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기자 마당] 물건에는 투자하면서 디자인은 간과

   
 
   
 
개인에게 있어서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매우 많은 자금과 고민이 따르는 중대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화장실의 변기하나에서 창문하나를 선택하기까지의 그 주인 되는 사람의 고민은 이루 말할 데가 없다.

그 심적 부담이 없이 마치 마트에서 가방을 고르듯이 하는 사람을 거의 본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나서보면 그런 고민의 흔적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최근에 지어지는 건물을 보면, 건축재료들은 많이 좋아지고 있는데도 그 결과물인 건축재료의 총합 즉, 건축물을 보면 디자인이 조악하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하드웨어인 물건에는 투자를 하였지만, 소프트웨어인 디자인에는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에서의 디자인이란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건축에서의 디자인은 형태를 만드는 것보다는 집을 짓는 계획을 세우는 일이라고 하는 것이 더 본의에 근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사를 갈 때, 이삿짐의 위치를 미리 정하지 않고 옮기면, 집안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인력과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때문에 건축에서의 디자인은 미적 감각보다도 많은 시간을 들여서 꼼꼼히 자금사정과 시공방법과 재료선정을 따져야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건물주는 제한된 시간을 제시하면서 빨리 해 달라고 주문을 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짧은 시간만큼이나 적은 보수를 제시하기 마련이다. 한 달 만에 완성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한달이라는 기간동안의 수고비를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대개의 요청이라는 것이 다섯 달 걸릴 고민거리를 두 달 만에 마쳐달라고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건축가의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건축가의 업무라는 것은 이런 식으로 요구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디자인이야 건축가의 개인적 재능의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건축계획이라는 것은 재능이라기보다는 훈련과 경험 그리고 깊은 고민 등의 후천적 노력의 영향을 받는다. 유사사례를 조사해 볼 시간도 없이, 그리고 모형에 의한 간접적 검증의 과정도 없이 좋은 계획안이 만들어 질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그러한 과정이 없이 조악한 디자인으로 끝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건축가는 늘 주어진 과제를 작품화하기 보다는 하나의 업무적인 사건으로 처리하고 보수를 빨리 받아야하겠다는 유혹을 받는다.

제주의 도시경관이 왜 나아지지가 않는가. 아직도 대개의 건물주들이 디자인에 투자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물건이면 싼 게 좋은 것이라는 경제적 논리가 건축디자인에서는 같이 논의 될 수 없다. 건축물은 여전히 공장에서 만들 수 없으며, 또한 절대로 같은 물건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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