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자기결정권 은 성적 행위에 대하여 자유의사에 따라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서, 국적, 인종, 성별, 연령 등에 관계없이 인정된다.

우리나라 형법은 이러한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하여 강간죄, 강제추행
죄 등으로 엄벌하고 있다. 강간죄나 강제추행죄는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하
고 강제로 자기 성욕을 채우는 것이므로,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 을 침
해하는 범죄이다. 강제추행죄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그 객체(피해자)가
될 수 있으나, 강간죄는 여성만이 객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를 강제로 성교하거나 강제추행한 경우에도 강간죄나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대법원은 정상적인 부부사이에는 강간죄나 강제추행죄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상적인 부부사이에는 성교의 승낙이나 성적 자기결
정권 포기의 의사표시가 있는 것으로 보거나, 가정의 은밀한 부분에까지 법
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이다. 다만 남편은 강
간죄나 강제추행죄가 성립하지 않아도, 폭행죄나 상해죄, 폭력행위등처벌에
관한법률위반죄 등으로 처벌받을 뿐이다.

일본도 정상적인 부부사이인 경우 강간죄나 강제추행죄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고, 다만 사실상 이혼, 별거 등 특별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강간죄나 강
제추행죄를 인정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여성계에서는 부부사이에 강간죄나 강제추행죄를 인정할 것을
꾸준히 주장하여 왔다.

그런데 최근에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남편이 아내의 이혼요구를 거부하면
서 강제로 아내의 옷을 벗기고 추행한 사건에 대하여 강제추행죄의 성립을
인정하였다. 혼인한 부부는 상대방의 성적요구에 응할 의무는 있지만 각자
의 성적 자기결정권 을 포기한 것으로는 볼 수 없으므로 부부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성적 자기결정권 은 보호되어야 하고, 위 대법원의 입장은 30년
전에 선고된 판결이어서 재검토할 여지가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미국은 결혼강간면책법(marital rape exemption)에 의하여 부부사이에 강
간죄 등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다가 1976년 이후 대다수의 주에서 위 법이
폐지되어, 부부사이에 강간죄 등을 인정하고 있고, 영국은 1994년에 부부강
간죄를 인정하였으며, 독일은 1997년에 형법을 개정하여 혼인예외조항을 삭
제함으로써 부부사이에 강간죄 등을 인정하였다.

위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에 대하여 대법원이 어떤 입장을 표명할 것인
지 궁금해진다.<고성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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