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원이다]<2부>제주의 혼을 심는다 동해지방해양경찰청장 고인규 경무관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독도를 노래한 서유석의 '홀로 아리랑'의 가사다. 그러나 독도는 외로운 섬이 아니다. 제주도 출신으로 국내 사학계의 원로이자 독도 연구의 대가인 신용하 교수는 "독도는 대한민국의 주권"이라고 했다. 이 대한민국의 주권을 지키는 해양경찰 총지휘관이 제주도 출신이다. 고인규 동해지방해양경찰청장(58)이 그 주인공이다. 신 교수가 이론적으로 독도를 지킨다면 고 청장은 행동으로 지키는 셈이다. 고 청장을 전화와 서면인터뷰로 만나 21세기 해양대국으로 커 나가기위한 대한민국 해경의 새로운 모습 등 식견을 들어보고 30년 해경생활 추억의 편린들도 들춰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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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규 청장에게 우선 해군과 해경의 차이를 물었다. 그는 "해군은 순수하게 국토방위와 유사시 군사작전 개념의 임무인 반면 해양경찰은 해군과의 군사 작전도 병행할 뿐 아니라 해상의 모든 업무를 수행하는 해양종합법집행기관"이라고 했다.
고 청장은 이어 "해경은 어업자원 보호를 위한 EEZ내 외국 어선의 불법조업 단속, 주요 해상항로 순찰, 다중 이용선박의 안전관리, 밀수·밀입국 등 국제범죄 대응 등 신(新)해양시대 해양 주권수호와 치안유지 및 재난 지원 등의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쪽으로는 독도와 EEZ 관할권을 둘러싼 일본과의 마찰이 지속되고 남·서쪽으로는 대륙붕, 해상교통량 폭주, 중국어선의 불법조업과 밀입국 등 일은 엄청 많은데 우리 해경은 일본 등 주변국에 비해 규모 및 성능 면에서 열악하다"며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으면 해양주권 수호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력 증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동해해경청과 관련, 고 청장은 "해양경찰의 차관급 기관 승격에 따라 2006년 12월1일 개청, 독도와 EEZ를 둘러싼 국제적 마찰에 신속히 대응하고 우리 어선의 피랍 방지와 국경을 초월한 광역해역 수색구조 등 지역특성에 맞는 고품질 해양서비스를 제공하며 동해바다 지킴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마네현에서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며 물의를 일으켰던 일본이 2007년 2월 동해에서 해양조사를 실시하려하자 우리 경찰청은 6m 이상의 높은 파도와 강풍 등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출동, 일본 조사선의 침공기도를 성공적으로 차단함으로써 국민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제주해경 세력 지원 절실"
고 청장은 제주해경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제주는 사면이 바다인데다 일본·중국 등 해양강국들과 인접해 있을 뿐 아니라 한반도 면적의 약 4배에 달하는 86만9175㎢의 광활한 해역에서 치안활동을 효율적으로 수행해내기 위해선 더욱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제주 인근해역은 황금어장으로서 우리나라 원해조업어선과 일본·중국 등 외국어선 조업구역이 중첩, 해상분쟁의 여지가 상존함으로써 제주해경의 해상치안 확보 여부는 제주도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어업인들의 생계와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고 청장은 "다국적 상선과 어선들의 통항로와 조업지로 이용되는데 따른 밀수·밀입국의 접선 또는 환승 해역화 등 치안수요의 증가, 어느 해역보다 광활한 해역, 우리나라 구난상황 30%의 제주해경 관할내 발생 등 제주해경의 업무는 계속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그는 "해양경찰청 차원에서 중대형 함정의 우선 배치와 인력 지원은 물론 제주특별자치도도 바다의 중요성을 인식, 투자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제주해역 치안활동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서귀포해양경찰서 신설은 아주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
△"남의 귀중한 생명구조 보람"
그는 해경에 투신, '경찰의 꽃'이라는 경무관까지 달게 된 데에는 제대와 해경간부 모집 시기, 적성 및 전공 등이 잘 맞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고마운 군대 선배가 있었다고 말했다.
고 청장은 "중위로 제대한 1977년 당시 군대 선배가 상선회사 인력부장으로 있어서 외항선 항해사로 출국을 준비하던 중 응시한 해경간부 시험에 합격했으나 외항선은 월 50만원, 해경 초임은 14만원 정도여서 갈등했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그런데 선배 왈 '10년 이상 간부선원 생활 결과 돈도 좋지만 사는 게 정상적이 아니다. 해경으로 3년 정도 근무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승선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해주는 바람에 해경을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 청장은 30년 해경 생활의 보람을 묻는 질문에 "아스라이 꺼져가는 촛불처럼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바다 사람들을 구하고 가족의 품에 안기게 했을 때 서로 껴안고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말로써 어떻게 표현하겠느냐"고 반문하며 이타적인 삶의 기쁨을 말했다.
