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의 전성시대

[전창원의 서귀포, 이중섭을 읽다] 8. 이중섭 위작사건 2005
'가짜'의 전성시대

   
 
  ▲ 이중섭 작품전 목록 표지
1955년 1월 미도파 화랑
 
 

# 이중섭 내연의 처

2004년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대 동창으로부터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서로 안부를 묻다가 이중섭 그림을 다량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서울에 있다기에 귀가 번쩍 뜨였다. 이중섭 그림 한 점 소장하기도 힘든 세상에 그 많은 것을 누가 어떻게 가지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나도 들은 얘긴데, 이중섭에게는 내연의 처가 있었단다. 원래는 그 여자가 가지고 있었는데 그 여자가 죽고, 지금의 소장자에게로 넘어온 거라더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당시 나는 이중섭미술관에서 관람객들로부터 가끔 생뚱맞은 질문을 받던 터였다. “이중섭 선생 부인이 일본여자 아닙니까. 그런데 선생이 아내를 일본으로 보내고 나서 정말 혼자 살았답니까? 딴 여자와 동거했다는 말도 들리던데…” 사실 여부를 떠나, 왜 사람들은 그런 쪽으로만 관심을 가지는지…. 그런데 이 친구 말이 또 걸작이었다. “이중섭이 꼭 내 스타일인 기라. 보나마나 살랑살랑 바람피웠을 끼라. 내 이중섭 안 봐도 잘 안다.” 나는 친구에게 그 얘길 누구에게서 들었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모 방송국 PD한테서 들었다고 했다. 당시 그 PD가 현장에 바쁘게 가던 중이어서 자세히 듣지는 못했다면서 그 PD한테 물어보고 다시 알려주겠다고 했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PD한테 연락이 되지 않아 이중섭 전문가인 고향 후배(최석태 씨)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도 그 그림들을 본 적이 있는데 가짜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실제 있지도 않은 ‘이중섭 내연의 처’ 모습이 잠시 내 머리 속에 그려졌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 (이중섭 작품전 목록 표지 중) 삽화부분  
 

   
 
  ▲ 위작 「물고기와 아이」  
 



# 미 발표작 전시준비위원회

당시 그 다량의 가짜그림 소장자 이름은 ‘김용수’였다. 김용수씨는 2004년 4월 모 방송에 접근하여 이중섭 그림 공동전시사업을 제의했다. 5월에는 이중섭·박수근 미 발표작 전시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원회’라 칭한다)를 발족시켜 회장이 되었다. 한국미술품감정위원회가 2005년 4월 22일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준비위원회와 모 방송이 ‘이중섭작품전 2005’와 ‘이중섭 · 박수근전 2005’를 공동 개최하기로 전시계약 기본원칙 내용에 합의한 것은 2004년 11월 3일이었다. 당시 전시기획서의 주요내용은 600여점에 달하는 미공개작 대규모 전시를 2005년 11월 말부터 2006년 2월 말까지 한가람미술관에서 하는 것으로 돼있었다. 600여점은 이중섭 그림 400점과 박수근 그림 200점을 합한 것인데 당시 서울옥션 경매가에 비춰보았을 때 최소 600억원에서 최대 1000억원에 이르는 규모였다.

준비위원회 일행 10명이 이중섭 유족을 만나러 맨 처음 일본에 간 것은 2004년 12월 5일이었다. 이 사업에 유족을 끌어들이면 작품 신뢰에 큰 힘이 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준비위원회는 이중섭 유족에게 이중섭 그림 3점(마사코 초상, 이중섭 어머니 외 1점)을 선물했다. 마사코 여사는 “남편 그림 아니다”고 했으나 차남 이태성씨는 “아버지 그림 맞다”고 했다. 김용수씨는 일본에 6일간 머물면서 액자가게를 하는 이태성씨를 여러 차례 만나다가 액자를 해달라는 명분으로 은지화 5점을 건넸다. 2004년 12월 말 한국에 온 이태성씨는 “아버지를 만나는 기분으로 그림들이 궁금해서 왔다”고 했다. 준비위원회는 SBS에서 이태성씨 부부에게 이중섭 작품 400점을 보여주었다. 이태성씨는 “아버지 그림이 맞다”고 했다. 준비위원회는 2005년 1월에도 일본에 가서 이태성씨에게 이중섭 그림 20~30점을 주고 왔다고 전한다.

