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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념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대담4.3항쟁 60주년 기념 과거.현재.미래 진단
김철웅 기자
입력 2008-06-01 (일) 17:04:02 | 승인 2008-06-01 (일) 17:04:02

   
 
   
 
올해는 ‘제주4.3사건’ 60주년이다. 하지만 제주4.3이 지하의 역사에서 햇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런데 2000년 4.3특별법 제정 이후 진상조사보고서 채택과 그에 이은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로 잘 풀리는 듯하던 4.3이 이명박 정부 들어 과거사위원회 통폐합 방침 등으로 시련도 예상된다. 이에 본보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중앙위원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과의 대담을 통해 4.3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진단해본다.

△2000년 4.3위원회 발족 때부터 아주 가까이서 ‘4.3’을 지켜봐왔는데, 4‧3이 한국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찾는다면.

- 남쪽만의 분단 정부 수립을 거부하고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궐기한 것은 제주도가 지역단위로는 최초이고, 최후다. 지금도 그 작은 섬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분단정부 수립을 반대하며 항쟁에 나설 수 있었던 통일의식에 경외감을 갖는다.
거기다다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 보듯 3.1절의 의미를 실천적으로 행동하는 제주도민들의 역사의식도 놀랍다. 이런 두가지 측면에서 봤을 때 제주도민들의 역사의식.시민의식.통일의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4.3의 현대사적인 의미는 각별하다.

△ 아직도 일각에선 남로당 지령설 등으로 4.3의 의미를 격하시키기도 하는데.
- 예나 지금이나 그 많은 사람들이 정치집단에서 지령한다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 서울 청소년들의 미국산 쇠고기 반대 항거도 보수언론과 정부에선 배후세력을 거론하며 국민들을 분노시키고 있다. 일반 국민이나 대중이라는 게 어떤 공감대가 있었을 때 움직이는 거지 어떤 특정 세력이 지시하고 지령한다고 수만 수십만 명이 일어나질 않는다.

△제주4‧3사건이 반세기 가까이 지하의 역사였던 이유는.
- 첫째 해방 후 미국 주도의 반공체제가 고착화되고 또 그런 이승만 정권과 군사독재정권으로 이어지면서 국민저항 같은 것들을 대단히 불순.불온하게 여겼던 이데올로기적 측면이 있다. 두 번째는 국토의 변방에서 일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의미 부여라든가 많은 희생을 아주 우습게 여겨버린 섬 지역에 대한 차별 의식과 함께 중앙 언론과 지식인들의 직무태만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특별법 제정과 진상조사, 그리고 대통령 사과로 이어졌다. 4.3 해결 과정이 다른 과거사와 차이가 있다면.
- 처음엔 4.3항쟁 문제를 덮어둬야지 그 아픈 상처를 까발리면 희생자 유족들의 분노나 원한이 폭발, 불상사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기우였다. 진상조사가 진행되고 유해발굴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유족들이나 제주도민들이 대단히 슬기롭게 대처했다.
특히 다른 지역에 비해 보상 등을 강하게 요구하지 않는 점에서 도민들의 역사의식이 투철하다는 생각이 든다. 4.3위원회도 국민통합과 화해, 그리고 진상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만큼 대단히 모범적이라고 생각한다.

△방금 4.3을 ‘항쟁’이라고 했다. 60주년을 맞아 제 이름 찾기 운동도 펼쳐지고 있다. 4.3의 정명(正名)은 무엇인가.
- 사물이나 사건에 바른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공자도 노나라 재상이 된 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정명을 찾는 일’이라고 했을 정도다. 4.3은 민중항쟁이다. 4.3은 여러 가지로 불려오다가 최근 민중항쟁으로 일반화되고 있는 듯하다. 사실 4.19도 처음에는 폭동, 반란 이러다 ‘4.19혁명’이 됐다. 동학도 그랬고 광주민주항쟁도 그렇다.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궐기했다는 사실은 사회학적으로 보나 정치사적으로 보나 민중항쟁이다. 개중에 남로당 출신의 좌익이 끼기도 했고 경찰서라든가 우익인사들에 대한 테러도 있었지만 그런 것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프랑스혁명이나 미국독립전쟁, 심지어 4.19혁명에도 그런 세력은 있었다. 일반 대중의 전체적인 의식은 결코 좌경세력, 남로당 세력에 동조한 게 아니었다.

△ 이러한 과정에 있어 제민일보의 활동을 평가한다면.
-그동안 소위 제도 언론이나 연구가들이 제주4.3 등 과거사와 국가에 대한 폭력 자체를 불온시하고 외면하거나 침묵하면서 고의로 덮어두려 했다. 그런 것에 비해 제주에서 도민의 힘으로 창간된 제민일보는 그런 터부를 깼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소수의 창조적이고 의식적인 세력이 있음으로써 역사가 발전하고 진보해 왔다. 4.3에 있어 바로 제민일보가 이런 역할을 했다. 제민일보는 선구자적인 활동을 펼쳤고, 그에 힘입어 지금과 같은 큰 성과를 얻게 됐다고 본다.

