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이렇게 탄생했다

‘제주인의 자존심’인 제민일보가 오늘(21일)로 지령5000호를 맞았다. 제민일보는 지난 1990년 제주 해직언론인 115명이 이 땅에 참 언론의 횃불을 밝히려는 염원과, 제주에 신문다운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온 도민의 정의감과 자존심을 담고 탄생했다. 지난 16년 동안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제민일보는 3000여 주주와 도민들에게 한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제민일보 탄생 과정을 되돌아보기로 한다. /편집자주 

# 창간 전야-78일간 농성·도내 사상초유 언론인 집단해고

1989년 11월 당시 제주신문사 편집국과 노동조합은 민주화와 참 언론을 바라는 도민의 뜻에 반하는 이사회의 결정을 성토하면서 민주언론쟁취투쟁위원회를 결성,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사회는 사원들의 저항과 도민 지지에도 불구하고 12월26일 폐업을 결정했다. 게다가 사측은 1990년 1월5일 경영부실과 적자경영을 내세워 제주세무서에 폐업계 제출, 한전에 단전요청, 전화국에 전화가입계약해지 청구를 했다. 이틀 뒤 1월7일에 회사는 각 사원에게 해고통지서를 내용증명으로 발송했다. 이로써 한날한시에 115명이 회사에서 쫓겨난 도내 사상 초유의 언론인 집단해고 사태가 빚어졌다.

1월23일 제주신문을 살리기 위한 노조와 회사간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새벽 전기동력선과 물 공급이 끊겼다. 1층 로비에서 78일 동안 밤샘농성을 벌이며 지령 1만3653호(1990년1월22일자)까지 신문을 발간하던 해직사원 115명은 1월25일 제주신문 종간 호외를 발행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3시 ‘참 언론 쟁취 출정식’을 갖고 제주신문 사옥을 떠났다.

# “함께 가자 우리, 참 언론 실천 위해”
옛 제주신문 해직사원 115명은 1990년1월26일 제주시 동광양 주택가에 있는 옛 감귤협동조합 제주시지소(제주시 이도2동1171의1) 2층 건물을 빌어, 새 둥지를 틀었다. 비좁고 허름한 감귤창고에서도 해직사원들은 참 언론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의지를 다졌다. 이른바 ‘창고신문사’ 시대가 문을 열었다.

사흘 뒤인 1월29일 이들은‘제주참언론동지회’(회장 김지훈)를 만들어 결성식과 현판식을 갖고 정식 발족했다. 이날 발기인 10명의 제청으로 새 신문을 창간해야 한다는데 뜻을 모으고 가칭 ‘제주도민일보사’창립총회를 가졌다.

‘제주참언론동지회 소식지’가 1월31일 처음 2만부가 발간됐다. 이날 소식지는  주1회씩 제작·발간돼 모든 사원이 직접 도내 전역을 돌아다니며 배포하거나 일간지 삽지 등을 통해 뿌려졌다.

동지회원들은 새 신문을 창간하기 위해 해고수당 등을 털어 사원주 5억2800만원을 청약했다(2월8일). 세계 언론사상 처음으로 사원들이 주주로 참여, 창간기금을 마련한 것이다.

 ㈜제주도민일보사는 9일 자본금 5000만원으로 제주지방법원에 법인체 등기를 했다. 발기인으로 김지훈 강정홍 김원민 송상일 김규필 양달성 김종진 김석곤, 대표이사에 김지훈, 이사 송상일 김규필 김종진, 감사 김석곤 등이 등기됐다.

‘제주도민일보’(濟州道民日報) 현판식은 2월12일 오전10시에 열렸다. 이날 ‘새 신문은 진실을 추구하며 양심과 민심을 대변하는 참언론 실천에 뜻을 둔다’는 기본방향이 설정됐다.

# 전 사원주주와 3000여 도민주로 탄생
모든 사원의 주주참여로 16일엔 자본금을 2억원으로 증자했다. 이날 CTS(전산제작방식) 입력기 12대와 고속프린터 4대 도입 계약을 맺었다. 이튿날엔 제주세무서에 제조·서비스분야 사업자 등록과 법인체 설립 신고를 했다. 고속컬러윤전기와 제판시설을 도입하기 위한 계약도 했다.

