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 인지능력 사람마다 달라

   
 
  '발가락 군'  
 
'발가락 군'

이중섭과 마사꼬가 사귀기 시작한 것은 1940년이었다. 둘은 동경 신주꾸 일대를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했다. 하루는 마사꼬가 신발이 벗겨지면서 발가락을 다쳤는데, 이때 이중섭이 마사꼬의 발가락을 정성껏 간호해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듬해 이중섭이 관제우편엽서에 그려 애인 마사꼬에게 보낸 그림이 바로 이 '발가락 군'이다. 이중섭이 마사꼬의 다친 발가락을 간호해주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간호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중섭의 오른 손이 마사꼬의 발목을 잡고 있고 마사꼬의 발이 이중섭의 국부를 밟고 있다. 마사꼬의 발가락에서는 피가 난다. 그 피가 이중섭의 왼손에 묻어있다. 이 그림에서 마사꼬의 발은 성기를 상징한 것이다.

마사꼬에게 직접 그려서 보여줄 수 없는 것을 상징적으로 그려 보여줌으로써 마사꼬로 하여금 상상해 볼 수 있게끔 한 그림이다.

이중섭이 일본으로 간 아내에게 1953년부터 55년 사이에 보낸 수많은 편지들 중에는 '발가락 군'에 관한 글귀가 자주 등장한다. "나의 소중한 보배, 발가락 군을 소중하게 아껴주시오." "내가 좋아 못 견디는 발가락 군을 손에 쥐고 당신의 모든 것을 길게길게 힘껏 포옹하오." "발가락 군에게 길고 긴 뽀뽀를 전하오."

'발가락 군'은 이들 부부지간에만 은밀히 통하던 성적 은어였다. 사람들은 이중섭이 마사꼬를 부르던 애칭인 줄로만 알고 있는데, 이는 마사꼬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밖에는 더 이상 설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활 쏘는 남자'  
 
'활 쏘는 남자'

이 그림은 언뜻 보기에는 새를 잡으려고 활을 쏘는 남자를 그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활 쏘는 남자를 그린 것이 아니다.

남자의 시선이 화살을 겨냥한 방향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자는 시위도 없는 활을 쥐고 있다. 새를 잡기 위해 활을 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괜히 폼만 그렇게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중섭은 왜 이런 포즈의 남자를 그린 것일까. '활 쏘는 남자'의 헤라클레스 같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이렇게 그린 것이 아니다. 남자와 마주하고 있는 여자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림에는 활 쏘는 남자의 벗은 궁둥이가 그려져 있지만, 그림 속의 여자는 벌거벗은 남자의 앞모습을 보고 있지 않은가. 여자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는 얼굴을 붉히고 있다. 이 그림은 감상자로 하여금 그림 속 여자의 눈을 통하여 벌거벗은 남자의 앞모습을 상상하게끔 한 그림이다.

도대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예전의 화가들은 '아름다운 것'을 직접 그려서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이것을 보시오. 이것이 바로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나 세계대전 후 미학자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렸다.

꽃이나 과일 또는 미인과 같은 사물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아름답다고 인지하는 지성이나 감성 같은 인간의 내적 능력도 아름다움에 속한다고 본 것이다. 오히려 후자의 아름다움이 없다면 전자의 아름다움이 성립될 수 없다는 점에 더욱 주목하였다.

현대미술은 감상자 중심의 미술이다. 아프리카 토인들에게 파리를 구경시키고 나서 어느 건물이 가장 인상에 남느냐고 물었더니 점심 먹으러 들어갔던 식당 건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사람에게 아무리 아름답게 보이는 그림이라 할지라도 저 사람에게는 전혀 아름답지 않게 보이는 수가 있다.

아름다움을 인지하는 능력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화가는 자신의 작품에 담긴 아름다움이 감상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매개체'만을 제시하고 나머지는 감상자가 알아서 하라는 식의 예술을 하게 된 것이다. 화가가 제시한 것을 매개체로 삼아, 감상자가 자신의 속안에다 자신의 능력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자기 그림을 그리는 것이 현대미술이다.

