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원이다]<2부>제주의 혼을 심는다 : 영화감독 양윤호

충무로 입성 13년차의 중견 영화감독 양윤호(42). 대학생이던 1992년 단편 ‘가변차선’으로 각종 영화제의 대상을 휩쓸며 일찍이 가능성을 인정받은 감독. 제주출신 영화감독 가운데 맏형 격인 그는 어느 한 장르만을 고집하지 않고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감각과 깊이를 인정받아왔다. ‘대박’보다 자기 얘기를 꾸준히 잘 할 줄 아는 감독이기를 희망하는 그를 만나 영화 얘기와 제주영상 산업 발전을 위한 의견들을 들어봤다.

“세계 베스트보다 존재감 있는 감독”

   
 
   
 
우선 영화감독 데뷔 얘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양 감독은 “대학을 재수하게 되자 냉정하게 앞으로 뭘 하고 싶은가. 연극.음악.미술.영화 가운데 고민해보다가 제일 맞는 게 영화인 것 같아 선택해서 대학에 들어갔다”며 “다행히 그 후로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20대 때 영화계에 작정하고 들어간 것이어서 세계 베스트 작품을 하겠다는 각오를 했었다”고 소개한 뒤 “그러나 그런 세계 베스트보다는 존재감이 있는 감독이 돼야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연륜이 묻어나는 새로운 목표를 꺼내보였다.

단편을 포함해 9개, 장편만도 8개의 많은 작품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묻자 “고생한 것으로 치면 ‘유리’ ‘리베라 메’ 순서이고, ‘바람의 파이터’도 많이 고생했다”면서 “앞으로 ‘가면’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 흥행 면에서 그래본 적이 없어서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양 감독의 야심작이자 첫 스릴러 영화인 ‘가면’은 개봉을 앞두고 “12월, 영화사상 가장 충격적인 반전” “연말 흥행예감” 등의 언론 보도 등으로 기대가 컸지만 관객들의 호평과 혹평 사이에서 관객 50만 수준에 그쳤다. 특히 그는 이 영화에 수동으로 돌리는 크랭크카메라를 직접 제작, 인물의 심리를 영상으로 표현하며 공을 들였으나 결과는 기대를 외면했다.

한 장르에 천착하지 않고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이유에 대해 “우선은 꼭 그렇게 하려해서 한 게 아니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그는 “하나로 고정이 되는 것은 안 좋은 것 같다. 한두 작품은 모르겠지만 여러 작품을 하는 감독이라면, 어차피 영화가 이야기니까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영화는 다 있는 종합선물세트”

특히 양 감독은 “여러 작품을 하다보면 영화라는 큰 틀 안에서 모아지는, 수렴된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감독도 여러 스타일이지만 한가지로 고정된다는 것은 대중감독으로서 위험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는 사실상 종합선물세트이다. 액션도 있고 멜로.스릴도 있지 않느냐”면서 “실제 영화를 찍어보면 다른 장르를 했던 게 도움이 되고, 새로운 장르를 하며 새롭게 공부하는 재미, 하나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크다”고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는 또다른 이유를 풀어냈다.

그의 흥행 성적표는 바람의 파이터가 250만 정도, 리베라메도 138만 등으로 결코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대박’은 한번 터뜨려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양 감독은 “영화 ‘괴물’처럼 1200만명은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로또’다. 운도 맞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존재감이 있는 감독, 좋은 감독이라는 개념이 흥행을 천만 해야 하는 그런 부분 만은 아닌 것 같고, 자기 얘기를 꾸준히 잘할 줄 아는 감독이 좋은 감독이라는 생각”이라며 “그 부분에 충실하는 게 좋지 않냐”고 반문했다.

양 감독은 “실재로 영화하는 후배들이 ‘형은 그냥 쭉 그냥 가달라고, 흔들리지 말고 작품 꾸준히 하는 감독으로’라는 말이 요새는 공감이 간다”며 “시대마다 할 수 있는 얘기가 달라지니까 대박도 좋지만 꾸준히 하는 일도 중요하다”며 긴 호흡의 꾸준한 활동을 다짐했다.

17년차 감독으로서 영화는 무엇이고 감독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감독으로서는 영화가 일기장이고 싶은 거고, 대중영화는 일기장 냄새가 빠지고 보는 사람이 재미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답한 그는 “결국 감독은 다양한 얘기를 풀어가는 이야기꾼”이라고 정의했다.

특히 양 감독은 “한국영화는 감독 게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감독의 취향이 중요할 수밖에 없고, 자기 것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일기장 냄새를 빼기 위해선 기술적으로도 필요하고 멘탈로도 다듬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불법 다운로드 한국영화 위기 주범”

한국영화 위기론과 관련, 그는 “스크린 쿼터 축소도 있지만 제일 큰 것은 불법 다운로드가 한국영화 위기의 주범”이라고 지적한 그는 “21세기가 소프트웨어 시대에 맞게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시정이 돼야 한다”며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한 국민 의식 개선을 희망했다.

양 감독은 “영화.음반.드라마 다 마찬가지인 게 우리 한국 사람들은 ‘굿도 보고 떡도 먹는다’는 말처럼 문화를 공짜로 즐기려는 부분이 너무나 크다”며 “외국은 허접한 공연이라도 1분을 보면 1달러라도 내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제주도의 영상산업 발전방안에 대해 얘기를 꺼내자 그는 주민 공감대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양 감독은 “워낙 타 지역들이 이미 발달한데다 제주도의 날씨도 문제이고, 그것을 보완하려면 세트장이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그에 앞서 왜 영상산업이 필요한지, 부가가치가 뭔지를 도민들에게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영화 촬영차 한달간 부산에 있으면 택시.식당.호텔.술집은 물론 레카차와 목재.페인트 등 세트용품의 현지 구입 등으로 수십억원을 쓴다”고 소개한 그는 “부산 시민들은 무공해.고부가가치 영상산업의 경제 효과를 잘 알기 때문에 ‘불편을 줘서 미안하다’고 하면 ‘무슨 소리냐. 어려운 부산경제 당신들 덕분에 산다’고 오히려 고마워 한다”고 영상산업 발전을 위한 지역의 호스피탤러티(Hospitality)를 역설했다.

