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1년 전에 우리 곁을 떠난 한 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이 지역에 문화의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들에게 심어주셨습니다. 또 그 분은 항상 당당한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공직자의 길을 우리들에게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저와의 인연도 각별했습니다. 오랜 세월을 호형호제할 정도로 막역하게 지냈습니다. 제가 총장에 당선되자 “총장 턱 한 번 크게 먹자”며 껄껄 웃던 모습이 엇 그제 같습니다. 그 웃음소리가 귓전에 사라지기도 전에 부음을 접하고 망연자실하였습니다. 인간은 타인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오래 남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입니다. 지금도 가끔은 고 신철주 전 군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많은 아쉬움과 설움이 해일처럼 밀려옵니다.

지난해 6월 22일 신 전 군수님이 세상을 등지고 하늘나라로 갔을 때, 도내외의 많은 분들이 ‘지방정치의 큰 별이 떨어졌다’고 애도했습니다. 정치나 행정에 대한 불신이 팽배할 대로 팽배해진 현실을 감안한다면, 너무나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그 분이 살아 온 길은 성실과 신의, 그리고 공직에 대한 보람과 열정으로 가득했습니다. 진실로 우리 공직사회의 귀감이었습니다.

그 분은 ‘작은 거인’이었습니다. 체구가 작았지만, 속에 품은 뜻이나 이상은 우리가 도저히 상상도 못할 정도로 크신 분이셨습니다. 지난 3일 개관된 ‘제주돌문화공원’만 해도 그렇습니다. 목석원 백운철 원장님의 ‘돌 박물관’이야기를 듣고, 그 분은 ‘독수리가 병아리 채가듯’구상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중산간 지역 곶자왈 100만평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그 분의 혜안과 포부는 넓고 또한 크셨습니다.

우리 주변 흔하디흔한 돌을 우리들은 단순히 돌로만 봅니다. 그러나 그 분은 단순한 돌에서 문화와 역사를 읽을 수 있는 혜안을 가졌습니다. 그러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해녀박물관이나 조천만세동산에 있는 제주항일기념관, 정월대보름들불축제 등 이 모든 것들이 그 분의 남다른 안목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이 웅변적으로 그 분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창조적으로 사고하시는 분이기에 지금 보면 아름답지만 가시덤불로 무성해 농사조차 지을 수 없던 오지였던 곳에 예술인마을을 조성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17일 이곳에서 있었던 흉상 제막식 또한 그 분의 열정과 사랑을 기리는 문화예술인들의 순수한 정성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습니다.

“항상 남보다 앞서가야 직성이 풀리고, 새로운 것을 보면 늘 힘이 솟는” 고인의 글처럼, 그 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몸소 보여주고 가셨습니다. 수법(守法)-법을 지키고, 수신(守信)-신의를 지키고, 수비(守秘)-조직의 비밀을 지키고, 수시(守時)-시간을 지키고, 수분(守分)-자기 본분을 지키는 다섯 가지 생활원칙을 가지고 사셨던 그 분의 인생관은 오늘날과 같은 어지러운 세상에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살아생전 ‘1등 북제주군과 문화 북제주군’을 주창하신 그대로, 이제 그 분은 우리에게 ‘1등 군수님, 그리고 문화 군수님’으로 또렷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어느새 가신 지 1년이 되었습니다. 아니 10년이 가고, 100년이 가더라도 군수님의 공적과 업적은 우리들에게 ‘살아있는 전설’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선배님 ! 하늘나라에서 부디 영면하십시오.<고충석 / 제주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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