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소」 골격·주름 강조… 강력한 힘 불어넣은 '주화양식'

 

 

 

 

 

「흰 소」 종이에 유채 30×41.7㎝. 1953~54년

 
 

「흰 소」
1953년 12월 8일, 마사꼬는 일본에서 자신의 '곤란한 입장'을 편지에 적어 통영에 있는 남편 이중섭에게 보냈다. 편지를 받은 이중섭은 마음이 무거워 곧 답장을 쓰지 못하다가, 해를 넘겨 다음달(1954년 1월) 7일에야 답장을 썼다. 자신이 일본으로 가는 데에 찬성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더 이상 연기하면 결국은 서로 불행을 초래할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장모에게도 모든 것을 통사정해달라고 했다. 일본에 가더라도 아내의 정양(靜養)을 방해하지 않겠다. 예술과 가족을 위해서라면 페인트집 심부름꾼이라도 하겠다. 하루 한 끼 먹어도 좋으니 나 혼자 어디다 방 한 칸 빌려 일하고 먹고 제작할 생각이다. 일주일에 한번쯤 가족을 만나고 돌아오면 그것으로 흡족하다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어째서 가족들의 눈치만 살피면서 미안하다는 쩨쩨한 생각으로 소중한 남덕과 대향, 태현, 태성들과의 아름다운 생활을 뒤로 미루면서 망치려고 듭니까. (중략) 당신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제주도 돼지 이상으로 무엇이건 먹고 버틸 각오가 되어 있소. (중략) 아고리의 생명이요 오직 하나의 기쁨인 남덕군, 어서어서 건강을 되찾아서 우리들 네 가족의 아름다운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용감하게 행동하고 최선을 다해 주길 바라오. 약간의 무리가 있더라도 상관없으니 우리들의 새로운 생활을 위해서 들소처럼 억세게 전진, 전진, 또 전진합시다."

「흰 소」는 이 무렵 이중섭이 통영에서 그린 그림이다. 편지에 적힌 것처럼 '전진'을 주제로 하고 있다. 용감하게 행동하고, 최선을 다하여 억세게 전진하자는 뜻으로 그린 것이다. 그림을 보면 소의 골격과 주름을 강조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서양 해부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외부의 어떤 강력한 힘을 그림에 불어넣은 것으로서 북방 샤머니즘의 주화양식(呪畵樣式)으로 해석해야 한다.

   
 
 

「황소」 종이에 유채 32.3×49.5㎝. 1953~54년

 
 

「황소」
「황소」도 이 무렵 통영에서 그린 그림이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그린 것일까? 앞에서 인용한 이중섭의 편지에는 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있다.

"다른 것은 모두 무(無)로 끝날 뿐이오. 발레리의 시의 한 구절처럼 '지금이야말로 굳세게 강하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될 때'요. 표현이 서툴러 읽기 어렵겠지만 나의 남덕군만은 아고리의 피투성이가 되어 부르짖는 이 마음의 소리를 진심으로 들어주겠지요."

'피투성이가 되어 부르짖는 마음의 소리'를 주제로 해서 그린 것이다. (※ 여기서 이중섭이 부르짖는 것은 당시 한국이 처한 상황을 세계에 알리는 것을 말한다) 이 그림에 칠해진 버밀리온(vermilion·주홍빛 그림물감의 색 이름) 붉은 색은 마음을 나타내는 상징색이다. 노을을 그린 것이 아니다. 어떤 책에는 「노을 앞에서 울부짖는 소」라는 명제를 달아놓았는데 이는 적합지 않다.

또 소의 안면과 목 주위를 주름지게 한 것에 대해서도 어떤 책에는 "소의 부르짖는 소리를 표현하고자 주름지게 한 것"이라고 적혀있는데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외부의 어떤 강력한 힘을 이 그림에 부여한 샤머니즘적인 주화양식이라고 본다.

사랑의 편지들
그해(1954년) 4월 27일, 마사꼬가 이중섭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소중한 아고리. 마음에 맺힌 긴 편지 두 통 함께 보았습니다. 당신의 힘찬 애정을 전신에 느껴, 남덕은 마냥 기뻐서 가슴이 가득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는 나는 온 세계의 누구보다도 가장 행복합니다. 이것만 있으면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충분합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이런 당신의 기분도 모르고, 걸핏하면 거역하고 화를 내고 멋대로 굴어서 당신을 실망시킨 것을 생각하면 부끄러움과 미안한 생각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습니다. 저의 일만 생각하고 나쁜 것은 모두 당신의 탓으로 돌렸으니 말입니다.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어리석은 남덕은 지금 이렇게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제 자신이 얼마나 당신을 필요로 하는지, 얼마나 깊이깊이 전신전령(全身全靈)을 다해서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더 길고 희망에 가득 찬 장래가 우리 앞에 있잖아요. 굳게굳게 맺어져서 어떠한 장해에도 굽히지 말고,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 준 길을 외곬으로 나아갑시다."

이 편지가 도착하기도 전인 그 이튿날(4월 28일),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는 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었다.

"빨리빨리 아고리의 두 팔에 안겨서 상냥하고 긴 긴 입맞춤을 해주어요. 언제나 상냥한 당신 일로 내 가슴은 가득 차 있소. 하루빨리 기운을 차려 내가 좋아하고 좋아하는 발가락군을 마음껏 어루만지도록 해주시오. 아! 나는 당신을 아침 가득히, 태양 가득히, 신록 가득히, 작품 가득히, 사랑하고사랑하고 열애해마지않소. (중략) 지금은 4월 28일 아침이오. 일찍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작품을 앞에 놓고, 뜰에 우거진 신록의 잎사귀들이 아침 햇살을 받고 반짝이는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면서 당신의 아름다운 모든 것을 생각하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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