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들을 잘 경영하면 보물이 바다에서 일어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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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에서 바라본 남해안 섬들. | ||
아득한 바다에는 오로지 수평선 뿐이다. 먼 바다에서는 새조차 좀처럼 날지 않는다. 창공을 나르는 새가 가까워졌음은 육지나 섬이 가깝게 있다는 결정적 증거다. 망망대해를 거쳐온 이들이 모처럼의 안식처를 얻는 섬은 분명 '생명의 땅'이다. 그러나 '생명의 땅'이기는 해도 모든 섬이 풍족하고 윤택한 것은 아니다. 대체로 섬 주변은 날카로운 파도와의 오랜 싸움 끝에 강렬한 흔적을 남긴다. 파도, 바람, 식량난, 식수, 표류, 도망, 무역, 침략 등등 몇가지 단어들은 섬을 표상하는 중요한 말들이다.
섬은 분명히 '파라다이스'는 아니다. 그러나 육지의 탐학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들에게 '파라다이스'가 섬에서 형성될 수밖에 없다. 때로는 산림으로 도망가서 무리를 이루고 군도를 이룬 집단이 존재하지만, 숲 역시 육지의 일부분일 뿐이다. 섬은 무언가 다르다. 가까운 섬은 분명히 육지의 연장선으로 딸려있고, 도서민의 삶 역시 육지에 복속되기 마련이지만 섬의 실체가 바다 위에 존재함은 엄연한 사실이다. 걸어서 불과 1분거리에 놓인 지근거리도 분명히 섬일 뿐이다. 누구든 썰물이 아니고서야 가까운 섬조차 걸어서 갈 수는 없다. '어떤 섬도 걸어서 갈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섬의 존재이유는 육지와 다르다.
문화적 원형질로 볼 때, 섬의 탄생 자체가 신화적이다. 신화적이라 함은 섬을 매개로 무수한 은유, 끝없는 해석을 가능케한다. 신화는 그야말로 신화이기 때문이다. 인간 생명의 탄생이 바다라는 '미궁의 자궁'을 통해서 가능해다면, 섬은 그 '미궁의 자궁'에서 조건지워진 숙명의 땅이기도 하다.
서양인들은 끊임없이 미지의 섬인 아틀란티스를 믿어왔다. 이상향인 아틀란티스란 섬이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으로 짐작되어 플라톤 이래 수많은 철학자들의 탐구 대상이었다. 아틀란티스를 찾는 수많은 모험가들이 생겨났으며, 아예 '아틀란티스학(學)'까지 탄생하였다.
우리의 제주민중들도 나름의 아틀란티스를 갖고 있으니 남쪽 나라 어딘가에 있다는 이어도가 그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접어들면 그들 이상향적인 섬은 하나의 분명한 대망체계로 등장하고 있었다. 양대전란을 겪으면서 민중들의 현실적인 피해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적 공황도 심각한 지경이었다. 조선후기 민중들은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간단없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온갖 저항운동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 대표격으로 이상향을 찾아나서는 노력을 꼽을수 있을 것이다. 민란의 기도나 민란에서 확인되는 정진인의 해도로부터의 영입문제가 그것이다. 이미 숙종 연간의 갑술환국 당시에도 서인측에서는 해도의 정진인을 영입할 때에 그들의 노비를 동원한다고 하였다.
빈한한 자들과 미천한 자들을 위하여 무신 망명 역적인 황진기가 장군이 되어 정진인을 모시고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울릉도 월변의 섬에서 나오고 있으니 청주와 문의가 먼저 함락되고 이어서 서울이 함락될 것이며 이씨를 대신하여 정씨가 가난이 없고 귀천이 없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것이라는 점이 괘서와 투서로 널리 알려져 당시 경기 충청도의 백성들을 동요시킨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시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것은 동해에 있다는 삼봉도였다. 삼봉도는 이미 15세기말인 성종 연간에 이미 운위된다. 도부배국(逃賦背國)의 무리가 1000여명 넘게 삼봉도에 살고 있었으니 토지가 비옥하고 풍요로우며 멀리서 보면 산봉우리가 셋이 있기 때문에 삼봉도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 위치는 경흥에서 청명한 날에 바라보이며 회령으로부터 동쪽으로 7주야를 가면 도달한다고 했다. 정부에서는 몇차례에 걸쳐 백성들이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이 섬을 수색하여 뿌리뽑으려 노력하나 뱃길이 험하고 위치가 정확하지 않아 성공하지 못한다.
백성들에게는 세금도 내지않는 자유스러운 땅으로 회자되므로 이들 백성의 희망을 근절하기 위하여 그곳에 갔다 왔다는 사람을 사실 무근한 말을 퍼뜨린 죄로 극형에 처하여 그 시체를 일도에 돌려 백성들에게 알려야한다는 논의까지 제기된다.
섬에서 민중의 해방을 위하여 진인이 출래할 것이라고 믿는 당시 일반 민중 사이에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의 해방을 갈구하는 경향이 미만하고 있었음을 확인할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해도출병설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순조4년(1804)에 장연 등곡천 주위를 중심으로 이달우 등이 일대 변란을 꾸몄다고 모의자들이 체포된 장연작변(長淵作變)이 있었다. 군대를 모집하고 군량미를 확보하여 정면으로 봉기할 것을 결의하였다. 여기서도 섬이 등장한다. 백령도와 울릉도에 병영을 마련하여 군량미 1000여석을 저장하고 병기를 만들기로 하였다.
