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로 변천사 한라산 백록담에 오르는 등반로는 어떤 변천과정을 거쳤을까. 조선시대 제주목사나 판관등이 한라산을 오른 경우는 많지만 기록을 남긴 경우는 채 10건도 안 된다. 많이 올랐다는 것은 이약동목사 이전에는 한라산 백록담 북쪽의 제단에서 한라산신제를 지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르는 경우도 많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예전에는 어느 코스로 백록담에
제주도민들에게 한라산에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물에 대해 묻는다면 대부분 시로미를 꼽는다. 그리고는 옛날 진시황에게 불로초를 구해 오겠다며 동남동녀 500명을 데리고 떠난 서불(서복)이 제주도 한라산에서 불로초라며 캐 간 것이 시로미였다고 덧붙인다. 사람이 먹으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불로 불사의 신비한 영약으로 알려진 "시로미"
◈무수천 진달래소남악에 높이 올라 대포술 마시고 / 냇길따라 내려 오니 흥이 절로 새로워라 / 들국화는 만발하여 예와 같으니 / 한동안 술이 두 중양(重陽·9월 9일 중양절)을 이루네. 조선시대 효종 2년(1651년) 제주목사로 부임했던 이원진(李元鎭) 목사가 제주도를 순시하던 중 광령계곡의 아름다움
◈방애(방아)오름 역사적인 2002한일월드컵을 앞둔 지난 5월 26일 한라산 백록담에서는 철쭉제를 겸한 월드컵 성공기원 봉수제가 열렸다. 백록담에 올라 제주도땅을 내려다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수많은 오름들이다. 특히 동쪽과 서쪽에는 수많은 오름군락이 오밀조밀하게 늘어선 모습이 장관이다. 이렇게 수많은 오름들 중 백록담에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오
◈파초일엽과 섶섬 월드컵이 열리며 전 세계의 눈이 가장 아름다운 경기장인 서귀포월드컵경기장에 쏠리고 있는 지금 서귀포 앞바다에 가면 자연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무지를 느끼게 해주는 사례가 있다. 행정구역상 서귀포시 보목동 산1번지로 면적인 142.612㎡인 섶섬(森島)은 보목동 해안에서 450m 떨어져 있는 155m 높이의 조그마한 섬이다. 수직으로 된 주상
◈범섬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2002한일월드컵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곳 제주도의 서귀포에서 월드컵 경기가 열린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장 중의 하나로 극찬을 아끼지 않는 서귀포경기장의 가장 큰 자랑은 주변과 어우러진 수려한 경관이다. 뒤로는 한라산의 웅장한 자태가 버티고 있고 앞으로는 한없이 펼쳐지는 바다와 어우러지는 장관이다. 그리고 그 바
◈물장오리전설상 제주도에서 가장 깊은 물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그 질문에 앞서 제주도의 전설에 등장하는 한라산과 제주도를 만들어낸 전설속의 여신인 설문대할망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다.설문대할망은 얼마나 몸집이 크고 힘이 셌던지 전설에서는 삽으로 흙을 떠 일곱 번 던지니 한라산이 되었고 치마폭에 흙을 담고 돌아다니면서 한 줌씩 던진 게 오늘날의 오름이 되었다
조선시대의 위대한 과학자들 중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1804?∼1866?) 만큼 유명한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더 들여다보면 김정호에 대해 최고의 지리학자라는 사실 외에 제대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우선 생몰년도 추정만 가능할 뿐이고 더 나아가 국사책에 소개되는 김정호의 옥사설도 최근에는 왜곡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양보경 교수(성
◈옛지도에 나타나는 한라산지형 지도는 집단생활의 산물로 평면의 도면 위에 영역을 설정하고 방위를 기준 삼아 주요지형과 지점을 약속된 그림으로 표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주도의 지도는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학자들은 고려 목종2년(1002)에 제주도에서의 화산이 폭발한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임금에게 바친 태학박사 전공지의 작품에서부터 비롯
한라산의 식물에 대한 연구는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제주의 식물을 서양에 처음 알린 것은 프랑스의 타케(Emile J. Taquet) 신부와 파우리(Faurie R.P.U.) 신부에 의해서다. 타케 신부는 1907년 제주도에서 파우리 신부와 함께 많은 식물을 채집해 프랑스의 식물분류학자 레베일레와 바니오트에게 보낸다. 이때 채집된 식물들은 두 학자
