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국제사회는 지구촌이라 불려진다.시간과 공간으로 엄청난 거리감을 느껴 오던 지구사회가 지구촌으로 불려지자 마냥 가깝고 정겹게 다가선다.더군다나 새천년을 맞는 지구촌은 각 마을마다 재미있는 이벤트를 연출한 바 있다.

 그러나 여러 행사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사건(?)은 단연 교황청의 고해성사였을 것이다.알려진대로 교황은 ‘무오류’의 기반 위에 존립한다.그같이 절대적 권위를 갖는 교황청이 그들의 역사적 과오를 비판하고 이를 반성하는 의식을 갖추었다.비이성적인 종교재판,야만적 살육으로 얼룩진 십자군전쟁,약소민족의 수탈로 이어진 식민지 지배의 전위대 노릇에 이르기까지 회개하고 반성한 것이다.

 교황청의 고해성사와 더불어 또 하나의 신선한 자기고백이 국내에서도 있었다.국내 유력 일간지와 그의 자매지인 주간지가 그간 줄기차게 과거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만행을 추적하여 왔다.민간단체와 연대해서 베트남 현지를 찾아 비전투원,즉 민간인 학살현장을 취재한 것이다.그러나 20∼30년이 지난 지금까지 현장은 생생하게 피해자의 가슴속에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의 고해는 뒤따르지 않았었다.

 이같은 교착상황에서 66년 당시 중대장으로 참전했던 김모씨의 고뇌에 찬 증언은 사실부합 여부를 떠나 인간의 참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고해성사가 아닐 수 없었다.우리 민족이 일제의 비인간적인 만행과 미군의 노근리 사건과 같은 인간도살을 떳떳하게 되물을 수 있는 양심선언이 아닐까 한다.인간은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으나 그것을 반성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야말로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참회가 이렇게 고귀하고 아름다울진대 국가와 같은 거대한 조직이 개입된 사건은 더욱 그 진실이 규명되고 역사 앞에 사죄함으로써 조직의 윤리성이 확보될 것으로 여겨진다.우리의 아픔을 잉태하고 있는 4·3사건도 굳이 50여년 전 어느 섬지방,국토의 변방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폄하하거나 애써 눙쳐 가라앉힐 일은 아니다.역사는 비록 과거의 행적에 지나지 않지만,그것은 거울과 같아 현재와 미래를 비추어 내는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그러하기 때문에 역사의 주체인 인간은 역사 앞에 겸허하고 절제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제 4·13 총선의 후유증도 점점 가시고 있다.이 조그마한 섬을 난마와 같이 들끓게 했던 총선의 앙금은 잠시 접어 두어야 한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런 자기성찰 없이 마구잡이로 역사의 뒤안길로 흘려 보내서는 안될 일이다.아무런 자기정리 없이 잊을 일은 아니다.반드시 역사 앞에 떳떳하게 서서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허와 실을 진단하여야 할 것이다.역사에 부끄럽지 않을 민주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하여,이제 우리는 화해하고 마음의 평화를 갖도록 하자.<김승제·제주도지방개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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