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은 주택에서의 편안한 주거를 모사한다...

   음력 팔월초하루를 맞이해서 제주에서는 벌초가 한창이다. 아마 제주를 방문하는 관광객의 눈에 특이하게 보이는 제주의 모습중의 하나가 바로 이 제주무덤의 모습일 것이다. 제주무덤은 보통 ‘산’이라고 부르는데, 육지부와 두드러지게 달라 보이는 것이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산담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무덤을 둘러싸는 산담은 주택의 담장과 같이 거주자의 영역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살아있는 자의 살림집을 보는 듯한 감동을 주게된다.

벌초시기가 되면, 가족들이 모여서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기도 하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우리네 의식을 자연스럽게 익혀가는 교육장이 되기도 한다. 고대의 많은 왕들은 죽음에 대하여 불생의 욕망을 기리기 위한 견고한 무덤을 만들어왔다. 이집트의 피라밋이나 진시황릉의 모습은 죽음에 저항해온 인류사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에 비교하여 죽음을 ‘돌아가심’이라고 표현하여온 우리의 문화권에서는 죽음을 삶과 대치되는 저항의 요소가 아니라 순리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왔다고 할 수 있다. 마치 달걀을 닮아있는 우리의 무덤은 이러한 생명에 대한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단순해 보이는 제주무덤의 구조를 보면, 신이 드나들기 위한 神門, 죽은 자의 거처를 표시하는 망주석, 그 곳을 지키는 동자석 등 마치 살아있는 이의 가옥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담장을 두르고, 대문을 만들고, 거주자의 표식을 보여주고, 이방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등의 장치는 지금 우리의 주택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 안에서 서서히 편안한 시간과 더불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네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필자가 참여한 벌초에서도 무덤을 지키던 동자석이 많이 없어졌다는 푸념을 듣는다. 죽은자의 안식처를 지켜주던 동자석이 지금 누구의 정원에 장식물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산자를 위하여 죽은 자의 안식처를 해치는 상식이하의 행위가 일어나는 것이 현대인의 이기적 가치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는 여러 가지 사회적 변화의 이유를 들어 납골당이나 가족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합리적인 이유를 내세우기 전에 우리의 무덤이 삶과 죽음에 대하여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고 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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