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무분별한 개발로 파헤쳐진 안덕면 서광서리 곶자왈 모습.  
 
“오늘 내가 서 있는 이곳의 진정한 주인이 다녀갔다. 7살 찬우와 동생 지효, 영미, 그리고 이제 막 8개월이 지난 쌍둥이 창준이와 아영이까지…. 대지산 땅 한 평 사기에도 참여했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대지산에 새로운 생명의 씨앗인 상수리나무를 심는 일도 함께 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외친다. ‘아저씨가 우리 땅을 지켜주세요!’ ‘그래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아니 너희들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이 땅을 지켜 줄께’…(중략)…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은 우리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주인이다…”


지난 2001년 4월, 용인 죽전지구의 대규모 택지개발계획에 맞서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매입했던 대지산에 자라던 70년생 상수리나무에 올라가 시위를 벌이던 환경정의시민연대 박용신 국장이 나무 위에서 쓴 일기 중 일부분이다.

결국 주민들과 환경단체가 1년여에 걸친 힘겨운 투쟁 끝에 8만5000여평의 녹지를 보전하게 됐다.

□ 환경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
이처럼 개발 위주의 정책에 편승해 토지 이윤만을 쫓아온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환경운동의 패러다임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환경 보전이 더 이상 경제적 발전의 상징인 개발과 상충되는 개념이 아니라, 결국 환경의 한계용량을 높이는 과정으로서 이를 바탕으로 개발용량도 확대되는 것이므로 개발과 환경보전이 배타적인 가치 개념이 아니라는 의견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7일에는 전주 시민들이 한 구좌당 1만원씩 부지 매입비용을 모금, 완산칠봉 주변습지 1540㎡(470평)에 대한 부지 매입비용 1000만원을 완납함으로써 2002년 9월부터 추진해온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완성을 선언하기도 했다.

‘완산칠봉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모임(완사모)’은 매입한 습지 근처에 생태자연학습장을 조성해 시민들의 환경교육 공간으로 활용하는 한편, 전체 완산칠봉 면적 22만8000여평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유지 매입운동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 제주에서도 ‘트러스트’운동을
제주 지역에서도 이같은 트러스트(Trust) 운동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 10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제주도 환경보전중기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 최종 보고서에서 오름과 곶자왈 등 제주의 귀중한 자연자원의 보전과 합리적 이용을 위한 자발적인 범도민 운동으로 ‘제주 트러스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도민과 기업, 제주도 등이 역할 분담과 참여를 통해 자연자원을 사들여 적극적으로 관리·보존하자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신탁운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최근 국민신탁법 제정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곶자왈 트러스트’가 대안이다”
도내에 산재한 오름은 대부분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돼 개발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는 반면, 곶자왈 지역은 이미 각종 개발행위로 심하게 훼손됐거나 개발 위기에 직면해 있어 트러스트 운동의 필요성이 절실히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1월 제주 ‘곶자왈 지킴이’를 자처하면서 공식 출범한 (사)곶자왈사람들을 비롯한 도내 환경단체들도 이같은 트러스트 운동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제민일보는 이에따라 곶자왈사람들과 공동으로 올해부터 ‘곶자왈 트러스트’를 추진하기로 하고 범도민적으로 곶자왈 땅 한 평 사기 운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사무처에서 자연유산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금호 부장은 “올 1월 임시국회에서 국민신탁법이 통과되면 이같은 트러스트 운동이 법 테두리 안에서 활발히 이뤄지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내셔널 트러스트란?
내셔널 트러스트란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증여를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자원과 문화자산을 확보해 시민 주도로 영구히 보전·관리하는 시민환경운동을 말한다.

정식 명칭은 역사 명승·자연 경승지를 위한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 for Places of Historic Interest or Natural Beauty).

1895년 영국에서 변호사 로버트 헌터, 여류 사회활동가 옥타비아 힐, 목사 하드윅 론즐리 등 세 사람에 의해 내셔널트러스트협회가 설립된 것이 시초다.

1800년대 후반 영국에서 오래된 기념물과 자연이 산업혁명으로 인해 파괴되고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보호해야 할 대상을 소유함으로써 법률의 결함과 맞서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1907년에 제정된 내셔널트러스트법에서는 ‘아름답거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토지(자연)와 건물을 국민의 이익을 위해 영구히 보존해야 하고, 취득한 대상물에 대해서는 양도 불능을 선언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국내에서는 내셔널트러스트 방식을 이용한 환경운동이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됐다.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따르면 현재 전국적으로 19곳에서 내셔널트러스트 보존 활동이 벌어지고 있으며, 일반 시민들의 정성을 모아 영구 보존이 가능하게 된 곳으로 시민유산 1호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 시민유산 2호 최순우 옛집, 시민유산 3호 동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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