△직접 활동하고 있는 위원으로서 제주4‧3위원회의 성과는.
- 스스로 평가하기가 조금 그렇지만 대단히 성공적인 과정을 거쳐 왔다고 본다.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아 직접 회의를 주재하고 각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활발하게 토론하면서 8년을 활동해왔다.
2003년3월 4.3진상조사보고서 발표 당시 6개월 유예기간을 뒀다. 이의가 있거나 새로운 사실이 있으면 수정할 수 있게 했으나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4.3을 맹목적인 이데올로기적 시각에서 좌경.좌파의 반란으로 매도하거나, 매사를 용공.친공 등 이념적 좌경으로 몰아 진실을 뒤엎으려는 행태는 시정돼야 한다. 이런 것들을 극복한 게 4.3위원회의 과정이고 성과다.

△ 새 정부 들어 4.3위원회 등 과거사위원회 통폐합 얘기가 나온다. 18대 국회에서 논의가 재개될 전망인데.
- 법도 형법과 민법이 다른 것처럼 과거사 위원회들도 성격이 다르다. 무조건 통폐합했다가는 죽도 밥도 안된다. 정부가 마무리 단계의 4.3 정리 작업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우를 범하지 않으리라 기대한다.
특히 민주국가에서 정권교체가 계엄군에 의한 국정 뒤엎기는 아니지 않은가. 4.3특별법 등 여야 합의를 거쳐 제정한 법률을 새 정권이 무력화시켜 버린다면 국가의 영속성을 위해서나 국민통합을 위해서 대단히 잘못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런 허튼, 서투른 일들을 삼가야 한다.

△향후 4‧3위원회의 활동은 어떠한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보나.
- 지난해 4.3특별법이 개정돼서 활동영역이 남아있다. 추가 희생자 등록 신청자들에 대한 마무리 심사, 그리고 재단설립 사업 등이다. 아무쪼록 역사적인 평가와 현실적인 과제 사이에서 접점을 잘 찾아 정리하면서 좋게 마무리할 수 있으면 한다.

△ 출범을 앞둔 제주4‧3재단의 역할에 대해 조언한다면.
- 3.1정신과 통일정부 수립, 평화의 의지들이 복합된 4.3의 의미는 60년이 지난 지금은 물론 미래에도 우리가 가야할 길이기도 하고 4.3재단이 추구해야 될 가치라고 본다. 따라서 4.3재단은 이런 것을 중점으로 연구하고 국제적인 유관기관들과 연대, 인류 공동의 가치 공유 확산에 노력해야할 것이다. 단순히 4.3 희생자들로 활동을 국한하는 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도리도 아니고 재단이 가야할 방향도 아닐 것이다.

△추가고 더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데.
- 여전히 제주4.3항쟁을 좌경으로 인식하는 분들에게 꼭 한마디만 하고 싶다. 이승만 대통령이 제주지역에 계엄령을 내린 게 1948년11월17일이다. 이 계엄령으로 많은 제주의 민간인들이 학살당했으나 정작 대한민국에서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년 뒤인 1949년11월24일이다. 이승만 정부는 법에도 있지 않은 계엄에 의해 제주도민을 학살한 것이다. 이래서 4.3은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이고 책임의 상당 부분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안다면 4.3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서울=김철웅 기자

김삼웅 전 관장은 누구?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65)은 지난 2000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발족 때부터 언론계 대표로 4.3위원회 중앙위원으로 참여, 9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당시 김 전 관장은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주필 상무이사였다.

김 전 관장에겐 4.3위원회 활동을 통해 4.3 진상보고서 작성과 노무현 대통령의 제주도민에 대한 직접 사과 등 어둠의 역사를 밝히는데 일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게 큰 보람이다.

그는 2004년 10월 제7대 독립기념관 관장으로 부임, 지난 3월 퇴임할 때까지 꼴찌 수준이던 독립기념관의 경영평가를 상위수준으로 끌어올려 2007년 정부 200여개 기관 가운데 유일하게 대통령표창을 수상하며 경영능력도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독립기념관장 시절보다 대한매일 주필로 독립기념관 사외이사를 맡고 있던 2003년 ‘거사’를 도모, 큰 관심을 끌었다.

독립기념관에 전시돼 있던 ‘일제말기 친일논란’의 조선일보 윤전기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1910년대 하와이에서 발행됐던 항일투쟁 신문 ‘신한민보’ 윤전기를 갖다 놓은 것이다. 이 거사 이전 신한민보의 윤전기는 지하창고에 있었다.

당시 김 전 관장 등 이사들은 “독립기념관에 친일언론 신문사의 윤전기가 전시돼 있다는 것은 독립선혈들에 대한 후손의 도리나 민족정기로 보나 후세 학생들에 대한 교육으로 보나 도저히 안된다”는 여론을 수용, 전격 철거를 결정한 것이다.

그는 글쓰기를 ‘워낙’ 좋아해 ‘단재 신채효 평전’ ‘만해 한용운 평전’ ‘약산 김원봉 평전’ 등 매년 1권 정도의 책을 써왔고 현재는 오마이뉴스에 ‘안중근 의사 평전’을 연재하고 있다. 서울=김철웅 기자


김철웅 기자  jemin906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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