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원이다]<2부>제주의 혼을 심는다 뮤지컬배우 문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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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행을 바라지 않는 배우”
△직업이 배우라고 했다. 가요제 대상 경력도 있는데 가수라고는 하지 않는가.
- 가수란 자신의 노래를 갖고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건데 나의 노래가 없다. 1987년 강변가요제 대상을 받자 ‘이제 스타가 되나?’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어렸고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의욕 하나로 되는 게 아니고 운도 따라야 했다. 1년에 수백장의 앨범이 나오고 바로 사장된다. 내 것도 그중에 하나였다. 실패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뮤지컬로 눈을 돌린 게 인생을 길게 왔다.
△데뷔 시기와 동기는.
- 1986년 샹송대회 대상 이후 슬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다음해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가수제의도 있었고 앨범도 냈지만 가수는 인연이 없었다. 또 노래만으로 만족할 수도 없었다. 정식 뮤지컬배우로서 배울 것 배우고 활동하게 된 것은 1995년 서울예술단에 들어가면서라고 할 수 있다. 서울예술단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 2년간 24시간을 48시간처럼 살았다. 내 자신에 대해 그렇게 투자했던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 이후 자신감이 생겼다. 요행을 바라지 않는 배우가 됐다.
△박해미와 함께 더블 캐스팅됐던 뮤지컬 ‘맘마미아’는 어떤 작품인가.
- 맘마미아는 최고였고 3개월간 장기공연하면서 그렇게 흥행에 성공한 뮤지컬은 전무후무하다. 매 공연 유료관객이 80%에 달하면서 장기공연이 된다는 가능성 보여줬다. 특히 보통 뮤지컬 하면 20-30대의 전유물로 인식됐지만 맘마미야는 40-50대 중년여성들을 극장으로 이끈 작품이어서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와 춤이 있고 유쾌한 작품이어서 뮤지컬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첫 영화로 여우조연상 수상
△뮤지컬 특성상 장기간 연습이나 공연을 하는데.
- 하루에 10시간씩 한달반 정도 연습한다. 몸 아프고 할 때 사우나 가서 하루 푹 쉬고 싶기도 한다. 하지만 연습은 공동체니까 빠지지 못한다. 아파도 아픈 티도 못 내고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연습하고 공연해야 한다. 관객들은 내 부모가 돌아가신 것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분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가야 한다. 이게 배우가 갖는 슬픈 운명인 것 같다. 공연이 끝나면 지치고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 하지만 내일되면 어김없이 분장하고 무대에서 활기차게 뛰고 있는 두 얼굴의 나를 본다.
△뮤지컬 VIP석은 12만원이나 한다. 거품은 없나.
- 너무 비싼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작품 로얄티, 공연 제작비, 대관료, 연습과 공연기간 등을 감안하면 가격이 그렇게 나온다. 6개월 이상 장기공연을 해야 가격을 내릴 수 있을 텐데 공연기간이 짧으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뮤지컬 대중화를 위해 상시 전용극장을 만들자는 소리가 그래서 나온다.
△첫 영화 ‘좋지 아니한가’로 상까지 받았는데.
- 제8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조연상까지 받는등 운이 너무 좋았다. 첫 영화를 좋은 감독과 하게 됐고 캐스팅도 오디션 없이 과감했다. 카메라 앞의 연기가 너무 편하고 좋았다. 연극선배들도 과장된 연기로 고생했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하지만 ‘말아톤’으로 500만 관객을 동원했던 감독의 작품이 40만에 그쳤으니 흥행은 비극 수준이다. 그러나 작품에선 평론가와 매니아들의 평이 좋았다. 2007년 최고의 수작이라고 칭찬한 사람도 많았다. 일찍 문을 내리니 아깝다.
“문화 발전에 제주도 지원 필수”
△제주도는 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는데.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그래도 약간의 기대감이 있는 게 2년전부터 서울에서 제주로 내려가도 반응이 괜찮다는 말이 들린다.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여건 때문에 문화적인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제주에선 공연도 못보고, 영화도 못보고 컸다. 서울 애들은 이미 문화적 혜택 많이 누리고 끼를 키워나갔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많이 불리했다. 이제는 제주도도 자라라는 새싹들에게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선배들이 마련해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화관광지 제주를 위한 방안은.
- 첫 시작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이다. 그 다음 성숙해지면 개인적으로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문화상품에 투자, 분위기를 만들어 관광산업과도 연계시켜야 한다. 투자도 않고 관광객을 오라고 하면 안된다. 좋은 공연을 올릴 수 있는 극장도 만들어야 된다. 천혜의 자연경관이 보이는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처럼 좋은 공연장 세웠을 때, 공연도 보고 주위 관광도 하고 되면 그곳을 찾아 공연이 내려갈 것이다. 길게 봤을 땐 관광객 등을 목표로 제주도 소재의 상시공연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4월 제주에 문을 여는 ‘난타’ 상시공연장에 기대가 크다. 자꾸 새로운 것을 만들고 사람들이 들끓게 해야 한다. 난타의 제작 노하우와 마케팅을 배워서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하다. “왜 외부에 주냐? 영화만의 극장인데...” 라는 식으로 배타적이어서 안된다고 본다.
