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식의 고비사막 마라톤 참가기] 네번째 이야기

   
 
  ▲ 바람이 멈춘 모래언덕은 너무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 푸른 초원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  
 
 6/1   휴식

어제의 모래 폭풍이 아직도 생생히 잊혀지지 않는 날이다. 사막에서의 모래폭풍은 정말 끔찍했다. 바람이 없으면 저렇게도 아름답고 고요한 모래언덕인데...

모래 언덕과 푸른 초원이 만나고 옆으로 호수가 있는 곳에 유목민 텐트가 있었다. 임대하는 곳인데 사막한가운데 있는 호텔(담요 하나밖에 없는 초라한 텐트지만)이라 생각하면 된다. 담요를 덮고 잤다는 것만으로도 춥지 않게 편하게 잘 수가 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여유라 사직도 찍고 편하게 쉴 수가 있었다. 너무나 힘들었던 첫날의 기억과 어제의 모래폭풍을 생각하며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영원하기만을 바랬다.

   
 
  ▲ 개울을 건너며..  
 
6/2   51km  낮기온 35도

하루를 쉬었지만 73km를 뛰고 난 후 오늘 다시 51km를 뛰어야 한다는 게 조금 부담은 되었지만 오늘까지만 잘 견디면 내일은 짧은 코스라 편하게 뛸 수 있다는 생각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오늘도 2그룹으로 나누어 출발했는데 먼저 출발하는 팀은 04시에 일어나서 6시에 출발장소로 이동했다. 먼저 출발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기다리는 동안 그동안 매일 텐트를 쳐주며 자원봉사로 일하던 사람들이 몰려와서 ‘코리아 넘버원’을 외치며 사인을 해달라고 난리였다.

많이 쑥스럽고 어색했지만 너무 고마웠던 친구들이라 그 이상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7시가 조금 넘어 버스가 오고 출발장소로 20여분 이동했다. 출발은 바로 산 밑에서 했지만 오늘은 길을 따라 올라가는 거라 그리 부담은 없었다.

   
 
  ▲ 2005년 이집트 사하라 사막마라톤 우승자 캐나다의 레이와 함께..  
 
오히려 초반부터 스피드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너무 만족스러웠다. 대회기간 동안 코스설계가 너무 맘에 들었다. 나중에 코스를 디자인한 롤프에게 코스가 너무 맘에 들었다면서 정말 고맙다는 말까지 했다. 첫날 ‘진흙(뻘)’코스만 빼고라고 말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일주일전에는 안 그랬다는 거다. 재미있고 농담도 잘하는 멋진 친구였다.

출반은 산을 오르면서 시작되어 대부분 걸으면서 시작되었다. 급경사를 제외하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선두그룹하고 같이 가야 된다는 생각에 무리하지 않고 2위와의 거리를 생각하면서 큰 부담 없이 뛰었지만 산을 내려오고 난 후 무릎과 발가락이 너무 많이 아팠다. 벌써 진통제를 여러 개 먹었는데도... 

cp3에 다가와 가면서 지성이형을 만났고 잠시 사진을 찍는 사이 로빈과 프란체스코가 금방 선두로 나서기 시작했다. 혼자 앞서기도 싫었지만(혼자가다 길을 잃을까봐) 너무 뒤쳐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같이 뛰기 시작했다.

   
 
  ▲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협곡을 오르며..  
 
   
 
  ▲ 내리막과 오르막의 반복되는 협곡을 지나며..  
 
얼마나 달렸을까? 개울가가 나왔고 다리가 보였다. 개울가로 향한 빨간 깃발을 보지 못한 난 다리를 건너려는 순간에 로빈이 다리 밑으로 깃발이 있다고 말해줬다. 혼자 달렸으면 또 길을 잃고 헤맬 번 한 순간이었다. 나중에 한국에서는 류윤기 선생님이 깃발을 보지 못하고 30분 이상을 지나가 버렸다고 했다. 대회기간 내내 행운은 나를 따라다녔다.

