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딛는 잠녀의 삶]남원읍 태흥 2리

바다는 어머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한없이 내어준 끝에 허연 가슴을 드러낸 바다가 아니다. 언제고 돌아올 자식을 위해 텃밭을 일궈둔 우리네 어머니 모습, 태흥2리의 바다는 그렇게 속깊은 푸른빛으로 우리를 맞았다.

△돌을 뒤집으며 살아있는 바다로

“전복? 지금이 제철이지. 이 시기가 지나면 밑으로 들어가거든”

‘눈을 씻고 봐도 전복 찾기가 어렵다’는 ‘흔한’ 대답 대신 기분 좋은 응수다. 전복 종패를 뿌려봐야 남는게 없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강도일 어촌계장은 “전복종패를 뿌리고 스쿠버를 통해 확인했더니 백화현상이 발생한 곳에도 전복이 자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그래서 ‘한번 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바다환경을 바꾸기 위해 한 일은 그렇다고 큰 작업은 아니었다. 1년에 6차례 전복 방유장내 돌을 뒤집어준다. 돌을 뒤집으면 뒤집은 돌에서 풀이 나는 등 생태계가 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 잊지 않고 행하고 있다.

강 어촌계장은 “물질을 하는 날 가운데 하루를 정해서 물건을 잡아내면서 뒤집는다”며 “태흥2리는 다른 곳과 달리 천초가 많이 나지 않고 질도 좋지 않아 돌을 뒤집는데 큰 반발이 없었다”고 했다.

1999년 종패를 뿌리고 꼬박 3년이 지나서야 결실을 봤다. 육상투석사업도 함께 진행하면서 조금씩 바다를 바꿨다. 전부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지금은 ‘구려’지역만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잘됐다는 소문이 나니까 여기저기서 견학하러 왔다”며 “모슬포에서는 마을회와 어촌계가 공동으로 다녀갔고, 강정 잠녀들은 직접 물에 들어가기도 했다”는 강 어촌계장의 설명에 자랑스러움이 묻어난다.

전복 종패사업이 잘 되는 것 이상으로 소위 ‘물건 관리’도 잘됐다.

다른 지역에서는 7㎝이상이면 소라를 유통시키지만 태흥2리에서는 7.5㎝는 돼야 팔 수 있다. 그렇게 1년에 4만㎏정도를 수확한다. 1999년 이전 1년에 1만5000~2만5000㎏수확했던 것에 비하면 갑절 가까이 늘었다. 전복도 1년 300㎏정도로 늘어났다. 무작정 유통시키는 것이 아니라 축양장을 통해 관리하다 7㎝이상 자라면 서울 등 대소비지에 ‘자연산’팻말을 달고 판매한다.

강 어촌계장은 “처음에는 소득이 줄어든다고 잠녀들과 많이 부딪혔다”며 “직접 종패사업을 눈으로 보게 하고 관리를 통해 소득이 늘어난다는 것을 확인 시키고 나서 부터는 스스로 알아서 한다”고 말했다.

△노력과 관심만큼 돌려주는 바다

3000평남짓한 구려를 비옥하게 일군 강 어촌계장은 스스로를 ‘농사꾼’이라고 했다. “어민후계자를 3~4년 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이곳 바다만큼은 손바닥 보듯 훤하다.

“오늘 소득이 없으면 섣불리 사업을 하려고 하지 않는 잠녀들을 설득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는 강 어촌계장은 “어떤 사업을 하더라도 잠녀들이 직접 선택하게 만들어야지 ‘장기전’이 불가피한 종패사업에서는 잠녀들의 공감대를 얼마만큼 유도하는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강 어촌계장의 의지는 잠수 부녀회를 결성한데서도 읽을 수 있다. 수협중앙회 주관으로 부녀회가 결성됐지만 흐지부지된 지 오래. 단순히 물질을 하는 외에도 어장관리 등 다방면에서 구심점 역할을 할 조직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부녀회 조직을 유도했다.

6곳이나 되는 육상양식장에도 ‘바다를 지키는’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다.

“전복은 물흐름이 좋은 곳과 수심이 얕은 곳, 돌을 자주 뒤집을 수 있는 곳에서 잘 자란다는 점을 확인시키고 문서상으로 만조때만 방류를 하게끔 했다”며 “물이 가두어지지 않고 빠져나가면 백화현상도 막을 수 있고 전복이 자라는 환경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종패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비법을 살짝 물었다. 대답은 단호하다. “말로는 안된다. 실질적으로 사업을 벌이고 일을 해야 한다”.

‘지원이 계속된다면 어장을 넓히겠다’는 포부를 내비친 강 어촌계장이 바다를 바라보는 눈은 한없이 따뜻했다. 오랜 방황 끝에 돌아온 고향 입구에서 한결같이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를 보는 자식의 그것과 같았다.

‘발로 딛는 잠녀들의 삶’ 다음 이야기는 남원읍 태흥2리이며, 관련 내용은 해녀박물관 홈페이지(www.haenyeo.go.kr)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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