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중섭이 제주에 온 것은 51년 1월이었다.전쟁의 참화와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에 쫓긴 그가 따뜻한 서귀포에 자리잡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먹을 것이 없었던 이중섭의 가족들은 게를 잡아 장을 담가두고 반찬으로 먹었다.게와,물고기와,어린이들을 소재로 한 연작은 이 시기의 작품들이며 주로 서귀포를 무대로 하고 있다.섶섬과 범섬이 시원하게 내다보이는 바닷가에서 게를 잡으며 노는 두 아들을 보며 피난살이의 비참함을 잊고 맑게 웃는 부부를 그린 ‘그리운 제주도 풍경’은 당시 서귀포 앞바다 자구리일대의 정겨운 분위기를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청년기이후 서귀포를 떠나지 못하면서 ‘흔들리는 존재,너의 어두움’연작만을 그려 온 화가 고영우씨.고씨의 하나밖에 없는 산책로도 자구리일대다.절망과 불안에 싸인 인간군상의 그림만을 수십년째 고집하고 있는 그는 최근들어 풍경화를 한 폭 발표했다.

 검은 바위로 가득한 바닷가를 그린 이 작품의 제작경위에 대해 그는 “매립계획 때문에 콘크리트속에 파묻혀버릴 바위들이 마치 주눅이 들어 잔뜩 웅크리고 있는 슬픈 운명의 인간들 같이 보이더라”고 말했다.

 아쉬워하는 것은 화가들만이 아니다.이곳에 뿌리를 두고 살아온 주민들,집에 있는 자동세탁기를 놔두고 굳이 바닷가 용출수에서 빨래를 하는 30대 아낙네들,휴일이면 긴 낚싯대를 들고 고기를 낚으러 왔던 태공들이 앞으로는 갈 곳이 마땅치 않을 것이다.

 서귀포시는 시내에 유일하게 옛 그대로 남아있는 자구리해안을 매립하려는 이른바 워터프론트계획을 수립해놓고 있다.시는 최근들어 시민단체가 반발하자 해안만은 남겨둔다는 방침은 정했으나 개발사업으로 인한 경관의 변화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해안의 매립은 서귀포만의 문제가 아니다.또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앞으로도 매립될 곳은 많고 그 추세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과연 그 시설들이 불가피한 것이었는지,해안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는지 하는 것은 의문이다.

 제주도는 최근 해양수산부에 “바닷가에 잠수탈의장을 짓는 것은 허용돼야 한다”고 건의했다.명분은 그럴 듯하다.“바닷가내 건축을 제한한 공유수면관리법으로 인해 잠수들의 열악한 작업환경을 개선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잠수탈의장은 꼭 공유수면을 매립해야 지을 수 있을까.인근 부지를 매입해서 설치하는 것은 힘든 일일까.제주의 바닷가에는 벌써 수백개의 잠수탈의장이나 작업장·창고같은 것들이 있다.시원하게 뚫린 해안도로를 달리던 관광객들도 곳곳에 튀어나온 검은 모습의 탈의장을 보면 기분이 상한다.

 그럼에도 행정의 의지는 강력하고 시민단체들의 힘도 한계가 있는 것만 같다.이중섭이 그때 이 바다의 그림은 그려둔 것은 잘한 일이다.머지않아 이런 바닷가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고대경·제2사회부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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