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원이다] 동진레저 강태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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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4월 서울에서 열린 2007 블랙야크배 제3회 서울국제 볼더링대회 | ||
# 배고픔은 나의 벗
1970년 지독한 가난이 싫어 오로지돈을 벌어야겠다는 일념하나로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강태선씨(58)가 처음 정착한 곳은 남대문시장이었다. 24살 빈손의 청년은 청바지판매를 1년 정도 하다 본격적으로 등산의류를 만들어 판매했다. 당시엔 등산복이 체육용품을 판매하는 체육사를 통해 판매되던 터라 체육사 사장의 마음을 잡기 위해 오전엔 체육사에서 무료자원봉사를 하고 오후엔 옷을 만들며 구슬땀을 흘렸다. 그렇게 일을 해도 주린 배는 마찬가지. 그러다 남대문시장의 점포를 하나 얻게 됐지만 보증금 50만원, 월 임대료 2만원이 없어 점포인수를 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강 대표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단돈 500원이 없는데 어떻게 50만원을 구할까 고민했는데 남대문시장에서 일하는 내 모습을 보고 돈을 빌려준 분이 있어 지금의 동진레저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 80년 5·18의 고비
등산용품을 판매하던 곳은 체육사와 함께 낚시점이다. 외상은 많고 수입은 별 볼일 없는데 거기다 전두환의 1212군사 쿠데타와 5.18광주학살로 산행은 물론 야외활동을 즐기는 이가 뚝 끊기고 동진레저의 앞길은 막막했다. 시국이 어수선 했지만 막막한 생활고로 김 대표는 외상값을 받기 위해 광주로 발길을 옮긴다.
김 대표에겐 중요한 고객이었던 광주의 모체육사 사장을 만났지만 외상값을 달라는 말을 선뜻 하지 못했는데 웬걸, 사장은 김 대표에게 백지어음 10장을 건네주며 서둘러 광주를 떠나라는 말을 한다. 마지막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 김 대표는 다음날인 18일 광주학살 소식을 듣고 어려운 형편이지만 쌀 21가마니를 구입해 소형화물차를 통해 광주전남지역 거래처인 체육사들에게 쌀을 보낸다. 당시 군부에 의해 진압당한 광주에선 쌀 구하기가 쉽지 않은 터였다.
이후 광주상황이 정리된 후 거래처인 광주지역을 방문한 김 대표는 많은 환영을 받았고 든든한 판매상들이 지지자들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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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체 직원이 산행을 즐기는 동진레저 | ||
# 통일나무 심는 ‘블랙야크’
강태선 대표는 지금까지 3번의 고비가 있었다. 12·12사태와 1992년 국립공원내 취사와 야영금지 조치로 등산용품 판매가 사실상 중단됐던 때, 외환위기(IMF)로 대규모 실직사태로 판매가 어려웠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웃어넘긴다.
갑자기 찾아온 고난을 극복해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리라.
강 대표는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실직자들이 산을 찾고, 금강산관광길이 열리면서 등산화가 팔리고, 주부들이 산행을 즐겨 어려움을 극복했고 지금은 오히려 아웃도어 웨어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며 어려움도 있지만 산을 생각하면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강 대표는 지난 5월 북한의 평양 단군릉에서 제1회 나무심기운동을 성공리에 마친다. 강 대표가 20년째 명예총재를 맡고 있는 전국자연보호중앙회가 북한의 단군민족통일연합회에 제안해 블랙야크가 제반비용을 부담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잣나무 1만여그루를 심은데 이어 해마다 봄, 가을에 5만~10만그루를 심을 계획이다. 남한 내 여러 단체들이 소란스럽게 행사를 하는 것과 달리 ‘조용한 남북교류’인 셈이다.
강 대표는 북한 강산에 나무가 없어 황폐해진 걸 보니 산사람으로서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며 산이 있어야 돈을 벌고, 산이 있어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래서 산을 위해 돈을 쓰고 싶다고 속내를 드러낸다.
또 강 대표는 북한 주민들도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산행가서 소리도 질러보고, 그래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 아니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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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야크 로고 | ||
=야크는 고산지대에 사는 야생화된 가축이다. 소와 비슷한 모양이며 검은색이 주종을 이룬다. 야크는 털과 고기, 중요한 운송수단은 물론 밭경작, 심지어 분뇨마저 고산지대 주민들에겐 없어선 안될 중요한 생계수단이다. 산악인들에게도 장비를 수송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같은 초식동물이지만 염소는 식물뿌리까지 모두 먹어치워 초지대를 황폐화시키지만 야크는 줄기만 먹어 ‘지속가능한 개발’의 상징으로도 불린다.
강태선 대표는 그 험한, 낭떠러지를 따라 등반장비를 지고 감각적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다며 산악인이라면 야크 없이 등반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여서 블랙야크란 이름을 만들었다. 블랙야크를 입어야 진짜 산악인이 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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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태선 동진레저 대표 | ||
1949년 서귀포시 예래동에서 태어나 오현고(16회)와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등산장비와 등산의류 등을 생산판매하는 ㈜동진레저를 창립한 후 등산용품의 명품브랜드 블랙야크를 성공시켰으며 마운티아, 마멋 등의 브랜드로 아웃도어 웨어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유수의 해외 원정대들이 블랙야크의 등산의류와 용품을 이용하고 있으며 산악인 엄홍길씨 등 해외 원정대를 꾸준히 지원해 산악인들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특히 산악전문가들의 실전테스트를 통해 최고의 기능을 발휘하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동진레저의 특징이다.
지난 2001년엔 80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서울특별시 산악연맹회장으로 취임해 활동했으며 등산장비의 기능을 정확히 파악해 품질개선에 반영하겠다는 생각으로 프로산악인이 돼 지난 1993년엔 히말라야 초오유(8201m)시사팡마(8012m), 97년엔 칸첸중가(8586m)안나푸르나1봉(8091m) 등을 등정하기도 했다. 2003년엔 세계최초로 티벳~네팔의 종단등반에 성공했다. 경영에서도 성공, 국내 등산복 업체로선 유일하게 블랙야크를 중국시장에 진출시켜 명성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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