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의 정체성을 위한 변명

   
 
  오석준 편집국장  
 
‘참’은 사실이나 이치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고, 거짓이 없는 진짜라는 얘기다.

진짜는 겉과 속, 외양과 내용이 같은 것이다. 겉과 외양은 상표·상품명을 적은 라벨(label)처럼 실제(實際)가 아니라 실제를 대표하는 이미지다. 속과 내용은 있는 그대로의 실제다. 그러니 이미지와 실제가 일치해야 진짜다.

가짜는 처음부터 이미지와 실제가 서로 들어맞지 않게 의도되고 계획된 것이다. 가짜의 이미지와 실제가 들어맞지 않는 것은 필연이다. 가짜의 배후에는 누군가를 속여서 정당하지 못한 이득을 취하려는 의도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부실(不實)은 속과 내용이 당초 의도하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고 결함이 있다는 말이다. 제 기능을 못하는 기업·시설·상품에서부터 사회적·도덕적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시민, 법률에 준거하지 않는 법치주의 등이 그렇다.

부실과 가짜는 동의어가 아니다. 가짜는 모두 부실하지만, 부실한 것 모두가 가짜는 아니다. 이를테면 진찰을 제대로 못하는 의사라도 소정의 교육을 받고 자격증이 있다면 가짜가 아니라 부실한 의사다. 그러나 돌팔이 의사는 자격증도 없이 의사행세를 하려는 사기적 의도가 있기 때문에 부실한 의사이기 이전에 가짜다.     

△진짜·가짜에 대한 분별력

가짜를 팔아먹으려면 선전·광고·상징조작 등을 통해 진짜처럼 포장하는 이미지 구사가 필요하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유신독재, 5공 군부독재정권의 정의사회 구현, 노태우정권의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 등이 그렇다. 반세기 넘게 제주도민을‘빨갱이’로 덧칠해온 4·3도 역대정권이 이데올로기를 수단으로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켜 팔아먹은 희생물이다.

사회가 다원화·다양화되고 구성원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질수록 가짜를 진짜로 포장하는 이미지 구사 기술도 더 교묘하고 치밀해진다. 때문에 무엇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 판별해 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진짜와 가짜, 부실을 판별하는 능력, 이미지와 실제의 차이를 감지하는 능력은 진짜에 대한 앎, 의식이다. 진짜를 알지 못하면 가짜도, 부실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짜를 알면 가짜를 알고 거부하게 된다.

가짜를 팔아먹기 위한 실제와 다른 이미지 구사는 궁극적으로 진짜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게 된다. 이미지 구사가 되풀이되면 본래 기능에 대한 기대가 의식속에 자리잡고 이미지와 실제의 차이를 감지해내는 능력을 길러 진짜와 가짜, 부실을 판별하는 비판적 의식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가짜는 당분간은 진짜로 행세할수 있지만 언젠가는 그 정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미국 초대 대통령 링컨은 “얼마만큼의 사람들을 줄곧 속일수는 있다. 또 모든 사람을 당분간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줄곧 속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고 했다.

△자책과 반성‘참 언론’으로

지난 1990년 6월 제민일보가 창간 기치로 내건 ‘참 언론’은 진짜와 가짜를 판별하지 못하고, 가짜를 가짜라 말하지 못한데 대한 통렬한 자책의 소산이다. 단순히 5공시절 권력에 기생하며 독점적 기득권을 누렸던 특정 언론사, 특정인의 특정행태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강자에게 굴종하고 일반사람들의 보편적인 이익에 충실하지 못했던 지난날에 대한 뼈저린 반성이다. 이는 사시(社是) ‘인간중시 정론구현’에 대한 다짐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상정하는 인간은 끊임없는 변화의 소용돌이속에서 자각적으로 실천하며 주체적으로 적응하는 존재다. 특히 제주라는 공간속에서 비판적인 통찰력으로 현실을 꿰뚫고 역사적 방향을 자각하며 주체적으로 실천하는 제주사람을 중심에 세운다. 제주사람은 거주지에 관계없이 가치와 정신, 마음의 뿌리가 제주에 터잡고 있는 모든 이들을 통칭한다.

정론은 진실에 대한 무한 충성을 의미한다. 모든 사안을 도민의 입장에서 보고, 냉철한 비판의식으로 진실을 추구하고 도민의 이익을 위한 목소리를 내겠다는 다짐이다. 더불어 도민을 단순히 신문의 소비자가 아닌 능동적인 발언자, 생산자로 주체화시키고 변혁의 물결을 스스로 넘어서는 제주사람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몸부림이다.

유배의 섬, 중앙 관리들의 박해와 수탈,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통한의 4·3 등 섬이라는 공간의 고립성과 변방성, ‘중앙=지배, 지방=종속’의 사슬을 끊어내는 창조적이고 치열한 도전을 통해 ‘미래를 향한 열린 공동체 제주’를 가꾸어 가자는 것이다.
 
△혼돈을 넘어서

1990년대 이후 본격적인 개발 열풍으로 인한 환경·생태계 파괴, 가치관의 혼란과 상업적 소비문화, 도지사를 비롯한 각종 선거로 인한 편가르기와 줄서기·줄세우기 등으로 ‘제주공동체’와해가 가속화되고 있다.

자치의 파라다이스, 동북아중심 국제자유도시를 기치로 한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했지만 외양과는 달리 권한이 아닌 업무 이양 수준에 그치면서 중앙정부의 행·재정적 간섭이 여전하고 제주 스스로의 자치역량도 낮 간지러운 수준이다. 개발과 보전에서부터 미래 비전과 실천전략, 당면 지역 현안 등을 놓고 제주사회 각계 구성원들이 저마다 목청만 높일뿐 리더십의 실종 등 갈등관리시스템의 부재로‘교통정리’가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제주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선포한 정부가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해군·공군기지를 만들어 군사기지화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도 제주공동체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이러다간 제주특별자치도가 계획과 논쟁만 하다 ‘종을 친’ 제주도개발특별법·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처럼 장밋빛 환상으로 끝나는게 아니냐는 걱정이 앞선다.

돌아보면,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민일보 창간정신에 소홀했음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다. 사실보도·균형보도라는 미명하에 논쟁과 갈등의 핵심을 파헤치지 못하고 ‘받아쓰기’와 ‘논란’으로 봉합하고 진실에 충성하지 못했음을 통렬하게 자책한다. 열악한 언론환경으로 인한 경영상의 어려움은, 현실을 꿰뚫는 통찰력과 냉철한 비판의식의 부재, 지역의 미래비전과 의제를 설정하고 도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한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다시 머리띠를 동여맨다. 오로지 제주와 제주도민의 이익에 충실하고, 진짜와 가짜, 부실에 대한 분별력과 현실에 대한 냉철한 비판의식으로 제주공동체를 복원하고 도민의 자존심을 세우는 참언론의 소명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오석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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