활 쏘는 남자의 앞모습을 내 안에다 그려보자.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답게 그릴 것이고 추한 사람은 추하게 그릴 것이다. 어떻게 그리든 그것은 자유이다. 감상자가 그리는 자기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중섭은 1941년에 이미 이렇게 현대미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란게와 어린이'  
 
'파란 게와 어린이'

'파란 게와 어린이'는 이중섭이 1954년에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새장 속에 갇힌 아이를 그린 것이다. 이 아이는 이중섭 자신이다. 새장 속에서 바깥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SOS 신호를 보내고 있다.

새장 바깥에는 파란 강물이 흐른다. 바다로 나아가는 이 강물은 '자유'를 상징하며, 새장 속에 있는 게는 '예술'을 상징한다. 우리가 이 그림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점은 게의 색깔이다. 이 세상에 파란색깔의 게는 없다. 그런데도 이중섭이 게를 파랗게 칠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자유를 상징하는 강물의 파란색깔에다 게의 색깔을 일치시킴으로써 자신의 예술이 자유를 희구하는 것임을 표현한 것이다. 게에 연결된 줄이 새장 바깥으로 나가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자신의 예술이 자유로운 바깥세상과 소통되기를 기원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이의 얼굴이 거꾸로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만일 이 모습이 아이의 뒤로 젖힌 얼굴을 그린 것이라면 아이의 몸도 뒷면이 그려져야 할 텐데 이 그림에는 앞면이 그려져 있다. 해부학적으로 보면 틀린 그림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그린 것이 아니다. '왜곡'이라고 하는 이중섭 특유의 표현이다.

우리는 앞서 해설한 '활 쏘는 남자'를 보면서 그림 속에 등장한 여자의 눈을 통해서 벌거벗은 남자의 앞모습을 속으로 그려보았다. 그렇듯이 이번에는 이 거꾸로 보는 아이의 눈을 통해서 거꾸로 보이는 세상을 그려볼 수가 있다. 잘못된 세상을 거꾸로 보면 바른 세상이 보일까. 이중섭의 그림 속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이 "파란 게와 어린이"는 잘못된 사회를 비판하는 이중섭의 투철한 예술정신이 담겨있는 그림이다. 남북이 동족이면서 서로 죽이는 당시의 잘못된 사회를 비판한 작품으로서 예술의 사회적 기능(사회에 비전을 제시하는 일)을 제대로 수행한 작품이다.

이중섭이 이런 성향의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남한 당국은 1955년 1월 이중섭 작품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미도파백화점 화랑에 경찰을 투입시켜 이중섭의 은지화 16점을 '춘화'라며 강제로 철거해 갔던 것이다.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이 현재 주최하고 있는 '해후 57' 展에는'발가락 군' '활 쏘는 남자'와 함께 이 '파란 게와 어린이'가 출품되었는데 전시도록에는 다음과 같은 해설이 적혀있다.

"낚싯줄에 게를 매단 한 아이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한쪽 손을 번쩍 들고 있다. 양손에 휘감긴 낚싯줄이 아이의 뒤편으로 휘어져 게에게로 이른다. 아이는 앞을 향하고 있는데 얼굴은 뒤로 제킨 양태다. 이 불합리한 포즈는 지나친 데포르마숑이 아니면 착각에서 빚어진 것이 아닐까 본다.

오히려 그러한 불합리가 흥분에 겨워하는 아이의 심정을 더욱 실감 있게 구현해 준 것은 아닐까.
아이와 게를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서는 다소 예외에 속한다 할까. 대개 여러 아이와 게가 어우러진다든지 물고기와 어우러진다든지 하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서는 한 아이가 그것도 반듯하게 서서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마치 아기불이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치고 있는 장면과 유사하다. 뒷면의 얼기설기 엮어진 선획은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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