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이 자리를 잡기 이전에 감기 증세로 약국을 찾아 조제약을 사먹은 경험을 누구나 한두 번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우선 약국에 가서 증상을 얘기하고 약을 조제해 달라고 부탁한다. 약사는 이것저것 보충하여 질문을 한다. 그런 다음 조제실로 들어가 몇 가지 약을 섞어 조제를 하고는 얇은 종이 여러 장에 약을 나누어 담고 오각형으로 포개어 준다. 마지막으로 몇 마디 당부를 하는데, 그 말이 약국마다 다르다.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찬물을 먹지 말라 등등…. 전에 살던 동네 약국에서는 수박을 절대로 먹지 말라는 특이한 주의를 주곤 했었다.

으레 당연시했던, 한 시대의 풍속도로 자연스레 자리 잡았던 위와 같은 풍경이 실은 불법의 현장이라는 것을 안 것은 사법연수원에 입소하여 실무교육을 받을 때였다. 약사는 고객의 질병에 대해 문진을 하거나 촉진을 하는 등 어떠한 형태의 진료행위도 해서는 안 되며 조제는 다만 의사의 처방전대로 해야 하는 수동적인 행위일 뿐이었다.

서울지검에 배속되어 몇 달간 시보로 근무하던 어느 날 밤 불법 조제 행위에 대한 일제 단속 지침에 따라 현장에 출동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서울시내 몇 군데 약국을 찜해 놓고 경찰관과 함께 약국 주변에 잠복하다가 나오는 손님을 불러 뭘 샀느냐고 물어서 혹시 조제약을 샀다는 말이 나오면 들어가 현행범 체포 절차를 밟으라는 것이 그 임무였다.

그러나 한 시간을 기다려도 조제약을 사가는 사람은 없었다. 따라가 확인해보면 기껏‘박카스’나 두통약 같은 것이 전부였다.

씨름선수 강호동 같이 생긴 늠름한 경찰관은 따분한 표정으로 나에게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물었다. 햇병아리 시보가 뭘 안단 말인가? 안절부절 끝에 하는 수 없이 본부에 있는 담당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조건 경찰관을 시켜서 조제를 해오라는 것이었다.

그 후에 벌어진 일은 지금은 돌이키고 싶지도 않은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작전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필시 해열제와 기침약 몇 알을 섞어서 감기약을‘조제’하였을 그 약국 종업원은 강호동이 내미는 수갑에 순순히 손을 맡겼다. 늦은 밤이라 약사는 퇴근했는지, 그 종업원은 약사에게 전화 한 통화하고 가면 안 될까요? 라고 애원했다. 강호동은 단호히 거절했다.

함정수사는 엄연한 범행 교사 또는 방조 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관되게 함정수사의 적법성을 인정해 왔다. 논리는 때로 이렇게 무력하다.

<강봉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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