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최남단’ 한반도의 끝이자 시작인 섬

   
 
  마라도  
 

느낌이 다르다. 최남단의 땅, 마라도에 발을 딛고서면 느낌이 아주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땅이 용케 여기까지 뿌리내렸구나 싶은 게 감회가 새롭다. 모슬포에서 타고 온 연락선 리플릿에도 '국토 최남단 - 환상의 섬'이라 박혀있다. 선착장에서 '대한민국 최남단'이란 비석을 만난다. 국토의 끝이란다. 그러나 진정한 끝이 있을까. 바닷길은 끝과 시작이 없는 것이 아닐까. 허위허위 달려온 마라도가 끝이라고는 하나 어쩜 시작일 수도 있는 법. 마라도에서 한참을 더 가면 이어도종합기지가 있고, 거기서 더 내려가야 대한민국 해양주권의 경계선이 펼쳐진다.

마라도 선착장에 당도하면 첫눈에 해식동굴부터 만난다. 파도가 들이치고, 또다시 들이쳐서 천연의 동굴을 만들었다.

선착장을 오르면 사람들은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난다. 들판이다. 무한의 풀밭이 하늘과 바다와 맞닿았다. 바람이 거침없이 불어 스러질 것만 같다. 가을철에는 풀밭에서 간간히 쑥부쟁이를 만난다. 워낙 바람이 강한 곳이라 키가 자라지 못하고 불과 몇 센티미터 높이에서 꽃을 피워낸다.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들의 강한 생명력이 경이롭다.

바닷가 아기업개당으로 간다. 마라도에는 피지 못한 처녀의 한이 서려 있다. 북쪽 바닷가 높은 언덕에 위치한 마라도 본향인 처녀당. 마라도에 물질을 왔던 처녀가 그만 그녀를 놓고 출발한 배 때문에 섬에서 죽고 만다. 그녀의 애틋한 넋을 기려 원령을 모셨다. 아이업개의 원령을 모시기 때문에 비바리당·아기업개당이라고도 부른다.

등대로 간다. 밤에 보는 마라도의 등대는 마음을 설레게 한다. 한반도의 남쪽을 지켜주는 항공모함처럼 생긴 넓적하고 야트막한 섬에서 그래도 가장 높은 단애에 자리 잡아 남국의 항로를 밝힌다. 한밤중에 마라도 바닷가에 나오면 전쟁을 치르는 파도 속에 등대불빛이 어른거려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오름의 억새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등대 앞을 그득 매운 해풍에 흔들리는 마라도의 억새가 한결 매혹적이다. 바람이 오면 미리 눕고, 바람이 가면 일찍 일어나고, 그러하길 수도 없는 순응과 저항의 역사를 꾸려왔으리라. 김수영 시인의 '풀'을 이들 갈대는 매일매일 체험하는 중이다.

마라도등대는 1915년 3월에 건립되었다. 예로부터 난바다를 항해하는 외항선을 상대해왔다. 마라도등대는 한국을 찾아오는 외국선박에서 보자면 한반도의 희망봉 같은 곳이다. 동중국해와 제주도 남부해안을 지나는 배들이 육지가 다가왔음을 인식하는 육지초인표지로 이용되고 있기에 우리나라의 '희망봉'이라고도 부른다.

남아프리카 희망봉에 캐이프 포인트(Cape Point) 등대가 있다. 1860년에 세워졌으며, 1919년에 인근 캐이프 매클리어(Cape maclear) 의 가파른 바위 정상으로 옮겨져서 아프리카 남단을 지킨다. 한반도 서해안 쯤에서 내려온 배들이 한반도를 완벽한 크기로 한바퀴 돌아서 동쪽으로 가자면 마라도 등대를 바라보면서 돌아감이 정확할 것이다. 일본 도쿄나 오사카, 가고시마 같이 남서쪽에서 올라온 배들은 한반도의 희망봉인 마라도 불빛을 받으며 남중국해로 오고갔다. 하여, 마라도를 한반도의 희망봉이라 부르는 것이다.

   
 
  마라도 등대  
 
오늘날도 마라도 밑선을 통과하여 중국해로 가거나 인천, 목포, 부산 쪽으로 가는 외항선들을 볼 수 있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배들은 주로 인천과 군산, 목포 등 서해안으로 접어드는 대형유조선, 자동차운반선 등이다.

