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신음하는 제주의 허파 곶자왈] ⑭‘생태체험공원’ 빌미 곶자왈 훼손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갈기갈기 찢겨진 제주의 곶자왈이 생태체험공원 조성을 빌미로 완전히 황폐화되고 있다. 지난 3월말, 제민일보 곶자왈 취재팀이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 조성돼 있는 저지녹색농촌체험마을을 찾아 현장을 확인한 결과 생태체험공원을 조성하면서 오히려 인근 곶자왈 지역이 마구잡이로 훼손돼 있었다. 특히 공원을 조성하면서 심어놓은 대표적인 곶자왈 식물 중 하나인 밤일엽 등은 대부분이 말라죽어가고 있는 상태다.

△ 지난 2월 개장한 녹색농촌체험마을 체험장

저지 문화예술인마을에서 16번 국도 방면으로 차를 타고 1∼2분 가량 가다 보면 테니스장 옆으로 ‘저지녹색농촌체험마을 체험장 개장’이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보인다. 지난 2월24일 열린 개장식을 알리는 내용의 현수막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여있는 돌담은 원래 이 주변에 있던 밭담의 돌들을 재료로 해서 조성된 것 같았다.

하지만 입구에 걸린 안내판에서부터 생태체험공원이 부실하게 급조된 흔적이 나타났다. ‘숲지식물인 새우란 맥문동 산수유로 조성된 숲길’이라는 내용 중 ‘숲지식물’이라는 처음 보는 표현이 눈에 거슬린다.

숲에 사는 식물이라는 뜻에서 이같은 신조어를 만들어낸 것인지, 아니면 ‘습지식물’을 잘못 옮겨 적은 것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하지만 정작 새우란이나 맥문동 등은 습지식물과도 거리가 멀다.

   
 
   
 

△ 말라죽어가는 곶자왈 대표식물 밤일엽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취재팀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입로 양쪽에 심어진 식물들을 보니 곶자왈의 대표 식물 중 하나인 밤일엽과 수선화, 왜란 등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식물들이 같이 심어져 있다.

더구나 흙에 살짝 덮여 있을 뿐인 밤일엽은 곶자왈의 그늘진 숲 속의 함몰지형에서 자라는 생태적 특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햇볕이 내리쬐는 양지에 심어져 있어 대부분이 말라죽어가고 있는 상태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 밤일엽을 어디서 캐다 심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진입로를 벗어나 주변 곶자왈 지역으로 들어가 보니 바로 이 주변 곶자왈에서 밤일엽 등을 캐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원 안에 밤일엽 등이 심어져 있는 흙도 주변의 흙이 아니라 퇴적층이 확연히 드러나는 응회암 토양인 것으로 확인됐다. 중산간인 이 일대와는 전혀 맞지 않는 바닷가의 흙을 가져다 생태체험공원을 조성해놓은 것이다.

이처럼 주변 생태계와 전혀 맞지 않는 흙 때문인지 공원 한가운데 심어진 종가시나무도 낙엽수처럼 누렇게 말라죽어가고 있다.

   
 
   
 
△ 사업비 수억원 들여 주변 곶자왈 훼손

업체 선정 등 역할을 맡아 생태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했던 녹색생태체험마을 운영위원장에게 전화로 공원 조성 경위를 확인했다.

운영위원장인 조모씨는 “농촌 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원래 군유지였던 땅을 임대, 컨설팅 비용을 포함해서 2억1000만원을 들여 조성했다”며 “원래 흙이 거의 없는 암반 지역에 생태공원을 조성하려다 보니 흙을 사다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제주시 관계자와 조씨에 따르면 기존의 마을회관을 리모델링, 농산물직판장을 건립하는 데 쓰인 4000만원까지 모두 2억5000만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하지만 국비와 도비 2억원이 투입된 사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주먹구구식으로 공원이 조성된 점, 사업비만 지원해놓고 사업 집행을 마을 관계자들에게 맡겨놓은 채 전혀 행정당국의 감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 등에서 “생태체험마을 조성 취지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인근 생태계를 훼손하는 데 혈세가 투입된 셈”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특히 이같은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곶자왈 식물들이 무차별적으로 파헤쳐지고 있어 해당 식물 등에 대한 보호식물 지정 등 작업이 시급히 해결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글 홍석준·사진 조성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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