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인, 너무나 대중적인 사진

   
 
  ▲다게르 정물 다게레오 타입 1937년작 프랑스사진협회 소장.  
 
#화가가 발명한 사진
사진 한 장으로 우리는 다양한 감성적 흥분을 느낀다. 그 사진은 어떤 때는 충격으로 다가오고, 어떤 때는 감격으로, 다시 증거로서 다가오기도 한다.

사진은 시대의 문화를 담아내는 빛의 예술이다. 그 빛의 예술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현실을 재현한다. 비록 그 재현이 시간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더라도, 그 시간에 존재 했던 공간의 순간을 정지시킨다. 사진이 위대한 측면은 바로 공간 속의 시간의 정지 화면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필립 뒤봐(Philippe Dubois)는 말한다. “시간은 흐른다. 당신이 촬영한 것은 돌이킬 수 없이 사라진다. 보다 엄격히 시간적인 의미로 말하자면, 사진이 포착되는 바로 그 순간 대상은 사라진다”라고.

뷰먼트 뉴홀(Beaumont Newhal)의《사진의 역사 (The History of Photography)》에 의하면, 빛의 작용을 이용하여 카메라에 잡힌 상을 기록하려했던 최초의 인물은 영국 도공(陶工)의 아들이었던 토마스 웨지우드(Thomas Wedgwood)였다. 그는 도공(陶工)들이 도자기  판면의 장식을 위해 시골집들을 스케치할 때 사용했었던 카메라 옵스큐라를 익숙하게 다룰 줄 알았다. 그는 계속 실험을 했으나 자신이 개발한 감광 유제의 감도가 매우 약하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의 실험에 만족할 수 없어 낙담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결국 병으로 실험을 계속 할 수 없었다.

프랑스 중부의 작은 도시 샬롱-쉬르-손(Chalon-sur-Saone)에 살고 있던 니엡스(Joseph Nicephore Niepce)는 1827년에 자신이 제작한 <식탁>이라는 한 장의 사진이 남아있지만, 웨지우드보다 10여 년 전에 사진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방법을 알았다. 니엡스와 그의 형은 열정적인 발명가였다. 니엡스는 병중에 있는 형을 만나기 위해 런던을 방문했고, 이때 화가인 다게르(Louis Mande Daguerre)를 만났다. 다게르 또한 ‘빛의 자연 발생적 작용’에 의해 카메라의 상을 잡아보려고 연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다게르는 오페라와 연극의 무대장치 그림을 그리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화가였다. 1829년 12월 4일, 니엡스와 다게르는 향후 10년에 걸친 사진 실험을 위한 동업 계약을 했으나, 불과 4년 후 니엡스는 고향에서 세상을 떠났다. 다게르는 홀로 그 일을 진행하여 1837년 성공적인 사진들을 만들어냈다. 그는 재질감, 빛의 차이 윤곽과 실체, 양감 등이 충실하게 나타난 사진들을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이라고 불렀고, 이 성공을 계기로 사진은 다가올 세기의 새로운 매체 예술로 등장하게 되었다.

#사진, 관점의 문제
모든 사진에는 관점이라는 것이 들어있다. 즉 뷰파인더를 통해 보는 세상이라도 보는 사람의 인식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존 버거(John Berger)의 표현대로 “우리가 늘 사용하는 ‘보다’ 라는 말에는 인지·판단·관찰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보는 것에는 언제나 일종의 인식행위가 들어있는 것이다”. “영어의 ‘see' 즉 ‘보다’ 는 'I see' , 즉  ‘알다’ 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눈을 통해서 지식을 얻는 것은 ‘보는 것’에 의하여 항상 영향을 받고 있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한자 ‘견(見)’의 자형(字型)은 원래 ‘한 사람이 눈을 크게 뜨고 앞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그 뜻은 ‘보다(see)’인데 그 뜻이 확장되어 생각을 표현하는 ‘견해(idea)’가 되었다. 또, '보다(look at)'라는 뜻의 ‘시(視)’는  '자세히 보다(inspect)', '여기다(regard)'라는 의미를 갖는다. 한자에서도 ‘사물은 보는 사람의 생각이 투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관점은 사진의 성격을 결정한다. 관점의 형성은 기본적으로 교육에 의해서 이루어지거나 사회적 의식, 삶의 과정에서의 경험들, 계급적인 입장들, 성장과정, 사회제도 내에서 파생되는 여러 원인들의 교차점에서 형성된다. 관점이란 이 세상을 보는 방식의 문제틀이며, 자신의 사진예술의 형식을 결정짓는다. 관점이란 쉽게 택하거나 버릴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존재의 계급의식에 의해 형성되거나, 자신의 삶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재구성되거나 형성된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발리 2006, 김유정 작.  
 
#대중적인, 너무나 대중적인 사진
오늘날 사진은 모든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이다. 사진은 가정마다 1대 이상의 디지털 카메라가 있을 정도로 이미 대중화가 되었고 이미지의 거대한 해류를 몰고 다니고 있다. 사진은 다른 예술과는 달리, 공학적인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사진은 예술류로서 분류되기도 하지만, 이와는 상관없이 예술의 경계지대에 넓게 포진해 있다. 사진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자유자재로 복잡하고 기상천외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디지털 사진에서처럼, 이제는 현실의 충실한 재현이나 순간 포착의 짜릿함이, 이상야릇하고 초현실적인 충격적 이미지로 대체된다. 아날로그 사진의 사실성은 이미 고전이 되었고, 현실의 기록성은 이를 고수하는 몇몇의 사진가의 몫이 될 뿐이다. 사진에서는 현실과 비현실의 이미지가 교차하거나,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도 중요하지가 않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이 중첩되기도 하고, 동시에 다른 공간과 시간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진의 이미지는 표상으로서의 이미지이기도 하거니와 그 이미지는 단지 고정된 이미지로 남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물들을 떠올리게 하는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낸다. 그렇지만 이미지를 생산하는 사진가에게 영향을 주는 생각들은 줄곧 자신의 현실에 의해 지배되며, 누가 부정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지배적인 관념 속에서 사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 결국 우리 시대에는 “사진은 무엇을 찍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진은 무엇과 관계를 가질 수 있느냐?” 라는 물음이 더 중요해진다.  <김유정·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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