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행정계층구조 개편이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당초 추진일정을 훨씬 넘기고서도 아직까지 혁신안의 최적안 제시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제주도가 초심대로 행정계층을 개편할 의지가 있는지 먼저 묻고자 한다.

도는 지금까지 행정계층개편과 관련한 용역을 무려 세번이나 시행했다. 그때마다 서로 다른 안이 제시되면서 논란만 가열돼왔다. 그러다보니 문제의 핵심과 본질이 엉뚱한 방향으로 변질 되고 있다.

그러나 계층구조의 개편내용에 대해서는 일단 논외로 치자. 그보다도 도의 추진 의지가 더욱 의심쩍기 때문이다. 또 추진일정도 너무 막연해 미덥지 못하다.

지난달 중순 최종용역보고서가 나오자 김태환 지사는 “지역경제가 어려운 마당에 도민 갈등구조가 생겨서는 안되며 도민 공감대 형성 이후로 결정을 미루겠다”고 밝혔다. 그는 연말 행정개혁위원회의에서도 “도민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판단된 이후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전임도정에서부터 짜놓은 계층구조 개편일정은 하루아침에 백지화되고만 것이다. 뿐만아니라 향후 추진일정도 안개속에 가려지게 됐다. 개편을 하겠다는 것인지, 이대로 묻어두겠다는 것인지도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도민공감대를 가늠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사실 도민공감대의 판단은 아무래도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잣대가 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무엇으로 도민공감대를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도가 계속해서 도민공감대가 확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질질 끌어도 그만인 것이다.

또 만의 하나 도민공감대가 끝내 형성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작정인가. 정녕 주민투표를 실시하지 않고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돌리겠다는 것인가. 이렇게 제주의 미래와 명운이 걸려있는 중차대한 현안을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으로 어물쩍 넘겨도 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수 없다.

애초부터 행정계층개편에는 많은 논란과 갈등이 따를 것으로 예상돼왔다. 정치지망생과 각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김지사도 취임초기에 이런 사정을 인식, “계층구조 개편으로 인한 도민갈등은 불가피하다”고 각오했다. 그러면서 “ 어떤 일이 있어도 ‘2004년말 주민투표’ 방침은 변함이 없다”고 공언한바 있다. 그런 그가 시장·군수와 지방의원들의 반발이 빗발치자 ‘시간벌기’로 방향을 급선회한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물론 정책을 결단하는데 있어 여론을 중시하고 신중을 기하는 자체를 나무랄수는 없다. 특히 행정계층구조개편과 같이 도민의 삶과 직결된 민감한 사안은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빙자한 책임회피 전술은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다.

따라서 도는 행정계층구조개편과 관련한 추진일정을 명확이 밝혀야 한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구체적인 로드맵에 따라 도민들을 설득하고 공감대를 확산시켜 나가는게 순리이다. 마지노선부터 정해야 일을 추진하는데 탄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않고 이제와서 새삼스레 경제문제와‘도민갈등’운운하는 것은 구렁이 담넘어가듯 적당히 모면하려는 술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대의명분이 확실하다면 사소한 문제들은 감수하고 가야한다. 일찌감치 각오했던 일들이 아니었던가.

몸에 좋다는 약도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일을 하다보면 접시를 깰수도 있고, 비를 맞을수도 있는 일이다. 그게 무서워서 회피한다는 것은 무책임하고 무사안일한 행태에 다름 아니다. <진성범·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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