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체구에 오른 다리가 가늘어 거의 힘을 지탱해 줄 수 없는 허약한 다리를 가진 환자. 휠체어를 타지 않는 것 만해도 이 환자한테는 천만 다행이다.

다리가 정상인 사람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진료용 의자지만, 그는 무척 힘이 들어 보였다. 왼쪽 엉덩이를 진료용 의자에 걸터앉고 그 다음 간호사가 오른쪽을 엉덩이를 밀려 올려야지 진료 준비가 가능할 정도다.

그러나 그를 보면 볼 수록 한 가지 행동할 때마다 하루에도 수없이 되풀이되는 어려움 속에서 지내는 그의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내 자신이 정말 장애인이란 생각이 들곤 한다.

반 층을 올라와야 2층으로 가는 승강기가 있어서 올라올 때도 무척 힘이 들었을 것이고, 인도에 걸린 차도와의 경계를 만들어 준 턱이 한없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을 것이다. 특히 겨울철에 심한 눈이라도 오면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괜히 바깥 출입을 자제할 것이고, 재래식 화장실 가는 것이나 버스를 탈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든 인공 구조물에 심한 폭력을 당하는 그들의 어려움을 지방 행정기관 관리자들이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고 원망스럽다.

그로부터 어느 날인가 연락이 왔다. 진료시간이 끝난 저녁 8시 치료받은 부위가 불편하다며 전화가 온 것. 제주시로 오겠다는 그의 억지를 막고는 서귀포로 향했다. 통증의 아픔에, 그런 밤에 혼자 운전하게 하여 치과로 오게 하는 것이 장애인이 느끼는 불편함을 더 첨가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가 억수로 쏟아 붇는 5.16 도로를 따라 환자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더 편하다는 생각도 이런 결정에 한 몫했다. 아니 그런 것이 환자에 대한 예의이고 당연한 책무일 것이다.

안개가 낀 어두운 밤에 비와 심한 바람에 5미터 전방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환자의 통증을 치료해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어둠 속에서도 안개로 가려진 도로가 훤히 보이는 듯 했다.

그를 만나 간단한 치료를 마친 뒤 뿌듯함은 여느 진료에서 느끼는 감정과는 사뭇 차이를 보였다. 그래서인지 무사히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육체적 피곤함이 정신적 상쾌함에 상쇄되고도 남아 오히려 깃털을 단 새가 된 느낌이었다.

비록 피곤하거나 짜증이 나는 일이라도 결과가 상대방을 기쁘게 해 줬을 때는 오히려 봉사한 사람이 더 행복해 진다는 사실을 이날 체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안창택·치과의·제민일보의료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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