1813년 2월, 성주 출신 향반 백동원은 '북적(관서농민전쟁)이 나왔으니 남적 또한 반드시 나올 때가 되었다'고 하였다. 1813년 12월에 실제로 제주도에서는 양제해가 홍경래의 기병에 용기를 얻고 모방한 변란이 일어났는 바, 이 역시 해도기병설과 유관하다.
철종2년(1851) 황해도를 중심으로 모반을 꾀한 해서고변(海西告變)이 터진다. 주모자들은 대청도, 초도 등지에서 병기를 저장하고 군사를 조련시켜 황해도와 평안도의 민인 4000여명을 동원하려 하였다가 실패로 돌아간다. 철종4년(1853) 12월에 봉화에 역모를 도모하는 흉서가 나붙는다. 흉서 내용 안에 '울릉도의 말'이 등장하고, '선동''흉모' 등의 귀절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반역거병(反逆擧兵)을 모도하였던 사실을 반영한다. 이 흉서 때문에 삼남지방에 범인 체포령을 내리면서 특히 호남의 뱃사람에 대한 일대 수색령을 내린다.
19세기 초반부터 요란스럽게 당대를 풍미하였던 해도기병설은 100여년이 흐른 1898년에도 남학당(南學黨)과 방성칠난(房星七亂)에 고스란히 이어진다. 제주도의 독립국가 건설방안을 제시한 바 있는 방성칠은 정감록류의 각종 비기에 바탕을 둔 민간예언사상에 따라 민란의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 여기서도 진인이 섬에서 나옴을 명시한다.
해도출병설의 전형적인 전모는 일찍이 평안도농민전쟁에서 그 단초를 발견할수 있으니, 이미 19세기 초반에는 해도출병설이 사회변혁이론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홍경래동란기(洪景來動亂記), 동국전란사(東國戰亂史) 등 여러 격문에 비슷하게 나타나는 내용을 살펴보면, '다행히 제세(濟世)의 성인이 청북(淸北) 선천(宣川) 검산 일월봉 아래 군왕포 위의 가야동 홍의도(紅衣島)에서 탄생하였으니, 나면서부터 신령하였고 다섯살에 신승(神僧)을 따라 중국에 들어갔으며 장성하여서는 강계(江界) 사군지(四郡地) 여연(閭延)에 은거하기 5년에 황명(皇命)의 세신유족을 거느리게 되었으며, 철기(鐵騎) 10만으로 동국을 숙청할 뜻을 가졌다'고 하였다.
격문 중의 홍의도는 정감록의 해도기병설이 말하는 바, 진인의 군사가 있는 해도를 의미하는 구체적인 섬의 명칭이다. 따라서 정감록의 해도기병설이 환상적인 예언이 아닌 현실적 사실로 되고 있고, 그 구체적 증거로서 홍의도의 존재를 보여준다.
돌이켜보면 16세기 정여립변혁사건의 대미를 장식하였던 역사의 현장도 바로 죽도다. 죽도는 막상 섬이 아니다. 금강 상류가 굽이치는 가운데 동그란 지형이 형성되어 섬을 방불케한다. 풍수상으로는 물줄기가 감아 돌아가는 회회지지(回回之地)인 바, 상류에서 바라보면 입구쪽에서 들어오는 사람이 보이되 입구에서는 상류쪽이 보이질 않는다. 난세의 피난처로 요긴할 지형을 두루 갖추고 있으니 정여립이 죽도라는 섬 명칭을 근거지로 삼았던 배경이 이해될만하다.
아틀란티스는 지구상에 없는 섬일수도 있다. 이어도, 삼봉도, 홍의도도 모두 없는 섬일수 있다. 그러나 민중들은 그 섬의 진실을 믿었다. 여름만 되면 섬에 가고 싶어하고, 왠지 그 섬들에는 그 무언가가 있을 것같다는 착각, 미지의 섬을 찾아나서는 심리 속에는 전세계 인류가 공통적으로 간직해온 '아틀란티스'적인 그 무엇이 잠복해있기 때문이다.
섬은 무지랭이 백성만 모여사는 단절된 곳일까. 섬은 당대의 선진지식으로 무장한 세력들이 꽃을 피지 못하고 끝내 귀양으로 쫓겨간 '시베리아의 유형지' 같은 곳이었다. 수많은 인재들이 섬으로 귀양을 갔으니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모인 곳이 또한 섬이었다. 그리하여 시대를 예언하는 묵시록이 파도를 타고 뭍으로 전해졌다.
이제 섬은 육지로 떠난 사람들 덕분에 텅빈 곳이 되고 말았다. 강진 바닷가에서 18년 귀양살이를 한 정다산은 「경세유표」에서 '해도경영론'을 부르짖었으니, 섬들을 잘 챙기면 보물들이 수풀처럼 바다에서 일어나리라고 하였다. 그의 화두는 21세기에도 여전하다. 21세기의 새로운 섬의 이상향은 무엇일까. 아틀란티스는 여전히 '미궁의 바다'에 머물고 있다. 꿈과 약속을 이루어주던 이상향은 천년을 뛰어넘는 하나의 기호로서 각인되어 유전인자로 전승되고 있으니 우리들 앞에 놓여있는 섬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섬은 그 자체 현실적 자원이자, 돈이자, 희망이자, 이상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민속학자·제주대 초빙교수>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