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무부지사에 이계식씨가 내정됐다. 이번이 무려 9번째이다. 지난 95년부터 자리가 생겼으니 1년에 한번꼴로 바뀌는 셈이다. 공직자의 수명치고는 비교적 단명이다.

지금까지 정무부지사는‘도지사의 오른팔’로 통해왔다. 권한이 막강해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의 선거공신들로 기용됐기 때문이다. 임용때마다 논공행상 시비가 끊이지 않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그래선지 그에게는 늘 반갑지 않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대독 부지사’‘술상무’‘최고명정감’등 참으로 많다.

그래도 그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은 줄지어있다. 누가뭐래도 제주도의 2인자로 꼽히기 때문이다. 정무부지사의 수명이 극히 짧은 이유중 하나다. 뒤에서 밀어내는 데야 더 이상 버텨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정무부지사는 그만큼 비중있는 자리인가. 한마디로 빛좋은 개살구이다. 위상에 걸맞는 권한이 받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인사권도 없고 결재라인에서도 비켜서 있다. 자칫하다간 ‘왕따’당하기 십상이다.

법제상 정무부지사의 공식적 역할은 의회와 언론 담당이다. 그러나 그에 따른 하부조직이나 인력은 변변치 않다. 여기에다 결재권마저 없으니 누가 그를 의지하고 따르겠는가. 기득권을 지키려는 관료사회는 민간전문가를 호락호락 수용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

이러한 정무부지사에 대해 김태환 도정이 인사청문회를 실시키로 한 것은 일단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임명절차가 과연 합리적이고 정당한 것이냐는 점이다. 지나치게 절차가 까다롭고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유능한 인사들은 삼고초려해도 ‘모셔오기’ 어려울 판에 공개적으로 시험을 본다면 누가 선뜻 나서겠는가.

지금 정무부지사의 임용절차는 국무총리 되는 것보다 더 치열하다. 때문에 자존심이 강한 실력자들은 기피할 공산이 크다. 1차 공모기간에 1명밖에 신청하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다행히 공모기간을 연장한 끝에 응모자가 5명으로 늘었지만 그것도 마지막날 주위의 독려로 3명이 한꺼번에 신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오는 5일 실시될 인사청문회도 결코 만만치 않다. 도는 청문회를 통해 업무추진 능력과 전문성 등을 철저히 따진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도민대표성에서부터 문제를 안고 있는 인사청문회가 어떤 재주로 그같은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인가. 가치관과 도덕성이나마 제대로 짚는 것만도 성공적일 터이다.

특히 후보자의 진술에 대한 신빙성도 문제이다. 위증에 대한 제재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과연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 청문회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국무총리는 국회의 인준을 받아야 하는데 정무부지사는 누구로부터 인준을 받는다는 것인가. 그래서 인사청문회가 도지사의 면책구실만 주는 요식행위로 흐를 수도 있다는 기우가 나오는 것이다. 지난번 기획관리실장 공모제처럼 들러리만 세우는 청문회라면 차라리 안하는 것만 못하다.

우근민도정이 바로 직전 정무부지사를 임용할 때도 사상 첫 공채라며 요란을 떨었었다. 당시 정무부지사의 응모자격으로 국제관계 개선과 외자유치 등 여러 능력과 자질을 제시했었다. 그러나 그후 제주도의 외자유치는 얼마나 이뤄졌는가. 김도정은 더이상 전시행정에 치우쳐서는 안된다. 모양만 갖춘다고 만사가 되는게 아니다.

<진성범·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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