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요!”

올해로 21살이 된 정훈이가 치아 치료할 때마다 외치는 말이다.

이 기구는 무엇에 쓰는 것이냐, 이런 재료를 쓰면 장단점이 뭐냐, 오늘은 아파요 등등.

이 정도면 정훈이의 질문 공세에 설명은 30분, 진료는 10여분 정도밖에 할 수 없다. 웬만한 의사들이 귀찮다고 느낄 정도다.

정훈이란 친구를 설명하면 키는 188cm로 보통보다는 큰 키에 체격도 우람하며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지만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치과에서는 겁이 많은 소년으로 변한다.

정훈이가 어찌나 궁금증은 물론 치과 공포증이 많은지 하루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 정훈이 생각에 햇빛을 가린 구름만큼이나 내 맘이 뿌옇게 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정훈이를 탓하기보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지 못한 잘못이라는 맘이 자꾸 들기 때문이다.

그런 뒤 한 번은 정훈이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치료를 해보리라 결심을 했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딱딱한 거리감을 줄일 때 치료효과도 더욱 좋아질 것이란 확신에서 내린 결정인 셈이다.

“수술용 가위를 주세요”

간호사에게 던진 한마디에 진료용 의자에 누워있던 정훈이가 벌떡 일어나며 “저 수술하지 않을래요! 뭐 하시는 거예요”라고 황급히 간호사를 말렸다.

단순히 치료를 받으러 왔던 정훈이로선 당황스런 순간인 게 당연하다.

이런 뒤 “내가 그 동안 진료 내용에 대해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지 못한 벌로 정훈이의 코털을 다듬어 주려고 해요”라는 말을 정훈이에게 건네자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완강히 거부하다 진지한 표현이란 느낌을 받았는지 조용히 수술대에 누웠다.

정훈이에게 이런 행동을 한 것은 환자가 진료때마다 느끼는 두려움과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일종의 준비동작인 셈이다.

제주에서 치과를 운영한 뒤 환자에겐 처음으로 정훈이의 코털을 예쁘게 손질했다.

효과는 그 어떤 명약보다도 탁월했다. 코털 사건이후 정훈이는 치료때마다 불안해하던 전에 모습은 춘산에 봄눈 녹듯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여느 환자와 같이 편안하게 치료를 받았다.

환자와 의사의 거리감이 좁혀져서 인지 정훈이를 치료한 뒤 그의 어머니와 누나, 아버지까지 온 식구가 단골 고객이 돼버렸다.

정훈이의 치료일지를 들여다보면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통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특히 신체 일부를 맡기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인만큼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됐다.

<안창택 치과의·제민일보의료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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