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가 그려진 소」는 「작품」의 준비그림
일본 제국주의 향해 ‘엿 먹어라’

[화가 전창원의 서귀포, 이중섭을읽다]  3. 물고기가 그려진 소

「물고기가 그려진 소」는 「작품」의 준비그림
일본 제국주의 향해 ‘엿 먹어라’

   
 
   
 

「이중섭 평전」의 저자 최석태 씨가 가짜라고 말한 서귀포시립 이중섭미술관 소장의 「사슴」이 어째서 가짜가 아닌지를 말하기 위해서, 나는 이중섭 특유의 표현방법인 ‘상징’과 ‘변형’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하려고 한다.

위에 예시된 이중섭 작품 「물고기가 그려진 소」를 보자. 화면 한가운데 커다란 황소가 한 마리 그려져 있고 오른쪽 위 모서리에도 물고기 한 마리가 같이 그려져 있다. 이 황소와 물고기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모서리에 그려진 물고기의 위치나 크기도 그렇지만 뒤집혀진 모양으로 게다가 화면에 의해 잘려져 나갔기에 더욱 그렇다. 왜 이중섭은 물고기를 좀 더 잘 그리지 않고 이 모양으로 그렸을까? 황소의 포즈를 잘 살펴보면 그 해답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 이 물고기는 방금 황소에게 떠받혀서 날아가고 있는 물고기이기 때문에 이렇게 그린 것이다. 물고기를 떠받은 황소의 동작이 마치 슬로우 비디오의 잔영처럼 남아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황소는 왜 물고기를 떠받았을까 하는 의문이 또 생긴다. 나는 지난 2회에서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인 제국주의자들과 그에 협력하는 조선인 친일파 예술가들, 그리고 일본학생들 앞에서 조선노래 「낙화암」을 부른 조선청년 이중섭 이야기를 했다. 여기에 그려진 물고기는 그러한 일본인 제국주의자들과 조선인 친일파 예술가들을 ‘상징’한 것이고, 황소는 이중섭 자신을 ‘상징’한 것이다. 저 성난 황소의 눈을 보라. 눈과 불알과 물고기가 일직선상에 놓여있지 않은가. 황소의 시선이 불알을 가늠자로 하여 물고기를 겨냥하고 있다. 물고기를 떠받은 황소가 한쪽 뒷다리를 쳐들어 물고기에게 불알을 보여주면서 욕을 한다. “엿 먹어라(Fuck You)!”

소의 포즈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소의 목이 보이지 않는다. 왼쪽 뒷발과 왼쪽 앞다리에 가려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소가 머리를 다리 밑으로 집어넣은 포즈를 그린 것인데, 실제의 소는 이런 포즈를 취할 수가 없다. 더구나 이런 포즈에서 뒷다리까지 쳐들 수는 더욱 없다. 그런데도 마치 소가 이런 포즈를 실제로 취하고 있는 것처럼 그린 것은 주제(엿 먹어라!)를 표현하기 위하여 소의 포즈를 ‘변형’시킨 것이다.

이 그림은 방사선형 구도로 그려져 있다. 소의 불알을 중심으로 소의 다리나 머리는 물론이고 물고기까지 모두 방사선 방향으로 배치했다. 소의 불알을 마치 핵인 양 사물의 중심에 놓았다. 필선의 속도와 강세를 보여주는 이 소 그림은 이중섭이 실제의 소를 관찰하면서 속사(速寫)한 것 같지만, 실은 에스키스이다. ( 에스키스는 유화 같은 대작을 그리기 전 준비단계로서 구도 등의 감을 잡아보기 위해 종이에 연필이나 콩테 · 목탄 · 수채 등으로 미리 그려보는 설계도적인 작은 그림을 말한다. 불어로 esquisse인데 우리가 쓰는 ‘습작’이라는 용어와는 개념이 다르다.) 이 「물고기가 그려진 소」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포즈를 그렸다가 지운 흔적도 발견된다.

   
 
  ▲ 「물고기가 그려진 소」  
 



이 「물고기가 그려진 소」에 대해서 최석태씨는 그의 저서 「이중섭 평전」 176쪽에서 이렇게 추정한다.

“화면 한쪽에 물고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서귀포에 머물던 시기에 그려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잘못된 추정이다. 첫째 이유는 위에 예시된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중섭이 서귀포에 머물던 시기(1951년)에 그린 연필화의 선은 「물고기가 그려진 소」의 선처럼 자유분방하고 아카데믹한 선이 아니라 이미 양식화된 선이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그려진 소」의 선과 같은 종류의 선은 이중섭이 1941년 학창시절에 그린 「소묘」란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둘째 이유는 이 「물고기가 그려진 소」에서 소가 뒷다리를 쳐들고 불알을 보여주면서 ‘엿 먹어라!’ 욕하고 있는 포즈는 이중섭이 1940년 제4회 자유미술가협회 공모전에 출품했던 「작품」이란 작품의 소 포즈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물고기가 그려진 소」는 서귀포에 머물던 시기(1951년)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작품」의 에스키스로서 1940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보아야 타당하다.

「작품」은 캔버스에 그린 유화이다. 이중섭이 1940년 제4회 자유미술가협회 공모전에 출품했던 것으로서 당시 일본잡지에 흑백사진으로 게재되었던 것인데 후일 서울대학교 도서관장 김영나 교수가 발견해냄으로써 세상에 알려진 그림이다. 최석태 씨는 「물고기가 그려진 소」의 제작연대를 잘못 추정했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의 주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황소가 뒷발을 들어 제국주의자들과 친일파 예술가들에게 불알을 보여주면서 ‘엿 먹어라!’ 욕하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인데 최석태씨는 그의 저서 「이중섭 평전」 69쪽에서 이렇게 말한다.

“소가 뒷발을 들어 입으로 핥고 있는 듯한 그림”


   
 
  ▲ 「사슴」  
 


이는 이중섭 특유의 표현방법인 ‘상징’과 ‘변형(데포르마시옹deformation)’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제를 제대로 파악해내지 못한 것이다. 그가 가짜라고 말한 이중섭미술관 소장의 「사슴」도 이 상징과 변형이 온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 그림이다. 상징과 변형을 고려하지 않는 그가 이 「사슴」의 주제를 알 리 없고, 그래서 가짜라고 말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민족정신이 투철한 이중섭이 왜 하필이면 일본여자 야마모토 마사꼬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참으로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 4회에서 그 사연을 짚어본 후에 「사슴」이 어째서 가짜가 아닌지를 자세히 해설하고자 한다.

※이 연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