# 서울옥션과 한국미술품감정협회

그런데 서울옥션 이호재 대표가 유족의 집에 가서 이중섭 미공개작품 8점을 위탁받아가지고 온 것은 그 다음 달인 2005년 2월 초였다. 이호재씨는 이 작품들을 경매에 내놓겠다고 매스컴을 통해 발표하면서 그 중 1점은 자신이 직접 구입해서 서귀포시립 이중섭미술관에 기증하겠다고 했다. (이 사건의 추이는 지난 7회에서 말한 바와 같다.) 8점 중 한 작품인 「물고기와 아이」를 구매하려는 사람(분당 모 병원장)이 권위 있는 감정기구의 감정서 첨부를 요청하므로 이호재씨는 3월 2일 한국미술품감정협회에 감정을 의뢰했다. 감정협회는 위작으로 판정하면서 나머지 작품들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고 3월 16일에 있을 서울옥션 경매를 만류했다. 서울옥션은 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경매를 강행. 4점을 고가에 낙찰시켰다. 이후 위작논란이 확산되자 서울옥션은 3월22일 이태성씨를 한국으로 초청했고 이씨는 롯데호텔 기자회견에서 “유족이 50년 동안 소장했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미술품감정협회는 4월12일 공개세미나를 열어 ‘위작의 근거’를 제시했다. (이날 조선·중앙·동아에는 이 세미나 기사가 실리지 않았다.)

   
 
  ▲ 1955년 작품전 당시 미도파 화랑에서 찍은 이중섭 사진  
 


# 유족 측 간담회

이중섭 유족측은 이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고 4월22일 한백문화재단 세미나실에서 이중섭예술문화진흥회 주최로 유족 측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는 먼저 이태성씨가 감정협회의 위작근거를 반박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감정협회측 최석태씨가 「물고기와 아이」 감정결과에 대한 근거자료를 설명하면서부터 격렬한 싸움이 예상됐다. 발표가 모두 끝난 후 질의가 시작됐다. 한겨레 노형석 기자가 이태성씨에게 질문했다. “그림을 가져온 사람들(준비위원회)에게서 그림을 받았습니까?” 이태성씨는 “그런 사람들이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라며 직답을 피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유족(이태성씨) 편을 들던 이호재씨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면서 이태성씨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니까 받았어요, 안 받았어요?” (이호재씨는 이태성씨에게 이런 질문을 할 기회가 많았는데도 왜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꼭 이 순간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표가 나게 했을까?) 이태성씨는 “그림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받지는 않았습니다.”라고 엉겁결에 거짓말을 하면서, 오히려 그 전시기획모임(준비위원회와의 만남)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 얻었느냐고 물었다. 감정협회 측의 최명윤씨는 정보제공자 보호차원에서 말할 수 없다고 하면서 “지금 이 자리에서 이태성씨는 분명히 유족측은 그림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최명윤씨는 계속해서 이태성씨에게 “이호재 대표는 유족 측 집에 가서 마사꼬씨 방에 걸린 그림을 떼어왔다고 했는데 그때 ?물고기와 아이?가 표구가 되어 걸려있었습니까?”하고 유도질문을 했다. 이태성씨는 그만 사실대로 불었다. “걸려는 있었지만, 표구는 안 되어 있었습니다. 오해가 있나본데, 이호재 사장이 표구를 하자고 했는데 제가 안했습니다.” 그러자 이호재씨는 큰일 나겠다 싶어서 “그런 일도 없었습니다.”라고 엇갈리는 발언을 했다. 최명윤씨는 또 이태성씨에게 물었다. “이호재 대표는 이중섭 화백이 진부조에서 물감을 사다가 일본에서 직접 그렸다고 했는데(1953년 이중섭이 일본에 갔을 때의 상황을 말한 것임), 이 말 역시 이태성씨가 이호재 대표에게 전달했습니까?” 그러자 이호재씨가 “그것은 제가 답변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이태성씨의 답변을 가로막고 나섰다. 그러자 최명윤씨는 “지금 이태성씨에게 묻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최석태씨도 “이호재 대표님 오버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이태성씨는 “이호재 사장님이 오해한 것 같은데, 아버지는 1주일동안 재료만 샀고 그림은 그리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호재씨는 “난 이태성씨에게서 듣고 전달한 것뿐입니다.”라고 억지 주장을 했다.

이날 간담회는 한국미술품감정협회의 승리로 끝났다. 최석태씨와 최명윤씨의 활약이 대단했다. 이중섭위작사건이 김용수씨와 이호재씨, 그리고 이태성씨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었음을 미리 확인해본 자리였다.

# 컬쳐뉴스

이 간담회에서 승기를 잡은 최석태씨는 6일 뒤(2005년 4월28일) 민예총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컬쳐뉴스’에 ‘이중섭 위작사건의 전모를 밝힌다’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최석태씨는 “이러한 위작사건은 이미 예고되어있었다”고 하면서 “2003년 이호재씨가 서귀포시립 이중섭미술관에 기증한 이중섭 작품들 중 3점도 가짜였다”, 당시 자신이 “아무리 눈이 짓물러져라 보아도 가짜였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다음 회에 계속하기로 한다.

※이 연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