◈한라산 고산식물 흔히들 한라산을 가리켜 식물의 보고(寶庫)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4000여종의 식물 중 그 절반에 가까운 1800여 종이 한라산에서 자라고 있으니 그렇게 불려도 과장된 말은 아닐 것이다. 이는 지리산의 식물이 1300종, 설악산 1000종임을 감안하면 한라산에 얼마나 많은 종이 자라는지 쉽게 이해가 간다. 특히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5월의 한라산을 대표되는 진달래와 철쭉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보다 앞서 정확한 이름부터 알고 지낼 필요가 있다. 현재 한라산에서 자라는 식물은 진달래와 철쭉이 아니라 털진달래와 산철쭉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그리고 제주도의 꽃이라는 영산홍도 참꽃나무라 해야 된다. 먼저 진달래와 철쭉의 가장 큰 차이점은 꽃피는 시기. 진달래가 먼저 피고 철쭉은 진달래가
◈선작지왓 연일 20도가 넘는 초여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갖가지 봄꽃들도 예년보다 1주 또는 보름 가량 일찍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대로 가면 조만간 한라산의 털진달래도 그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산 중턱을 온통 붉은 색으로 장식할 것이다. 그리고 진달래꽃이 하나 둘 떨어질 무렵이면 뒤이어 철쭉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근 한달 가량 한라산은 붉은
한라산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벚나무속 식물로는 왕벚을 비롯하여 올벚나무, 산벚나무 등이 있다. 해발고도에 따른 분포대를 보면 해발 500이하는 올벚나무가, 700고지 이상에는 산벚나무가 자라고 그 사이 즉 500∼700고지대에 왕벚나무가 자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3종을 구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개화시기를 보면 저지대에서부터 먼저 피기 시작하는데
◈왕벚나무 며칠전 왕벚꽃축제가 열렸다. 예년보다 일찍 꽃이 핀 후 떨어져버려 다소 맥빠진 축제가 되고 말았지만 왕벚나무 하나에 한국과 일본 양국의 치열한 자존심 싸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왕벚나무가 얼마나 소중한 우리의 자산인지 이해하게 된다. 1900년대 초반 제주도 한라산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자존심을 건 사건 하나가 발생한다. 1908년 4월 15일에
한라산에서의 산신제는 고려시대부터 시작된다. 고려사에 보면 고종 40년(1253년) 겨울 10월 무신에 국내 명산과 탐라의 신에게 각각 제민(濟民)의 호를 내리고 춘추로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올리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조선시대까지 계속 이어지는데 1601년 제주를 찾았던 김상헌어사는 임금의 명을 받들어 한라산 백록담에서 한라산신제를 봉행했
◈산천단곰솔 제주도에서 가장 큰 나무를 꼽으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디를 이야기할까. 조천읍 와흘리를 비롯한 본향당의 신목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비자림이나 성읍리의 팽나무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높이나 아름드리 밑둥을 가지고 이야기하게 되면 대부분 처음으로 떠올리는 곳이 제주시 산천단의 곰솔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64년 천연기념물
◈골머리오름 아침저녁으로 한라산을 등뒤로 하고 광활한 태평양을 바라보며 살아야 했던 제주 사람들에게 한라산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을까. 제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제주해협을 통과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이 한라산의 웅장함과 함께 한라산 자락의 수많은 골짜기로 이루어진 아흔아홉골이다. 사람들은 완전한 숫자의 개념으로 100을 이야기하는데 왜 하필이면 하나가 모
고려시대와 조선 초 ·중기에 자연경관을 소재로 하여 그린 그림을 산수화라고 한다. 실제의 모습을 그렸다 하여 실경산수화라고도 불리는데 정선의 금강산도로 대표되는 진경산수화도 그 일종이다. 그렇다면 기록에 나타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실경산수화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문헌기록에 나타나는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화산활동 모습을 담고 있다는 서산도(瑞山圖)이다. 고려 목
제주도 최후의 화산활동 지역은 어디인가. 올해 북제주군에서는 비양도 탄생 1000주년 행사를 벌인다고 한다. 비양도가 1002년에 생겨났다는 것이다. 비양도가 1002년에 분출한 화산폭발의 결과물이라는 것인데 그 근거에 대해 살펴보자. 고려 목종 5년(1002년) 5월 "탐라의 산이 네 곳에 구멍이 열리어 붉은 색 물이 솟아 나오기를 5일만에 그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