“열린사고로 다양한 의견 수렴해야”
△제주사람으로서 전국 무대에서 성장하는데 어려움은.
-연고가 없었다. 이끌어 주고 조언해주는 선배가 없었다는게 외로웠고, 그래서 억척스럽게 이 길을 고집하며 오지 않았나 싶다. 오히려 외로웠기 때문에 헤쳐온 것 같다. 풍족했으면 좌절했을 텐데 어려운 상황이 나를 만들었다. 지금은 모임(제주엔터테인먼트모임)이라도 있지만, 예전엔 제주 출신에선 고두심 선배만 있는 줄 알았다. 모임에 유명한 영화감독도 있고, 제작자도 있고 많이 다양해졌다. 정보교류도 하고 많은 도움이 된다.
△전국구 스타를 꿈꾸는 끼 있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꿈을 잃지 말고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지나고 나면 어떤 일이든, 어느 분야든 당당해질 수 있다. 결국은 실력을 갖춘 사람이 돼야 제주도를 벗어나 서울에서 경쟁했을 때 이겨나갈수 있다. 너무 조급하지 말고 길게 봐야한다. 10년 20년을 두고 투자를 해야 한다. 20대를 투자해서 30-40대에 이름을 알릴 수 있다면 성공한 거 아닌가.
△사람이 자원이다. 제주의 ‘문화’ 강화를 위해 ‘제주사람’을 늘리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 제주영상위원회에서 ‘제엔모’ 회원 10명을 초대해서 투어를 했다. 태왕사신기 세트장과 영상위의 추진업무 등을 소개하면서 “서울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낮춰서 말하니까 너무 좋았다. 이렇게 제주영상위 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 쪽에서도 열린 사고로 외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초청해서 대화를 나눠야할 것이다. 제주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꾸려나가지 하지 말고 과감한 개방성이 필요하다. 제주사람들은 너무 소극적으로 살아왔다. 이제는 과감하게 대문을 열 때라고 생각한다. 서울=김철웅 기자
1987년 MBC강변가요제 대상 출신
뮤지컬·영화이어 CF까지 진출
●문희경 뮤지컬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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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나인’에서 공연하는 문희경(가운데) | ||
남원읍 하례리 출신인 그녀는 서귀포여고에 이어 진학한 숙명여대(불문과) 재학시절인 1986년 프랑스 대사관이 주최한 제1회 샹송경연대회에 출전, 당당히 대상을 거머쥔다. 그리고 이듬해 MBC 강변가요제에도 나가 ‘그리움은 빗물처럼’이란 노래로 ‘역시’ 대상을 차지하며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을 과시한다.
하지만 실력이 항상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게 현실. 강변가요제는 당시 대학가요제와 함께 스타 탄생의 ‘보증수표’로 여겨질 정도였으나 대상을 받은 문희경은 뜨지 못했다. 같은 무대에서 ‘매일매일 기다려’로 동상을 받은 록그룹 티삼스의 성공과는 대조적이다. 더욱이 그녀는 1987년과 1994년 2장의 앨범을 냈으나 시중에 제대로 나와보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이후 공인된 ‘노래실력’ 덕으로 뮤지컬에 얼굴을 보이던 그녀는 31살이던 1995년 서울예술단에 들어가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그녀는 “서울예술단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 노래한다 연기한다가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던 곳”이라며 “오늘의 문희경을 있게 한, 부족함을 메울 수 있었던 시간”이라고 회상했다.
타고난 재능에 땀을 더한 문희경은 이후 뮤지컬 배우로서 성공의 노래를 시작한다. 1995년 ‘꽃전차’에 이어 2003년 ‘유린타운’과 ‘봄날은 간다’, 2004년 ‘맘마미아’, 2005년 ‘미녀와 야수’, 2006년 ‘밑바닥에서’, 그리고 올해는 ‘나인(Nine)’에 출연, 전율을 느낄 정도의 가창력 높은 노래와 삶의 깊이가 느껴지는 연기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특히 한국 뮤지컬 사상 전무후무한 흥행기록을 세운 ‘맘마미아’에서 ‘거침없이 하이킥’의 박해미와 함께 더블 캐스팅되고 ‘미녀와 야수’를 통해선 제10회 뮤지컬대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는다. 나인에선 혼자 10여분간 노래와 춤으로 무대를 장식하는등 주연급의 역할을 맡았다.
그녀는 2007년 ‘좋지 아니한가(감독 정윤철)’로 영화에도 도전, 처음 출연한 영화로 제8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좋은 영화배우 문희경을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그녀는 최근 모 통신회사 광고에 출연, 여자 친구의 어머니를 ‘여친의 언니’라고 부르는 ‘쇼’에 깜빡 속아 호탕한 웃음을 짓는 연기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도 하다. 서울=김철웅 기자
김철웅 기자
cukim@jem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