남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게 보람이라면 그 희생을 지켜봐야 했던 게 그의 30년 해경생활의 아픔이다.
고 청장은 "자원은 고갈되고 연안어장은 황폐화되면서 어민들은 먼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다"면서 "낡은 배와 어구로 한라산이 보일 듯 말 듯 하는 곳까지 뱃길을 재촉해 갔다가 갑자기 몰아친 폭풍 속으로 일순간 사라져 버린 영혼들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고 토로했다.
그는 "바다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바다 가족의 애환을 얘기 하겠는가"라면서 "눈을 도심지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정말 어촌과 산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보듬어줄 수 있는 특단의 대책들이 아쉽다"고 밝혔다.
△"마음을 열고 도전하라"
제주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고 청장은 '변화'를 들었다. 그는 "나 자신도 그러했지만 제주사람은 4·3 등 과거의 어두운 역사 때문에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면이 있다"며 "의식의 변화는 행동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행동은 새로움을 창출하는 만큼 하루 속히 의식을 전환, 변화하는 환경에 앞서 갈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경찰의 꽃'을 피우려는 해경 후배들에겐 '열린 마음, 넓은 인간관계, 끊임없는 노력, 도전 의식, 자신감' 등을 주문했다.
그는 "마음을 열지 않으면 나를 상대에게, 상대도 나에게 필요한 부분을 볼 수도, 얻을 수도 없는데 제주해경 동료들은 가슴을 여는데 너무 조심스러워 다른 사람이 가까이 하고자 하는 틈을 잘 주지 않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고 청장은 또 "고통 없는 결실이 있을 수 없는데 제주도 후배들은 타지역 순환근무를 기피하는 경향이 농후하다"며 "가족을 떠나 혼자 생활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견문을 넓히고 인간관계를 넓히기 위해선 그 정도의 불편은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해경 동료·후배님들에게 끊임없는 노력으로 한 우물을 파서 홀로서기를 하라고 당부하고 싶다"는 고 청장은 "비록 실패하더라도 후회가 없다고 생각되면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끝까지 도전해 진인사후 대천명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인터뷰를 끝냈다.
● 고인규 동해지방해양경찰청장
고인규 동해지방해양경찰청장(58)이 태어난 곳은 황해도 옹진이다. 그러나 2살이 되던 해, 제주도가 고향인 아버지의 등에 업혀 제주도에 들어와 성산에서 초·중·고를 다녔다.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 대학 학비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그는 해군 간부후보생의 길을 선택, 바다와 인연을 맺게 된다. 결론적으론 대학을 갈 수 없게 했던 가난이 초대 동해해경청장인 오늘의 고인규를 있게 한 셈이다. 삶은 주어진 환경보다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1977년 해군 중위로서 전역한 그는 이듬해 항해사와 해양경찰 간부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다 '선배'의 권유로 해경을 선택,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는 경위로 임용된 이후 30년을 장돌뱅이처럼 전국을 고향삼아 돌아다녔다(고 청장 표현). 1986년 경감, 1995년 경정 등 승진은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게 했지만 고향 근무는 1996년 제주해양경찰서 경비과장이 처음이다.
그런데 일단 연을 트자 '원이 없을 정도로' 제주에 근무하게 된다. 경비과장을 시작으로 당시 국내 무장 함정 가운데 가장 크게 건조돼 제주해경에 배치된 3002함(태평양·3900t급)의 초대함장에 이어 경무과장까지 제주서에서 근무하다 2000년 7월 총경으로 승진했다.
총경으로 1년간 본청 안전관리과장을 거친 뒤 이번엔 서장으로 제주해양경찰서에 부임했고 이후 본청 교육과장과 군산서장 등을 역임, 완도서장으로 부임 6개월만인 2004년 12월 '핀치히터'로 차출, 다시 제주서장으로 오게 된다.
당시 한림 앞바다에서 발생한 선박화재로 인한 선원들의 사망피해와 관련, 제주해경이 대응 부적절 등으로 언론 집중포화를 맞으며 여론이 심상치 않자 해경청장이 그를 지명, 제주서장으로 재파견했고 그는 부임 3개월여만에 이해와 설득 등으로 사태를 해결한다. 같은 직위에서 서장을 같은 곳에서 2번 한 사람은 해경에서 그가 유일하다.
제주서장 이후 다시 본청으로 올라가 경비과장과 감사담당관을 하다 2006년 12월1일 '경찰의 별'인 경무관으로 승진하며 신설된 동해지방해양경찰청 초대 청장으로 부임, 대한민국의 자존심인 독도를 포함한 동해 바다 수호의 총지휘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김철웅 기자 cukim@jem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