 그런 속에 현길언의 소설
신제주에서 차를 타고 서부관광도로 쪽으로 진행하다가 무수천 삼거리에서 광령리 방향으로 선회하여 광령과 고성 두 마을을 지나면 항파두리 사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돌하르방이 세워진 입구로 들어서면 얼마 안가 좌우에 띠 우거진 토성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가 항파두리 토성 동북벽이다. 지금은 성안을 가로질러 동북에서 서남으로 길이 뚫려 있다.아마 여기는
관덕정 처마 밑에 서서 일제가 잘라버린 짧은 처마와 팔작(八作)지붕 겹처마 건물의 천장을 우러러본다. 대량(大梁) 아래 장설(長舌) 양면에 그려져 있던 격조 높은 벽화는 먼지와 풍상에 흐려져 보이지 않게 됐다. 돌아서서 광장을 마주하고 서니 왼쪽은 최근 복원한 진해루(鎭海樓)이고, 오른쪽은 로베로호텔과 국민금고 건물이 나란히 앉아있다. 백록담의 제주섬의 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