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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과 관련된 신앙과 지명을 살펴본 바 있다. 이 외에도 말과 관련된 속담·고사성어는 다양하게 쓰여왔다. 쇠고기에 비해 말고기는 소화가 잘 되고 오래 먹어도 물리지 않아 많이 먹을 수 있었기에 끼니를 대신할 수 있었을 만큼 좋은 고기라는 뜻으로 쓰는 "말궤기론 데 살아도 쉐궤기론 떼 못산다"(말고기로는 끼니가 되고 쇠고기로는 끼나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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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2.04.1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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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 덕수(德修)에서 화순(和順)으로 가는 킨 길로 들어서서 1km정도 가면 산방산 밑으로 야트막한 동산이 소나무를 앉고 자리하고 있다. 특별한 것이 보이거나 별난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이 드신 덕수 분들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곳이다. 바로 이 곳이 광정당(廣靜堂)이 있던 곳으로 예로부터 신령(神靈)이 세기로 유명한 당(堂)이 있던 곳이다. 그러기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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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2.04.09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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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을 때 말(馬)은 센 힘과 빠른 발걸음이라는 말이 지닌 특징을 우리 인간들이 활용하여왔음을 살폈다. 전마(戰馬)로서 국방(國防)에의 이용은 물론 안장을 활용해 교통통신에 이용하고 마차를 활용해 운반에 이용했으며 쟁기를 활용해 밭갈이에 이용하는 등 다양하게 쓰였음을 보았다. 특히 우리 제주에서는 여러 마리의 말을 함께 좁씨를 뿌린 밭에 넣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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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2.04.0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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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말(馬)이 국방에의 이용은 물론, 교통통신·운반·농업·종자마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됐음은 살핀바 있다. 이밖에도 오늘날에는 레저 스포츠의 하나로 승마(乘馬), 경마(競馬)에 이용할 뿐만 아니라 문화 행사가 열리는 곳에서는 투마(鬪馬)도 볼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말(馬)을 목적하는 바에 알맞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 일에 적합한 도구를 활용했음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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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2.03.26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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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키우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었다. 그냥 한라산 위에 올려놓고 가끔씩 물통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서 확인하는 것뿐인 그냥 기르는 방법과 공동목장에 올려 기르는 방법, 그리고 농경에 이용하거나 마차 등에 활용하는 말은 집에서 길렀다. 80% 이상이 처음의 방법을 택했지만 일제 시대 때 공출이 있으면서부터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농경·승용·운반 또는 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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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2.03.19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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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상(李衡祥)은 제주는 물론 청주, 동래, 경주 등 몇몇 고을에서 수령을 지냈다. 유교의 이념철학을 실천한 청백리(淸白吏)로 항상 독서와 연구에 정진하여 60여종, 200여권의 방대한 저작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 제주에서는 「절 오백·당 오백을 없앤 영천 이 목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형상이 제주목사로 제수(除授)된 것은 숙종 27년(1701)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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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2.03.1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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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마공신(獻馬功臣) 김만일(金萬鎰)은 명종(明宗) 5년(1550)에 제주에서 태어나 인조(仁祖) 10년(1632)에 돌아 가셨다. 일찍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해 벼슬을 지내다 선조 15년(1582) 순천부(順天府)의 방답진(防踏鎭)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지낸 후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때 말(馬)의 쓰임이 전마(戰馬), 체신(遞信) 등 국가적인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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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2.03.05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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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제주에서 말이 사육되고 이용됐는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오곡(五穀)의 종자와 함께 송아지와 망아지가 전래되었다"는 삼성신화(三姓神話)의 기록을 통해 볼 때 우마(牛馬)의 이용이 상당히 오래 전부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김녕리 궤네기 동굴", "곽지 패총" 등 선사시대(先史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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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2.02.2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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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천연기념물 제347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제주도 제주마는 제주조랑말, 조랑말, 탐라마 등으로 불리고 있다. 언제부터 제주에서 말이 사육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원나라의 속국이 된 후인 고려시대 충렬왕 2년(1276)부터 우수한 말의 생산지로 활용하기 위해 목장을 개설하고 종마를 들여왔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이때부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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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2.02.19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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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초지를 갖고 있고, 범·호랑이 등 맹수들이 없어 옛부터 말의 산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 제주였다. 더군다나 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는 말의 모습을 고수목마(古藪牧馬)라 하여 영주십경(瀛洲十景)의 하나로 쳤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라 고 하는 말이 전해 오고 있기도 하는 곳이다. 제주의 말은 조선시대 세종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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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2.02.09 1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