양 감독은 “제주영상위원회는 제주도와 서울지역 사람들이 합심해 발전시켜야할 것”이라며 “제주도에서 문화 활동하는 사람들이 소외돼선 안되지만, 영상 쪽은 서울에서 활동 중인 사람들(제주영상위원회에 참여한 서울거주 이사)이 나으니까 같이 가야할 것”이라고 방안을 제시했다.

“영상위원회 주도적적 활동 필요”

특히 양 감독은 “제작자나 감독 협회에 제주의 가치를 알리고 섭외해야 하는데 아직 안되고 있다. 제작자니 감독이니 해도 제주영상위원회를 모르고, 제주에 촬영을 간 사람들도 모르더라”면서 서울-제주 이사들을 연계시킨 제주영상위원회의 주도적 활동을 주문했다.

제주사람으로서 전국 무대에서 성장하는데 어려움과 극복과정에 대한 질문에 대해 그는 “독립군의 고독과 고난”으로 대변했다. 그는 “선배들이 없어서 저희 세대가 가장 전투적일 것”이라면서 “그렇다고 장애가 되고 그렇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어 양 감독은 “제주도 사람들이 문화쪽에 기질이 많은 것 같다”면서 “저 밑으로도 한동안 없다가 생겼다”며 제주 후배인 한재림.김종진.모지은.부지영 감독을 소개하며 “감독만 5명으로 인구에 비례하면 은근히 많다”고 힘줘 말했다.

제주관광 또는 제주지역의 영상산업 강화를 위한 ‘제주사람’ 확보 방안으로 그는 네트워킹강화를 들었다. 양 감독은 “제주사람들이 (타시도에 비해) 워낙 적은 숫자여서 분야별로라도 네트워크가 있으면 좋겠다. 개인적 인맥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조직적 관리가 필요하지 않나”라며 행정기관인 제주특별자치도의 주도적 역할을 주문했다.

끝으로 양 감독은 ‘끼’ 있는 제주도 후배들에게 “무슨 일을 하든 일단 자기가 좋아해야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며 “영상부문에 도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일에 필요하다면 언제든 제주도에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서울=김철웅 기자 
 


 

●제주출신 영화감독 맏형 양윤호
데뷔 이후 ‘바람의 파이터’ 등 8편 연출
다양한 장르 넘나들며 감각·깊이 지녀

영화감독 양윤호(42)는 제주 출신 영화감독 가운데 맏형 격이다. 지난해 ‘우아한 세계’로 청룡영화제와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의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한재림 감독(33)과 ‘만남의 광장’의 김종진 감독, 27살이던 2002년 신은경.정준호 주연의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로 데뷔한 모지은 감독(33.여), 올해 데뷔한 부지영 감독(37.여) 등 충무로에서 활약하는 제주 출신 감독들이 없진 않으나 이들은 모두 30대다.

그러나 양 감독이 제주 섬사람에겐 생소한 직업인 영화감독의 길을 앞서 들어서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는 동국대 연극영화과 3학년이던 1992년 대학동기인 박신양을 주연으로 단편 ‘가변차선’을 연출, 부산동백영화제 대상과 기획상, 금관영화제 대상, 신영영화제 대상 등을 휩쓸었다. 게다가 ㈜코닥의 우수영화에도 선정되면서 당시로선 적지 않은 1500만원의 상금을 받아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양 감독의 강점은 도전 정신. 영화감독의 경우 가장 한 소재나 장르만 다루는 ‘불변형’과 코미디.멜로.공포영화 등 모든 장르를 섭렵하는 ‘변신형’으로 구분되는데 양 감독은 후자다.

양 감독은 1996년 첫 장편인 예술영화 ‘유리(1996)’로 충무로에 입성한 이후 내놓는 작품마다 장르를 달리하면서도 감각과 깊이를 인정받아왔다. 코미디 작품인 ‘미스터 콘돔’(1997), 재난 블록버스터인 ‘리베라메’(2000), 최배달의 영웅적 삶을 담은 무협액션 ‘바람의 파이터’(2004) 등에 이어 2005년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남긴 탈옥수 지강헌 사건을 다룬 ‘홀리데이’와 지난해는 스릴러에도 도전, ‘가면’을 만들었다.

이러다 보니 ‘가변차선’을 기준으로 하면 17년차 감독이고 정식 장편 데뷔작인 ‘유리’로 치더라도 13년차인 중견 감독인 그에 대해 어느 영화평론가는 ‘한 장르를 천착하기 보다는 미답의 장르와 소재를 찾아 나서는 하이애나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꾸준함도 돋보인다. 양 감독이 그동안 메가폰을 잡은 작품은 8개. 우리나라 영화감독들이 한두 작품으로 단명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평생 3-4개 정도의 작품을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다작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그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도 편당 수십억원이 들어가는 ‘벤처’ 사업인 만큼 작품성과 흥행성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그 누구도 감독을 맡기지 않으리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한림읍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제주시로 유학, 제주남교와 제일중.제일고를 졸업한 양 감독은 제주영상 발전에도 관심이 많아 제주영상위원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서울=김철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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