개울가를 따라 깃발이 있었지만 깃발을 보지 못하고 바로 개울을 건너고 말았다. 그렇게 반대편에서 한참을 올라가다 다시 깃발이 있는 쪽으로 건너갔다. 나무숲을 지나면서 무릎이 따끔거리는 게 벌에 쏘인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간 후 반대편으로 깃발이 보였고 다시 개울을 건너는 순간 먼저 출발한 창용찬님과 노민섭님이 보였다.

잠시 사진을 찍는 순간 캐빈이랑 찰스 레이가 깃발을 보지 못했는지 위로 계속 향하 길래 이쪽이라고 소리쳐 불렀다. 개울을 건너면서 선두그룹은 모두 여섯 명이 됐다. 그렇게 한참을 같이 달렸고 협곡은 바위와 돌, 급경사로 인해 너무 험해 위험한 지역도 많았다. 잠시 깃발을 잃어 방향을 잘못 잡았다가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끝나지 않은 오르막과 급경사, 바위 그리고 오늘은 고비사막에 와서 가장 더운 날(35도)이었다.

cp 3에서 다음 체크포인트까지 10km라는 말에 물을 한 병밖에 안 챙겼다가 물이 부족해서 갈증도 너무 심해져갔다. 하지만 계속되는 협곡은 끝날 줄을 몰랐다. 모두가 지쳐갔고 그렇게 한참을 가고 난 후 cp4에 도착했다.

   
 
  ▲ 험난한 코스는 계속되고..  
 
아직도 남은 거리는 10km였다. 다행히 순위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상태라 서로 앞서려고 하지도 않았고 레이가 우리 모두 같이 캠프에 도착하자고 힘들어 하는 친구들에게 격려까지 했다. 사막에서 레이스 도중 처음으로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모두가 지쳐 있었고 코스도 어려워서 우린 다 같이 걸었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얼굴표정 눈빛 호흡소리만으로도 서로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사막에서  이렇게 누군가와 같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오늘에야 알았다.  레이, 찰스, 케빈, 로빈, 프란체스코 모두가 멋진 친구들이고 그들이랑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영광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힘들어하면서 한참을 간 후 얼마큼 왔는지 얼마가 남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협곡 정상에 가까워지자 위로만 향하던 깃발이 오른쪽으로 향해있었다. 잠시 후 넒은 평원이 나타났고 하얀 캠프가 보였다. 우린 서로를 쳐다보며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모두가 같이 손을 잡고 캠프을 향해 달렸다. 캠프에서 스텝들이 북을 치며 환호해주었다. 우린 그렇게 다 같이 손을 잡고 피니쉬 라인에 도착했고 모두가  서로를 껴안으며 서로를 격려해주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서로를 껴안으며 느꼈던 오늘의 이 감정을 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에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다.

   
 
  ▲ 마지막 언덕을 오르며.. 왼쪽은 이번 대회 2위를 한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텐들에 들어와 쉬고 있으니 같이 텐트를 쓰는 일본친구들이랑 류윤기, 창용찬 선생님, 노민섭님, 이영호님 지성이형 모두가 들어왔다. 모두가 너무 힘들었는지 많이들 지쳐 있었고 오늘이 롱데이라고 하면서 서로를 격려해 주었다. 여자 1위로 들어온 일본의  카추코는 협곡에서 넘어져 굴렀다면서 몸에 상처가 나있었다.

또 다른 선수 몇 명도 협곡에서 넘어지면서 크게 다쳐 레이스를 포기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지희 누나가 많이 걱정되었다. 고비사막에서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지나온 시간들을 생각하며 간단하게 메모도 했고 텐트 밖에 나와 사진도 찍으며 쉬는 동안 하늘에는 어느새 사막에서의 마지막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잠을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금방오지 않았다. 얼마를 잤을까? 너무 추워서 잠에서 깼다. 너무 추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오늘이 가장 추운 날이었다. 새벽 기온이 영하5도의 날씨였지만 추위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던 나로서는 너무 추운 밤이었다. 1-2시간 밖에 자지 못하고 추위에 떨며 꼬박 그렇게 밤을 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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