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안에 재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목표의 첫 걸음인가. 한국 재벌들의 고유상표인 이른바 '족벌경영'이 과연 종식되어 가는 것일까.

국내 대표적 재벌인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과 두 아들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동반 퇴진한다고 전격 선언,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곧 재벌 오너 체제의 붕괴와 대규모 기업집단의 해체를 의미하고 있어 그 파문은 '혁명적'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 명예회장의 퇴진의 변은 "세계적 흐름과 여건은 각 기업들이 독자적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하는 것만이 국제 경쟁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이었다. 곧 오너 체제의 퇴진과 함께 그룹전체가 전문경영인 체제로 재편한다는 시도임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언을 놓고 나오는 반응은 상반적이다. 한쪽에선 정 명예회장 일가가 진정으로 현대 계열사들을 선진형 경영구조를 갖춘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려는 의지의 실천으로 받아들여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다른 한 쪽에선 그들이 주주이사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이상 현재 현대가 안고 있는 난국을 돌파하고 여론을 속이기 위한 선언이 아니냐는 시각도 만만찮다.

한국의 재벌은 정부의 보호와 금융기관의 집중적인 지원으로 60년대 이후 문어발식 확장과 선단식 경영으로 덩치를 키워왔다. 재벌은 그 동안 경제발전에 적잖은 기여도 했지만 그 폐해도 엄청났다. 중소기업을 위축시켰고, 시장경쟁을 제한해 자원배분과 생산성의 효율을 떨어뜨렸다. 특히 정경 유착을 통한 갖은 독선적 행위와 사익 챙기기, 변칙상속 증여 등은 재벌총수들의 특권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출범이래 재벌 개혁에 힘을 쏟아왔지만 가시적으로 큰 성과는 얻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정 회장 일가의 경영일선 퇴진선언은 큰 의미를 갖는 셈이다. 바람직한 대기업의 모습은 각 계열사가 독립성과 투명성을 유지하고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책임전문경영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현대가 정 명예회장의 선언처럼 제대로 실천만 된다면 시장안정과 신뢰도 회복 등 경제전반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실천을 위한 과제가 워낙 많기 때문에 아직 낙관은 미지수이다. 다만 재벌의 황제경영을 종식하겠다는 신호탄이 된 것임엔 틀림이 없다. 이를 계기로 다른 재벌총수들도 진정으로 바람직한 대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몸짓을 보여줘야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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