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메시지 「서귀포 환상·섶섬이 보이는 풍경」

 

   
 
 

「섶섬이 보이는 풍경」 합판에 유채. 41×71cm. 1951년

 
 

 

   
 
 

「서귀포의 환상」 나무(합판)에 유채. 56×92㎝ 1951년

 
 

 

 통치자의 허위와 위선

1998년도 서울대학교 입학 논술고사 문제는 제시된 글을 읽고 수험생 자신의 생각을 현실의 문제와 결부시켜 논술하라는 것이었다. 제시문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었는데 이는 '통치자의 위선'과 '피통치자의 우둔함'을 대비시켜놓은 정치 우화였다.

많은 수험생들은 '통치자의 위선'을 지적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독재 통치방식은 「동물농장」과 다름없는 인권유린이었다.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유용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IMF 위기가 왔는데도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당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던 '정리해고'와 관련시켜 자신들의 생각을 피력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의 출제 의도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어느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를 떠나서 오로지 논술의 과정과 방식만을 보고서 채점하겠다"고 문제에서 미리 힌트까지 주었는데, 이것은 '피통치자의 우둔함'을 지적하여 논술해 달라고 미리 부탁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보라. 선거 때마다 내세워졌던 후보자들의 공약은 당선이 되고 나면 그야말로 공약(空約)이 되어버리지 않았던가. 피통치자들은 통치자의 도덕성을 물어야 할 텐데도 통치자의 속임수와 감언이설에 너무나도 쉽게 속고 설득 당하지 않았던가.

왜 통치자만의 잘못인가. '통치자의 허위와 위선'을 비판하지 못한 피통치자의 우둔함을 지적해 달라는 것이 서울대학교 논술고사 출제자의 출제의도였다.

'통치자의 허위와 위선'을 비판하러, 2008년 지금 서울대학교의 한 여학생이 촛불시위에 나섰다가 한 전경대원에 의해 아스팔트 위에 쓰러진 뒤 군홧발에 짓밟히고 축구공처럼 채였다. 어째서 그 여학생의 머리가 군경의 군홧발에 채여야 된단 말인가.

그 여학생의 비명 소리가 동영상을 통해서 멀리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내 귀에까지 전해왔다. 여학생에게는 뇌진탕 진단이 내려졌고, 그 전경은 형사입건 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전경들은 항변한다. 상부에서 그렇게 하라고 지시가 내려왔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인데 어째서 우리 전경들만의 책임이냐고. 심지어 어떤 전경은 자신도 휴가를 받으면 애인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싶다고까지 말한다.

   
 
 

「게르니카」 피카소 作. 캔버스에 유채. 349×775cm. 1937년

 
 

4·3 항쟁과 이중섭 그림

제주도 4·3 항쟁은 자유와 민주를 입버릇처럼 외치던 자유당 이승만 정권이 1948년 제주도민에게 총을 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통치자의 허위와 위선'을 제주도민이 비판한 것으로서 4·19나 5·18보다도 훨씬 앞선 민주항쟁이었다.

이 4·3 항쟁 때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희생되었다는 이야기를 1951년 서귀포에 피난 온 이중섭이 전해 듣고는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기 위해서 그린 그림이 바로  「섶섬이 보이는 풍경」과 「서귀포의 환상」이었다. (※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본 연재 29회에서 해설했고, 「서귀포의 환상」은 34·35회에서 해설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도 마찬가지였다. 스페인 내란 때 독일 공군의 살상에 대한 피카소의 분노이자 고발이었던 작품. 독일 공군이 사격연습을 하듯이 스페인 북부의 게르니카 마을 사람들을 향해 기관총 소사와 폭탄을 퍼부었는데 약 3시간동안에 1654명이 죽고 889명이 다쳤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이중섭과 피카소, 이 두 사람의 그림을 비교해보자. 「게르니카」가 대부분 무채색으로 그려진 데에 비해 이중섭 그림은 채도가 높다.

피카소가 큐비즘에 입각하여 시간과 공간을 복합적으로 표현한 데에 비해, 이중섭은 「섶섬이 보이는 풍경」에서는 자연주의적 방식을, 「서귀포의 환상」에서는 상징주의적 방식을 취했고 상징과 왜곡과 변형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냈다.

이중섭은 말한다.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이지만, 미적으로 보았을 때는 "아름답다"고.
미적 가치의 범위를 넓힌 이중섭 작 「섶섬이 보이는 풍경」과 「서귀포의 환상」은 제주도 서귀포의 보물이다.

복사판이라도 좋다. 이중섭미술관에 상설 전시되어 관람객들로 하여금 '평화의 섬 제주도'의 의미를 깊이 느낄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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