1915년 점등 당시, '연와조 원형 백색' 건물, 즉 벽돌로 쌓은 흰색의 원형 건물이었다. 마라도 등대의 등질은 10초에 한번씩 깜빡이며 약 48㎞ 거리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10초에 한번은 1915년 당시와 동일하다. 1915년 11월부터는 무(霧)신호를 시작하였다. 무신호는 유류가 많이 들기 때문에 유류파동 이후에 대개 전기폰으로 바뀌었는데 마라도는 아직도 그대로 72마력짜리 기계를 쓰고 있다. GPS를 쓰는 배들이 많기 때문에 예전보다는 무신호의 효력이 감소하였지만 지금도 봄철에 안개가 잦을 때는 무신호를 보낸다. 안개 잦은 봄바다에 울리는 무적은 바다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GPS, 어탐, 레이저 등이 총동원되는 오늘날 설령 등대가 없다한들 배들이 섬에 충돌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작은 배들은 등대를 선호한다. 소형낚시선이나 고무보트 등은 안개가 무성할 때는 전화를 걸어 소리를 한번 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등대의 효용성이 아직은 존재한다는 말이다.

등대의 고민 중의 하나는 역시 에너지난이다. 전력난도 심각하다. 태양전기로 27㎾ 생산하는데 겨울에는 일조량이 문제다. 풍력발전을 가동시키고 있으나(7.4㎾ 2개) 지난 3호 태풍 때 고장이 났다. 그래서 겨울에는 일조량 부족으로 3일 72시간동안 1000ℓ, 즉 5드럼의 기름을 써서 기계를 돌려야 전기가 해결된다. 전기를 많이 쓰는 GPS 등 이용시, 1일 80㎾의 전기를 쓰고 있으니 엄청나게 전력부족을 느낀다. 반면에 태양력발전이 유리한 여름에는 남아도는 실정이다.

등대의 물 사정은 좋은 편이다. 숯과 모래, 자갈 등을 이용한 전통적인 여과장치를 이용하여 봉천수(빗물)를 받아서 여과시켜 쓰는데, 그 장치는 일본인들이 설치한 것을 지금껏 쓰고 있다. 마라도나 가파도, 추자도, 우도 등은 모두 담수화시설을 갖추어 허드렛물은 바닷물을 담수화한 물로 해결하는데 식수로는 불가하다. 그 대신에 제주도의 삼다수 700원짜리를 섬에는 230원에 할인판매하여 그 물을 사서 먹는 형편이다.

등대원들은 제주도 관내의 여러 등대를 순환하면서 근무하고 있다. 등대원들의 애로사항 중에서 역시 교육문제가 크다. 동아일보의 1962년 취재에 의하면, 마라도에는 지금보다 많은 103명이나 되는 토박이들이 살고 있었다. '한국의 남극'이란 제목의 마라도기행문에서 '마치 유형(流刑)의 집, 인간 가족 103명, 쌀도 모르고 살아. 무림(無林) 지대에서 소와 말을 방목'이라고 하였으니, 관광이 전혀 없던 시절에 방목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제주도 출신 김광렬 시인이 '마라도'에서 읊었듯이 '그 옛날 제주땅에서 더 이상 살수 없어/ 배 타고 사십여분 거리 이주해 간 사람들이/갱생의 곡괭이를 찍기 시작하여/이루어진 땅이 바로 마라도입니다', 마라도는 그러한 섬이었다. 그런데 뱃길이 편리해지면서 역설적으로 인구가 줄어든 것이다.   

모슬포에 적을 둔 지방의 해녀들이 이곳까지 출어하여 소라와 전복, 오분재기 등을 채취한다. 모슬포의 방어잡이 배들이 겨울에 이곳에서 방어를 잡는다. 그밖에 가파도나 화순에 적을 둔 지방민들도 오곤 한다. 채취권은 매우 엄격하며, 이곳에서 1년 이상을 살은 사람에 한하여 어업채취를 허한다. 

마라도 등대도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등대 앞에는 세계지도를 만들어놓고 세계의 뛰어난 등대들 모형을 만들어 세웠다. 한반도의 바다로 웅비하는 기상을 담아서 세계의 등대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이다. 오고가는 관광객들이 한번쯤은 들려서 사진을 찍고가는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연간 20만명에 육박하는 관광객이 들어오는 섬이므로 한반도에서 가장 외지인이 많이 드나드는 섬이자, 최다 방문객을 자랑하는 등대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나의 느낌으로는 마라도에서 마주치는 골프카와 자장면집이 영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관광객들의 사진을 찍어준다는 용도로 등장하였는데, 공해는 없지만 마라도에 골프카라니 왠지 상스럽게만 느껴진다. 마라도에는 왠 자장면집들이 그렇게 많은지. 방송을 타면서 온통 자장면집만 늘었다. "자장면 시키신 분…" 그런 소리의 원조가 이곳이다. 해양의 상징은 없고 전혀 관계없는 자장면과 골프카만 돌아가니는 섬,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마라도에서 눈을 들어 북쪽을 보면 산방산이 문턱에 있고, 한라산이 웅대하게 다가온다. 섬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자태는 늘 경이롭다. 푸른 물을 사이에 두고 백색의 봉우리에 운해가 감돌아 하늘과 산과 바다가 하나로 붙어버린다.
 <민속학자·제주대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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