제주도민일보는 20일 도민주 공모방법도 확정했다. 참 언론을 구현하는 신문사는 도민 모두의 것이란 원칙을 세웠다. 1차 30만주 15억원 목표로 도민주를 2월26일부터 3월31일까지 공모키로 했다. 

‘제주인의 자존심’을 캐치프레이즈로 결정(2월29일)한 제주도민일보는 3월1일 도민주 공모를 하기 시작했다. 공모 첫날 5억9670만원이 청약된 것을 시발로, 제주도민은 물론 외지에서까지 청약이 전폭적으로 이어졌다. 이와함께 도내 마을별로 지역창간추진위원 195명을 선정·위촉하는 작업도 진행됐다.

3월24일 새 신문 제호를 ‘제민일보’(濟民日報) 로 확정했다. ‘제주도민’을 축약해‘ 제민’(濟民)으로 했다. 제주도민을 주인으로 하는 제주인을 위한 신문으로 거듭나겠다는 뜻을 담았다. 27일엔 공보처에 정기 간행물 등록신청을 했다.

도민주 청약을 마감한 결과(31일) 2758명이 17억2314만5000원을 청약, 당초 목표 15억원을 훨씬 넘어섰다. 여기엔 언론노련과 전북·대전·인천·경인일보, 부산MBC기자 등 전국 현직언론인 693명도 포함됐다. 이날 제민일보 자본금을 2억원에서 8억원으로 증자했다.

4월 들어 수권자본금을 32억원으로 변경 등기하고, 14일엔 사원 106명과 촉탁 3명에 대한 사원발령을 했다. 24일 주주총회를 열어 새 이사진(이사 17명·감사 1명)을 구성했다. 당시 이사진은 안태의 김지훈 강태영 고일환 고정국 김길웅 김민상 김태윤 김평윤 박진팔 안덕주 장대종 최현식 한관지 한성담 홍명표 김규필 이사와 김석곤 감사였다.

26일 이사회는 대표이사 회장에 안태의씨, 대표이사 사장에 김지훈씨를 각각 선출했고, 30일엔 윤전기를 도입해 설치했다.

5월들어 비상임논설위원 13명을 위촉하고 윤전기를 시험가동(11일)하는 한편 공보처 실사(18일)를 거쳐 30일엔 공보처 등록증이 교부(등록번호 가-100)됐다. 31일엔 창간선전지(컬러 4면)를 발행해 배포했다.

드디어 6월2일 제민일보가 창간호(32면)를 발간하며 탄생했다. 사시는 ‘인간중시 정론구현’(人間重視 正論具現)으로 정했다. 제호는 소암 현중화옹이 썼다. 이날 창간한 제민일보는 경영과 편집의 분리를 원칙으로 7가지 편집방향을 채택했다. 가장 지방적인 신문, 가장 많은 도민이 참여하는 신문, 가장 비판적인 신문, 가장 멋진 편집을 하는 신문, 가장 특종이 많은 신문, 가장 정보가 많은 신문, 가장 정확하고 빠른 신문이다. 

<제민일보 창간당시 임직원>
△대표이사 회장 안태의 △대표이사 사장 김지훈 △논설위원실 강정홍
△편집국 송상일 김덕남 양조훈 서재철 고재민 조맹수 진성범 김동훈 곽상필 홍훈기 고홍철 하주홍 김종배 허영선 고순형 김재하 고영진 백승훈 진행남 오길창 김대희 고두성 윤정웅 고대경 장제근 김승범 고창범 현승환 강한성 김종민 강종택 오석준 고상철 이현모 좌승훈 강홍균 양남수 김소영  김군실
△총무국 김세도 김희경 김종주 정원기 강한수 현의연 김순정 김형미
△광고국 김규필 김동협 양상훈 김창석 고승훈 윤덕중 문상흠 김영애 양혜선
△판매국 양달성 이우백 양봉규 김성호 김용덕 김명혁 김도현 좌성호 문창희
△제작국 김종진 김태녕 이철수 문군석 정승웅 김철문 장기정 강제홍 고태군 임영신 고용문 김창수 김경수 김두익 김승규 홍성범 좌태호 이화중 이승률 김태음 이승홍 이영준 홍도현 백성훈 고창주 고재봉 변창규 고관옥 이용관 백평관 조종숙 양성희 부희숙
△서귀포지사 한재홍 김형준 이남종 오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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