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이 개발을 구실로 마구 할큄을 당하고 있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욱이 시행기관이 허가기관에서 제시한 조건을 어기면서 천연보호구역 안의 귀중한 자원을 없앤다는 건 매우 심각한 일이다. 구체적인 지시가 없었다는 이유로 나무를 마구잡이로 잘라내도 괜찮지 않느냐는 의식은 언제면 바꿔질까. 최근의 사례를 보며 환경에 관한 공무원들의 인식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5 16도로 확장공사를 하고 있는 건설교통부 제주개발건설사무소가 문화재현상변경 허가 조건을 어기고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의 나무를 무더기로 베어내 말썽을 빚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제건소는 확장구간에 포함된 교량중 하나인 상효교를 철거하고 도로를 확장하며 구실잣밤나무 등을 베어냈다. 문제가 된 지역은 돈내코를 끼고 있는 천연보호기념물 제182호로 지정된 곳이다. 원래 천연보호구역에서는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내려 해도 문화재청의 현상 변경허가를 얻어야 한다. 만약 허가사항이나 조건을 위반했을 때는 허가를 취소하게 돼 있다.

제건소는 지난 3월30일자로 문화재청으로부터 허가를 얻긴 했지만 허가조건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재청의 허가 조건은'훼손될 수목은 최소로 하되 제거하지 말고 가식(假植)후 공사완료와 함께 교량 주변에 이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건소는 이식해서도 산다는 보장이 없었고, 처음부터 베어도 좋은 수종을 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결과야 어떻든 구체적인 지시가 없는 허가이었기에 시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가운데 5.16도로 확장공사 구간이 여러 군데가 있고, 이와 같은 경우가 계속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문화재청은 현상변경허가를 내줄 때 보다 구체적인 사항까지 살펴야 할 것을 주문한다. 또 제건소도 허가를 받았다고 마구잡이 식으로 공사를 할 게 아니라 신중하게 판단해 시행해달라는 것이다. 천연보호구역이 끼어 있는 5.16도로는 관광도로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지 결코 산업도로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겠다. 세계의 유산으로 길이 남을 한라산이 개발을 구실로 파괴되는 일은 결코 용인될 수 없기 때문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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