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6·5 재·보선이후 온통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도지사와 제주시장에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된 결과이다. 그나마 남군만은 아직도 노란 광채를 띠고 있지만 졸지에 고립무원이 되고 말았다.

왜 이렇게 해야 되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 때문이다. 제주시장에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면 제주시는 곧 파란색으로 도배된다. 또 남군수가 열린우리당 소속이면 남군전체는 노란색으로 덧씌워진다. 위로 3형제 모두가 파란색 옷을 걸쳤는데 유독 막내 혼자서만 노란색을 띠어서 마치 서자가 된 기분이다. 이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때마침 허성관 행정자치부장관은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제의 폐지 방침을 밝혔다. “기초단체장 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하자는 것인데 중앙이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백번 옳은 얘기다. 그는 정당공천 배제는 관련법 5줄만 고쳐 국회를 통과시키면 되는 매우 간단한 작업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어째서 정당공천제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것인가. 무엇보다 정치권이 공천에 따른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때도 이를 적극 추진해왔지만 야당의 사생결단식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지난 95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의원들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황낙주 국회의장 공관을 점거, 농성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로울 것이다. 결국 기초의원만 공천을 배제하는 선에서 통합선거법 개정안이 타결됐는데 만약 그때 기초단체장도 공천을 배제키로 결론이 났더라면 풀뿌리 민주주의는 더욱 깊게 뿌리내렸을지 모른다.

그래서 기초단체장들은 지금도 모이기만 하면 정당공천제의 폐지를 주장한다. 순수한 지방자치의 정신과 취지를 살린다는 신념에서다. 물론 정당공천에도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천을 통해 지방차원에서의 책임정치가 가능케 하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또 국민의 정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정당의 기본적 기능이란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정당공천에 따른 역기능이 더욱 많다는데 문제가 있다. 출마를 미끼로 한 정당의 ‘공천장사’는 어느정도 사라졌지만 중앙정치 폐습의 지방확산은 여전한 실정이다. 또한 도지사와 시장 군수의 소속 정당이 제각기 다른 데서 빚어지는 갈등과 불화, 부작용 등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지방분권을 하자면서 지방의회와 자치단체장을 중앙당에 예속시키는 것은 모순이다. 그런 측면에서 광역단체장과 광역의원도 점차적으로 정당의 굴레에서 해방시켜줘야 마땅하다. 그런마당에 기초단체장의 공천을 우선 배제하는 것은 지당하고 시급한 일이다. 공천이 배제된 기초의회선거와 형평을 맞추기 위해서도 그렇다. 기초의원의 정당 참여를 배제한 것도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신을 살리자는 의도가 아니었던가. 손바닥만한 제주도 한울타리 안에서 4개 시군을 서로 다르게 색칠하는게 과연 잘하는 일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기초단체장의 경우 대부분 무소속이 당선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이 주민생활과 밀접한 생활정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기초단체장만 반드시 정당에 예속돼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역으로 생각해보면 답은 쉽게 나올 것이다.

<진성범·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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