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이 미래다] 건축물 부조화, 무표정한 도시 초래

   
 
   
 
길은 마을과 마을, 그리고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소통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소통에는 물자와 사람, 그리고 정보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제주의 지도에는 지형과 지세를 따라 형성된 크고 작은 길들로 제주 곳곳이 연결돼 있다.

상호 소통의 관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소통은 일방적인 아니라 각기 부족한 것을 메워주는 상호 보완적 관계인 것이다.

그런데 도로가 크게 바뀌어 가고 있다. 1970년대의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은 혁명과도 같은 일대사건이었다. 곧게 뻗은 길을 따라 물자를 가득 실은 트럭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는 풍경은 국가의 발전이요 성장의 원동력으로 인식했다.

다른 지방도시들도 예외 없이 근대화의 물결 속에 곧게 뻗은 격자형(바둑판 형태)의 도로체계를 근간으로 하는 도시개발이 곳곳에서 이뤄져 왔다. 또 정부는 농촌의 지붕개량사업과 도로확장사업을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 도시와 농촌은 고유의 원풍경(原風景)을 잃어버리는 등 지역성 상실을 초래해 전국의 도시가 비슷비슷한 모습을 형성하게 됐다.

제주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랜 시간의 축척과정을 거치며 형성돼 옛 제주의 지적도를 보면, 부정형(不定形)의 길들로 구성돼 있어 구불구불한 길과의 관계에 따라 배치된 가옥의 동적인 풍경이 연출됐고 나아가 중산간지역의 풍경은 자연스럽게 배경으로서의 풍경을 연출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제주의 도로 풍경은 크게 변하였다. 제주의 도로경관을 변화시킨 원인은 신시가지 조성과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통한 격자형 도로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근대도시계획의 상징물이 자동차를 위한 도로가 중심이 되었던 도로 체계는 제주의 마을과 옛 도심을 구성했던 옛길을 관통하거나 없애버려 획일적인 도로 풍경만이 남게 됐다.

또 자동차가 중심이 되다보니 사람과 사람의 어울림, 자연과 사람의 어울림이 없을 수밖에 없다. 도시의 도로체계는 단순히 건축물과의 어울림의 부조화 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를 삭막하고 무표정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경관지에서의 무분별한 도로 개발은 경관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평화로와 중문∼상창 등의 도로를 개발하면서 절개지를 무참히 잘라내 자연경관을 훼손하는 등 흉물로 변하고 있다. 자연적인 지형 조건을 배려한 체계적인 개발이 아닌 환경 훼손을 가속화시킨 ‘토목주의적 개발’방식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제주 경관을 변하게 하고 있는 또 다른 원인은 해안도로의 개설을 들 수 있다. 1992년부터 추진되고 있는 해안도로 개설사업으로 인해 해안 마을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모습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갑작스럽게 팽창하는 토목공사는 제주의 해안마을과 해안 경관을 너무 쉽고 간단하게 바꾸어 버렸다. 관광자원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해안도로를 개설하면서 오히려 아름다운 해변경관을 파괴했고 늘어나는 자동차의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도로를 넓히면서 해안마을의 많은 역사적 문화경관을 훼손했다.

도시계획을 하고 길을 만들며 도시의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그곳에 삶을 담고 있는 사람과 문화, 역사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중산간과 해안 마을, 그리고 도시내에는 여전히 옛길들이 남아 있고 그러한 공간에는 마을과 도시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풍부한 전설, 그리고 비바람을 이겨내기 위한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제 이러한 요소들이 지역의 문화이며 풍경을 만들어 가는  귀중한 자원들이다. 추억이 담겨진 제주스러운 도로를 어떻게 지켜 나갈것인가 문화경관의 차원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할 때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