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지거리의 국어사전적 정의는‘욕설의 속된 말’이다. 욕설이란 것이 어차피 속된 말이니 이를 이르는 표현도 속된 말이 더 어울려 보인다.

언어학을 공부한 적이 없어 잘은 모르지만, 굳이 비교 연구를 해보지 않아도 욕지거리의 다양함에 있어서 우리나라 말을 따라갈 언어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분야에 있어서 우리말의 표현은 실로 다채롭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평소 점잖은 처신을 하던 사람도 자동차 운전대에만 앉으면 튀어나오는 육두문자로 주변 사람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조차도 흠칫 놀라게 하는 일은 드문 예가 아니다. 그만큼 욕설은 우리의 생활과 무의식 깊숙히 자리 잡은 어엿한 문화의 양상마저 띤다.

럿셀은‘행복의 정복’에서,‘이른바 더러운 말’을 쓰는 사람은 합리적인 견지에서 볼 때 그것을 쓰지 않는 사람보다 나쁘다고 할 근거가 없는데도, 유아기에 일방적으로 주입된 도덕률에 따라 그런 것을 어기는 행위는 곧 죄악을 범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의식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그것이 불행을 가져오는 요인의 하나가 된다고 설파한 바 있다.

그럼에도 형법은 남들이 보는 앞에서 욕지거리를 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으니, 이른바‘모욕죄’가 그것이다. 모욕죄로 기소 당한 사람은 안 그래도 무의식에 각인된 죄의식에 따라 한 번 가책을 당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도 벌금을 물기 위해 지갑을 털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이중의 고난을 겪게 되는 셈이다.

필자가 법원에 재직 당시 처리한 형사사건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공소사실인 즉, 여성인 피고인은 여러 사람 앞에서 또 다른 여성인 피해자와 다투다가 흥분이 고조되자 대뜸“야개기 보뜬”이라고 욕설하여 공연히 모욕을 가했다는 것이었다. 검사는 친절하게도 제주 사투리를 모르는 법관을 위해 그 말 옆에다 괄호를 친 다음“‘목이 짧은 ×’이란 뜻의 제주 방언”이라고 주석까지 달아 놓았다. 엄숙이 강조되는 법률실무에서 이런 사건을 보고 실소하는 것은 바라던 것 이상의 소득이다.

그러나 그런 것에 벌금을 매겨야 하는 실무자로서는 여간 낯간지러운 것이 아니다. 애들 말싸움에 정색을 하고 회초리를 들이대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러니 욕지거리를 들은 상대방이 다음과 같이 되쏘고 싶어도 쌍방 모욕죄로 걸릴까봐 꾹 참고 구차하게 고소를 하여“콩이네, 팥이네”주워 섬길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주뎅이 데와진 ×”
해석은 독자에게 맡긴다.

<강봉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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