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진료할 때인데 근처의 약사 님의 소개로 70대 할아버지가 틀니를 하시기 위해 치과에 오셨다. 믿을만한 분의 소개였기에 정성과 친절로 거의 한 달 여의 치료를 마치고, 이제 남은 것은 진료비용만이 문제였다. 미국에서는 개인 수표가 보편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믿고 통용하고 있다. 이 노인도 2000불이나 되는 액수를 개인수표로 써 주시 길래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 다음날 은행에 조회를 했더니 아예 구좌도 없는 엉터리 수표였다.

중대한 형사범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범죄행위였다. 나는 그 동안 공들인 수고에 대한 보답은 고사하고 치과 기공비도 내 생 돈으로 지출하게 생겼으니 경제적으로는 출혈이 심했고 배신감에 며칠동안 밥맛이 없었다. 당장 그 노인을 찾아 콩밥을 먹여 분풀이를 하고 싶은 마음 밖에 없었다. 아직까지도 그 노인만 생각하면 보복할 수만 있다면 하는 공격적 자세만 내 마음에 차지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상처만 깊어가고 진료할 때 그 연세의 노인을 보면 혹시나 하는 나쁜 습관이 생겨버렸다. 하루빨리 그런 선입견에서 벗어나 버리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가 않았다. 解衣推食 [해의추식] 이란 고사성어가 그 동안 담아뒀던 지저분한 마음의 쓰레기를 한꺼번에 버릴 수 있었다. 순간적이지만 내 체중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듯했고, 몇 년이 지난 지금이야 그 노인께 내 옷을 벗어줬다고 생각하자 응어리진 가슴이 풀리는 듯했고 선한 일을 했다고 여기니까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 비로소 용서할 수 있었다.

그 동안 눈꺼풀에 두꺼운 비늘이 씌워졌다고 일깨워줬고 순간 마음이 한결 자유스러워 졌다. 한나라 왕 유방이 한신 장군에게 옷을 벗어주고 먹을 것을 갈라줘서 그 덕으로 한신이 큰 장군이 되어 그 후 유방을 버리고 스스로 왕이 될 기회가 있었지만 유방을 배반할 수 없어 유방을 살렸다는 내용 이였다. 마더 데레사가 세상에 굶주리고 가난한 자가 많은 것은 가진 자가 베풀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도 스르르 이해가 됐고, 가진 자가 한 몫을 베풀면 못 가진 자가 열 몫 이상을 갖게 되어 그들은 서로 믿게될 것이고, 관계도 톱니바퀴에 윤활유를 칠한 것과 같이 부드러워져 투명한 사회가 되리라 확신도 한다. 교포노인이 비록 내겐 경제적 손실은 끼쳤지만 인술이 뭐라는 것을 가르쳐준 그분께 거꾸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 안창택 치과의.제민일보 의료자문위원>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